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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Apr 12. 2024

15. 모아브에서: 아치스 국립공원과  캐년랜드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미서부 여행 둘째 날에는 모아브(Moab)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아브는 유타 주의 작은 마을인데 이곳에서 아치스 국립공원과 캐년랜드를 갈 수 있기 때문에 미서부 여행에서는 주요한 기착지이다. 모아브라는 지명 자체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압과 동일하기에 나는 이곳이 유타 땅임을 실감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우리가 첫날 묵은 플래그스태프의 집값이 비싸다고 하더니 모아브가 더욱더 비싸다고 강조하였다. 그만큼 모아브는 관광 요충지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광활한 서부의 사막지대를 다니다 도시를 만나니 반가웠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모아브는 사실 오아시스 도시였다. 도시의 왼쪽 저 너머로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 모아브 마을 앞으로도 작은 하천이 보였는데 하천 줄기가 콜로라도 강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모아브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상하게 이 작은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모아브라는 도시 이름에서 구약 성경의 모압을 떠올린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유타 주이고, 유타 주는 쫓기던 몰몬교도들이 정착하여 개척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몰몬교라고 불리는 이 교회의 정식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 Day Saints)이다.

이곳의 이름을 유타(Utah)라고 부른 것은 본래 이곳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인 Ute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Ute는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처음 Navajo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던 이곳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몬교도들이 이주하여 정착촌을 건설하면서부터 유타 주의 역사는 시작되었다(1847년).


몰몬교회는 조셉 스미스에 의해 1830년 미국 뉴욕 주에서 창시된 기독교계 신흥종교이다. 몰몬교는 전통 기독교와는 세부적으로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단 논란에 휩싸였고 특히 일부다처제의 채용으로 말미암아 다른 교단뿐만 아니라 미 정부의 박해와 비판을 받았다. 신자들은 박해에 시달리며 쫓겨나기 일쑤였는데 교주인 조셉 스미스도 박해자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폭도 측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조셉 스미스 사망 후 몰몬교 개척자들은 솔트레이크 계곡에 정착하면서 사실상 그레이트 베이슨의 정부가 되었다. 이후 몰몬 개척자들은 미합중국에 가맹 청원을 했고, 1850년 9월부터 유타 준주(Utah Territory 미국의 자치영토)가 되었다가 1896년 주로 승격되었다. 이 과정에서  몰몬교와 미국 육군 사이에 내전(유타전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유타 전쟁 이후인 1890년 몰몬교 측은 성명서를 내고 가장 논란이 많았던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중단하였다.


몰몬교의 교리는 모르몬경(The Book of Mormon)에 있다. 모르몬경은 기원전 600년경, 하느님의 지시로 이스라엘 선지자 리하이 가족이 예루살렘을 떠나  미대륙으로 항해하면서 시작되는 연대기라고 한다. 그 기록에 의하면 미대륙 사람들이 예수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한다.  모르몬경은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록이 담긴 금판을 찾아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보면 시튼 부부가 쓴  <인디언 영혼의 노래>에서 읊은 내용이 왜 그토록 기독교적이었던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인디언들이 지키던 그 영성을 몰몬교가 확인하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모아브에서 가이드는 우리들에게 식당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모아브에는 관광 중심지답게 많은 식당들이 있는데 그중 중국식당과 타이식당이 유명하다고 하였다. 남편이 방콕에서 5년을 보낼 동안 태국음식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태국식이 좋겠다고 먼저 나서자 여든 살의 할아버지를 빼고는 대부분이 태국식에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가 찾은  <Singha Thai Cuisine>이라는 식당의 음식 수준이 상당하였다. 주로 써브웨이의 샌드위치나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던 우리가 오랜만에 아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기분이 고조되는 것 같았다. 웬일인지 가이드가 마음껏 음식을 시켜도 좋다고 하였다. 

남편의 태국음식 지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남편은 지금까지 뱃줄을 달고 여행에 따라나선 장애인이었다. 남들과 같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홀로 뱃줄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태국식당에 들어가게 되자 오랜만에 전 사장의 권위를 되찾았다. 그리고 메뉴판을 펼치고 이것저것 맛있는 태국 음식을 시키기 시작했다. 식사값이 가이드의 예산을 넘어서면 당신이 내겠다면서 호기를 부렸다. 나는 남편이 호기를 부리는 모습이 뭉클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맛있는 태국 음식을 그야말로 테이블이 넘치도록 앞에 두고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모아브의 거리를 잠깐 산책하였다. 나는 모아브가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를 그제야 알았다. 작은 도로를 중심으로 이어진 거리에 키 큰 가로수들이 우거져  있었다. 역시 도로에는 가로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아침 햇살이 떠올라 붉은 사암의 절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마켄나의 황금>이 생각났다. 태양이 떠오르자 붉은 사암의 메사(mesa)들이 햇빛을 받아 찬란한 황금빛으로 변하던 모습 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의 장관이 여기서도 연출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사막지대에서 태양의 위력은 대단하다. 밤중에 내려갔던 기온이 해가 나자 단번에 올라갔다. 인간세계의 전설에서 태양신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별로 없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주제는 <바람과 돌>이다.

이곳의 지질도 붉은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은 바람이 엄청 센 곳이다. 그랜드 캐년의 절경이 콜로라도 강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되었다면 아치스 국립공원의 붉은 아치들은 사암의 뷰트들을 바람이 깎아 정교하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바람이 아치들만 만든 것은 아니었고 다양한 형태의 바위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도로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은 제각기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위덩어리에 이름 지어주기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바란스드 락 Balanced Rock>이다. 모습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였지만 어찌 보면 대만의 야류 지질공원에서 보았던 <클레오파트라> 바위와 유사하게도 보였다.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목이 붙어있으나 이곳의 강렬한 바람에 의해 언제 목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었다. 


<Balanced Rock>


대만 <야류 지질공원>의 클레오파트라 바위


바람이 돌을 깎아 마음대로 빚은 모습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만든 것이 새삼 신기했다.


이건 본류와 좀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만 쫓아다니는 것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유명 캐년들을 찾아가는 길목에도 검은 바위의 캐년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검은 바위 계곡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붉은 사암의 계곡에만 찬탄의 발걸음을 보낸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이 멀리까지 온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너무 미인만 쫒는 것 같아 검은 캐년들을 지나가면서 미안한 생각을 하였다.


미인 중의 미인이 아치스 국립공원의 <Delicate Arch> 일 것이다. 절세미인을 보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꽤 걸어가야 하는 트레일이었지만 땀 흘릴 가치가 충분한 곳이 <Delicate Arch>였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틀다보면 저 너머로 너무나 우아한 자세의 붉은 아치가 홀연 나타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홀로 우뚝 서있다. 이름 그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아치가 아닐까 여겨지는 것이다. 저것도 허리가 반쯤 넘어가 있는 것을 보면 델리케이트 아치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조만간 들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 전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서 있는 아름다운 바위를 요모조모 바라보고 사진도 남겼다.


<Delicate Arch>


데리케이트 아치는 유타의 자부심인 것 같았다. 온갖 수브니어(souvenir)를 장식할 뿐만 아니라 유타의 자동차 번호판에도 이 모양이 배경그림으로 들어있다. 유타 사람들은 바람의 거센 공격 앞에서 풍화되는 사암을 지켜낼 수 있을까?


유타 주의 자동차 번호판: 데리케이트 아치가 그려져 있다.


이 지역에 유난히 부는 바람은 데리케이트 아치 외에도 붉은 사암의 아치들을 여럿 만들어 두었다.  

더블 아치의 경우도 기괴하고 아름답게 깍인 모습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Double Arch

   


바람에 깎이고 있는 중인 바위들


Window arch>


아치스 캐년을 보고 캐년랜드로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기 위하여 다시 모아브로 가게 되었다. 이 근처에서 모아브를 빼고는 식사를 할 다른 곳이 마땅치 않은가 보았다. 남편은 차 안에서 홀로 뱃줄 식사를 하고 우리는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식당을 나오는데, 가게 앞에 키 큰 미루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어젯밤에 계곡에서 보았던 나무들이 미루나무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낮에 보니 계곡의 미루나무는 노랗게 단풍이 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미루나무의 본래 이름은 미류나무였다가 미루나무로 바뀌었다. 미류(美柳) 나무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그 미국에서 들어온 미루나무를 만나 반가웠다.


모아브의 미루나무




오후에 간 캐년랜드는 물의 침식이 빚은 기이한 지하 캐년들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이곳을 이곳의 산들에 영원히 남아있는 조상들과 영혼의 교류를 이루는 신성한 기도의 장소라고 여겼다.



이곳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희귀한 식물들이 많이 있는 특별한 곳이라고 하였다.

특히 바위 위에 지구 최초의 박테리아인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아직도 붙어있다고 하기에 바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의 바다에서 최초로 번성한 생물인데,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박테리아였다. 이들이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 모습이 우주 유일의 푸른 모습이 될 수 있었고, 그 위에 인간이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내가 이 박테리아를 보고싶었겠는가.

나의 지식으로는 시아노박테리아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바위 위에 붙어있는 저 흰 것이 그게 아닐까 나 혼자 유추하고 즐거워하였다.


저 흰 것이 시아노박테리아 인가?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불빛이 어두운 곳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별 관찰을 즐길 수 있다고 하였다.

가장 오지에 숨겨진 캐년 랜드에서 땅 속으로 꺼진 캐년들을 바라보는 것이 이곳의 관광포인트인 것 같았다. 별까지 보지는 못하고 서둘러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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