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줄 달고 미국 여행
미서부 <그랜드 서클 투어> 글의 마지막으로 서부 사막에서 가장 많이 만난 루버 래빗브러시(rubber rabbitbrush)를 언급하고 가려고 한다.
서부의 건조한 사막 지대에도 꽃은 핀다. 내가 방문한 시기가 10월이어서 봄철처럼 꽃이 많이 피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몇 꽃을 만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면 이듬해 봄에 사막에 야생화가 엄청나게 핀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막의 야생화라면 랭캐스터의 엔텔롭 밸리의 파피꽃 보호구역(Antelope Valley Popy Reservation)에 피는 황금빛 파피일 것이고 데스 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의 야생화 투어도 유명하다.
내가 방문한 계절이 가을이었던 만치 봄철의 화려한 꽃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가을의 격조에 어울리는 연미색의 꽃을 여행지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어 나름 눈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서부여행을 하다가 혹시 나처럼 노랗게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을 보고 무슨 꽃인지 궁금증을 가질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나름대로 여러 검색기구를 사용하며 끙끙거리다 마침내 이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기쁘다). 통상 루버 래빗브러시(rubber rabbitbrush)나 차미사(chamisa)로 불리고 있는 이 식물의 정식명칭은 Ericameria nauseosa라고 한단다. 이 식물의 수액에 고무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rubber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지역에 서식하는 jack rabbit의 주요 피신처가 되어주기 때문에 래빗브러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뉴 멕시코 자생으로서 미 서부의 건조한 지역에 광범위하게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방문한 유명 캐년들의 모든 곳에서 이 꽃을 만날 수 있었던가 보았다. 꽃은 8월에서 10월에 걸쳐 핀다고 하는데 마침 이 시기에 서부지역을 여행했기 때문에 꽃 핀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 꽃은 돌과 모래와 마른 덤불들로 이루어진 건조한 서부지역의 대지에 생생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진하지 않은 연미색의 꽃무더기들이 사막에 연한 파스텔의 그림을 그려둔 것 같았다. 파스텔톤.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다.
꽃이 막 핀 모습은 꽤 괜찮아 보이는 듯한데, 10월이 되니 꽃의 위세가 한풀 꺾인듯한 모습이었다.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니 자극적인 강한 향이 났다.
이 풀은 다른 식물들이 다 시들고 난 뒤 꽃을 피워 사막에 생기를 부여하고 곤충이나 동물들에게는 화분과 먹이를 제공한다고 한다. 특히 유타지역에서는 양들의 주요 먹이가 되어주는 고마운 풀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 살았던 Zuni 족이나 나바호 인디언들은 이 꽃으로 노란색 염료를 만들어 약용 차에 넣기도 하고 츄잉 검으로 씹었다고도 한다.
유연한 줄기 속의 수액에 고무가 함유되어 있어 이차대전 당시에는 이 식물에서 고품질의 고무소스를 얻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고무, 레진, 기타 케미컬의 재료로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네바다 대학에서 이 식물을 이용한 여러 제품 개발에 적극적이라고 하니 지역 특산물에서 무언가 활성물질을 찾으려는 노력이 역시 대학이 있어 가능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텍스 알레르기 환자를 위한 저알러지 고무 용도도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사막식물로 회전초가 있다.
사막 위를 실뭉치처럼 둥그런 물체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영어로는 텀블위드(Tumbleweed)라고 한단다. 말 그대로 굴러다니는(tumble) 풀(weed)을 뜻한다. 나는 처음에 루버 레빗브러시가 회전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루브 래빗브러시가 국화과인데 비해 미서부지역의 주요 텀블위드는 러시아산 엉겅퀴 식물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엉겅퀴와 국화과는 전혀 다르다. 엉겅퀴는 성경에서 가시덤불과 함께 저주받은 풀이다(창세기 3장 18절). 이 풀은 본래 우랄 산맥 동쪽 유라시아 대초원에 분포했는데, 19세기 중반 오염된 아마씨와 함께 미국에 들어갔다가 급격히 번식하여 지금은 미국 내 12개가 넘는 주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회전초는 물이 부족하면 온몸이 바싹 말라버린다. 그리고 뿌리 또는 줄기가 끊어져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겨울에 미서부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회전초가 고속도로로 굴러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모습이 간혹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회전초는 가을이나 겨울 건기 때, 마른 뿌리에서 떨어져 나와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씨를 퍼트리기도 하고 강풍이 불 때 사막에서 굴러와 도로와 주택을 덮치기도 한다고 한다. 올 3월에도 강풍이 불자 유타주의 한 마을에서는 굴러온 수천 개의 회전초가 차량을 덮고, 주택 문을 막으며 지붕까지 쌓이는 소동을 벌였다는 뉴스를 본 바 있다.
아래 사진 속의 부시 속에는 회전초인 러시안 엉겅퀴도 자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상 10월의 미서부 여행지에서 본 루버 래빗브러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다.
건조한 사막지대에도 꽃은 피고 어떤 식물은 생존전략을 위해 뒹굴고 있다니 참 신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