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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Apr 03. 2024

12. 인디언 영혼의 노래; 세도나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남편과 나는 이틀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내다가 사흘째 새벽,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서부 여행을 시작하였다.

나파밸리로 가는 길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진정으로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고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그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보고 싶었다. 

실제 3박 4일의 서부 여행 중 나는 신새벽에 지평선이 훤히 밝아오는 풍경과 저녁 무렵 지평선이 노을로 붉게 물드는 광경을 지켜보았고 하늘에 쏟아질 듯이 별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다. 살아있는 대지를 만난 감격이 이런 것일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광활한 서부에 아침 해가 떠오른다.


우리의 여행 가이드는 첫날 일정이 길므로 새벽 3시에 벨라지오 호텔 앞으로 집합할 것을 요청했다.

새벽 3시라니! 어차구니가 없었지만 여행을 따라나서고서야 우리의 여행 일정이 얼마나 무리하게 짜여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첫날은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하여 세도나를 거쳐 그랜드캐년까지 가는 일정이었고 둘째 날은 홀스 슈 밴드와 엔텔롭 캐년을 거쳐 모뉴먼트 밸리까지 가는 일정이었으며 셋째 날은 알처스 국립공원과 캐년랜즈 국립공원까지, 넷째 날은 브라이스 캐년과 자이언 캐년을 거쳐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나흘동안 무려 2만 5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그야말로 숨 쉴 틈 없는 대장정이었다.

이 여정 중에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 유타 주를 통과하게 된다. 이 지역에는 인디언 국가인 나바호자치국도 포함되어 있고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서부 여행 일정


이런 프로그램은 오직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여행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박 8일 동안 유럽 7개국을 도는 유럽 여행과 판박이의 여행 스케줄이 미국 서부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동하고 떠나는 여행이어서 사실 나의 염려는 컸다. 남편은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남편이 이 무지막지한 여정을 견뎌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가이드 혼자 나흘 내내 그 먼 거리를 운전하고, 여행안내를 맡고, 식당 예약을 하고, 그것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사진도 찍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그것도 놀랍고 걱정스러웠다. 여행사도 여행객도 대단한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플랜이다.  


우리는 밴을 타고 새벽 4시경에 벨라지오 호텔을 출발하였다. 우리의 여행 팀에는 다른 한 가족이 합류해 와서 모두 여섯 명이 되었다. 다른 가족은 할아버지의 여든 살을 기념하여 온 딸과 사위, 손자가 일행을 이루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잘 웃고 친절한 분이셨고 사위는 말이 없는 얌전한 사람으로 보였으며 손자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딸이 먼저 인사를 하였고 그 후로도 그 가족의 모든 일들을 딸이 주도하였다.


구글 맵을 보니 차는 라스베이거스의 남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후버댐을 지나갔다. 후버댐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절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는데, 콜로라도 강을 막은 이 대공사를 통해 라스베이거스뿐만 아니라 근처의 건조한 지역에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하였다. 후버댐의 위용을 한번 보고 싶었지만 아직 시간이 너무 일러 반쯤 졸다가 댐을 지나갔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도중의 <써브웨이(Subway)>의 한 점포 안에서 가이드는 준비해 온 밥과 국을 우리들에게 나눠주었다. 밥과 국은 아직 따뜻하였다. 나는 도시락을 뒷전으로 하고 남편의 뱃줄을 걸 수 있는 장소를 재빨리 스캔해 보았다. 다행히 구석자리에 뱃줄을 걸 수 있었다. 남편이 경관식을 걸고 뱃줄 식사를 하자 여행팀 일동이 긴장하는 것 같았다. 특히 가이드는 우리 팀에 장애인이 있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대장정의 여행에 어떻게 따라나선 것인지 무척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식사만 입으로 못할 뿐이지 여행지를 다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가이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여행 내내 가이드뿐만 아니라 여행 팀 전체가 보이지 않게 남편을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여든이 된 저쪽 팀 어르신이 남편이 뱃줄 식사를 할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함께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첫 목적지인 세도나에 도착하였다. 세도나를 구성하고 있는 검붉은 사암 절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도나 암석의 검붉은 색은 이 속에 다량의 철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철분이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세도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기운이 센 땅으로 알려져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은 세도나를 그들 원주민 부족 영성의 탄생지로 본다고 한다. 특히 세도나의 볼텍스 지역(가장 에너지가 센 곳)은 그들과 신(spilit)을 연결하는 신성한 장소라고 생각해 이곳에서 특별한 영적 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볼텍스의 신비한 힘을 캐치한 인디언들의 높은 영성이 흥미로웠다.   


세도나의 붉은 사암 지역


세도나의  주요 볼텍스의 하나가 벨락(Bell Rock)이다. 벨락은 종(bell) 모양의 돌산을 일 컸는데, 차가 세도나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앞에 그 독특한 자태가 드러났다. 벨락은 내부에서부터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이 산을 감싸고 있다고 하여 과거의 인디언뿐만 아니라 현재의 세계의 영성가들로부터 숭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붉은 사암의 바위산 벨락에 이끌리어 다가갔다.


벨락의 전경


우리 여행팀원들이 모두 벨락 아래에서 산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나 혼자 돌산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그 산의 영험한 무엇인가에 끌려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올라간다>고 한 영국의 유명 산악인 죠지 맬러리의 말처럼 벨락이 거기 있었으므로 내가 그 산을 올라갔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벨락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데 도움을 주는 인공적인 설치물이 전혀 없었다. 능력껏 산을 오르고 사고에 대해서는 개인이 책임질 일이라는 미국식 냉정함이 느껴졌다.  나는 산 중턱을 지나 거의 3분의 2 지점까지 올라갔지만 정상 가까이 갈수록 오르기가 힘이 들었다. 저 아래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남편은 틀림없이 막무가내인 아내를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만용을 부리다 다치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보아 정상공략을 뒤로한 채 벨락에서 내려왔다.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행팀원들이 걱정반 칭찬반으로 나를 맞았다. 나는 과거 대학 산악부원이었다며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으스댔다. 그러나 산에 가지 않은지가 40년도 넘었다. 첫 여행지에서부터 너무 튀는 것 같아 좀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도나의 또 다른 명소로 <성십자가 성당>이 있다. 이것은 붉은 사암 위에 세워진 조촐한 성당인데 인디언의 성지에 성당을 세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나 문명인이 믿는 하느님이나 인디언이 믿는 정령(spilit)이나 같은 개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것을 향한 인간의 염원은 신성한 장소를 알아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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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십자가 성당


성 십자가 성당 내부


나는 시튼 부부가 쓴 <인디언 영혼의 노래>를 다시 생각했다. 인디언들의 삶을 함께한 시튼 부부는 인디언들이야말로 참으로 영적인 삶을 살았고 욕심 없이 자연과 하나 되어 평화롭게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아래에 <인디언 영혼의 노래>에 나오는 주요 내용을 옮겼다. 인디언의 땅을 지나가며 그들의 맑은 영혼의 노래를 다시 환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 만물의 창조자이며 통치자이신 위대한 영이 있으며 우리는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분은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 전능하며 형상화할 수 없다.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모든 것이 움직인다.


2. 이 대지에 태어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의무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분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 그 과정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육체적 방법, 정신적 방법, 영적 방법 그리고 봉사라는 방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3. 고결한 인간다움을 획득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의 동족에게 봉사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신의 가족을 잘 부양해야 하며 용감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캠프 그리고 종족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4. 인간의 영혼은 영혼불멸이다. 영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이 오면, 인간은 다음 세상으로 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음 세상에 어떤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인간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못다 한 일이나 하지 않았어야 할 일 때문에 후회하거나 울 필요는 없으며 두려워하거나 떨면서 내세에 갈 필요도 없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 했으며 이승에서 그가 한 행위에 의해 내세의 삶이 결정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안심하면 된다.

그러니 그가 죽음의 노래를 부르게 하라. 집으로 돌아가는 영혼처럼 나아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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