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줄 달고 미국 여행
미서부여행은 대부분 인디언의 땅을 밟는 여행이다.
이 지역에 원래부터 살던 인디언들도 있었지만 서부로 밀려든 백인들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밀려간 인디언들도 대부분 이곳에 살고 있다.
오늘날 미국 내 인디언들의 명맥은 형편없지만 과거에는 이 사람들이 북미의 주인공들이었다. 지구과학적으로는 1만 5천 년 전쯤 호모 사피엔스가 아시아 대륙에서 베링 해를 거쳐(당시는 아시아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땅으로 건너갔다고 설명한다. 사냥과 수렵생활을 하며 드넓은 대지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완전히 열세로 밀려나게 되었다.
내가 서부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인디언의 영혼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지만 실제 현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인디언 관광지에서 가이드나 하고 살고 있는 초라한 인디언들이었다.
둘째 날 우리가 방문한 <홀스 슈 밴드>와 <엔텔롭 캐년> 그리고 <모뉴멘트 밸리>도 그러한 곳이었다.
적색의 사암지대를 훑고 간 물과 바람에 의해 빚어진 아름답고 기이한 광경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그곳에서 인디언 가이드들을 만났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홀스 슈 밴드(Horse Shoe Bend)>였다.
적색의 사암지대를 휘감으며 흐른 콜로라도 강이 빚은 예술작품이 바로 홀스 슈 밴드였다. 가파른 낭떠러지 너머로 말발굽 모양의 계곡이 모습을 드러내고 까마득한 아래쪽으로는 콜로라도의 강물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흘렀다. 이곳의 지명은 마치 말발굽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지형의 모습이 이와 비슷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높이 300m가 넘는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홀스 슈 밴드의 웅장함은 다리를 떨리게 만들었다. 스케일의 광대함이 과연 미국이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붉은 사암을 물이 깎아 만든 신비한 지하세계인 엔텔롭 캐년이었다.
이곳은 어퍼캐년(Upper Canyon)과 로어캐년(Lower Canyon)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땅 밑에 만들어진 신비한 세계인 로어캐년(Lower Canyon)이었다.
엔텔롭 캐년은 1931년 한 인디언 소녀가 잃어버린 양(엔텔롭)을 찾기 위해 우연히 이 동굴로 들어가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찍은 한 사진작가의 사진이 엄청난 값으로 팔리면서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몰려왔고, 그래서 입소문을 타게 된 엔텔롭 캐년은 지금은 서부 캐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부상하게 되었다.
엔텔롭 캐년은 나바호(Navajo) 족의 공원이기 때문에 나바호족 가이드와 동행하면서 관광을 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를 안내한 인디언 여성은 계속 하품을 하며 자신의 역할을 따분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간을 붙잡고 지하세계로 들어가자마자 물이 깎은 붉은 사암의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인디언들은 이곳은 spiral rock arches(나선형 바위 아치)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과연 휘몰아친 물결이 나선의 아름다운 굴곡들을 만들어 놓았다.
아래의 미인모양의 돌이 이곳의 상징이다. 빛에 따라 위의 붉은 바위 색과 절묘한 대조를 나타낸다.
인디언 가이드는 최근에 이 골짜기로 유입된 홍수사건이 제일 충격적이었던지 연신 휴대폰에 저장된 홍수사진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는 홍수보다는 붉은 사암이 빛에 따라 드러나는 모양에 넋을 뺏겼다. 너무나 신비한 풍경이었다. 이런 곳을 꽁꽁 숨겨놓았다 최근에야 일반관광객들까지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 이곳에 온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오후에 마침내 모뉴멘트 밸리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사막 지평선에서 모뉴멘트 밸리를 상징하는 세 개의 붉은 기둥들이 나타나자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세 개의 붉은 기둥은 이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이스트 미튼 뷰트(East Mitten Buttes), 웨스트 미튼 뷰트(West Mitten Buttes)(벙어리장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와 메릭 뷰트(Merrick Butte)였다. 여기서 뷰트는 평평한 지형이 깍여 만들어진 돌무더기를 의미하고, 메사(mesa)는 더 큰 돌무더기를 일컷는다.
영화나 잡지, 여행 프로그램에서 너무나 자주 보아왔던 풍광이었고 내가 진짜로 가보고 싶었던 미서부의 환상이었다. 마침내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감격이 나를 휘몰아쳤다. 마치 전기가 나를 찌르르 하고 통과하는 것같은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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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수백만 년에 걸쳐 바람과 물이 빚어낸 대자연의 작품이다. 또한 이곳은 나바호 부족의 거주지인 나바호국(Navajo Nation)에 속해 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이곳을 그 어떤 곳보다 신성시하여 그들의 이차대전에 대한 공로로 미정부에서 땅을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 흔들림 없이 이곳을 선택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인디언들의 신성한 땅이 바로 모뉴맨트 밸리인 것이다.
우리는 밸리 안쪽까지 둘러보기 위하여 지프 투어를 신청하였다. 역시 인디언 가이드가 지프를 몰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붉은 흙먼지를 날리며 지프는 거친 오프 로드를 달렸다. 숨겨진 비경들이 계속 나타났다.
바위 산들이 바람을 못 견뎌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가슴속에 새겨두고자 했다. <인디언 영혼의 노래>를 들으려면 이곳이 가장 적절한 곳이었다. 나는 바람 속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돌덩이(Buttes)에서, 반쯤 무너진 돌덩이의 루인에서, 그리고 풍화되어 흙먼지가 된 흙에서 인디언들의 노래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가족을 지키려고 명예롭게 싸우고 사라져간 위대한 영혼들을 위해 잠시 묵념했다. 바람 속으로 내 기도가 모뉴맨트 밸리의 골짜기 사이로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가 마지막으로 달렸던 그 길을 나도 달려보았다.
모든 것이 가슴 가득히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