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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Apr 29. 2024

19. 칼트레인 타고 스탠퍼드 대학 가보기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마운틴 뷰에 칼트레인(Caltrain)이 통과하는 기차역이 있다. 집 근처에 칼트레인이 통과하니 우리 부부는 기차역을 기웃거리다 마침내 칼트레인을 타보기로 했다. 

처음 시도이니 만치 가까운 곳으로 목표를 정했다. 그리하여 스탠퍼드 대학에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지난번 아들딸과 함께 갔을 때는 주마강산으로 휙 둘러보아서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으로 선정되어 있다(Travel and Leisure 2023). 이번에는 남편과 둘이서 여유롭게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를 돌아볼 참이었다.


아들이 미국 번호의 폰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리고 또 우버택시 타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까짓 것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칼트레인을 탔다.


마운틴 뷰의 칼트레인 역 전경


마운틴 뷰 역에서 스탠퍼드 대학이 있는 팔로 알토 역까지는 세 정거장에 불과했다. 금방 팔로 알토 역에 도착했다. 팔로 알토(Palo Alto) 시는 스탠퍼드 대학을 만들기 위해 조성한 도시라고 했다.

팔로 알토라는 도시 이름은 이곳에 있었던 엄청난 크기의 레드우드 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1769년, 이 지역을 지나던 스페인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나무가 얼마나 컸으면 이 나무에게  ‘El  Palo Alto’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겠는가!  ‘Palo’는 스페인어로 ‘나무, 목재’를 뜻하고  ‘alto’는 ‘높은’을 뜻하며,  ‘El’은 가나안인들이  ‘신’을 가리킬 때 사용한 말이다. 말하자면 이 나무를 처음 만난 외부인들은 이 나무의 위용에 감탄해 나무에 신격을 부여한 셈이다.


1769년 스페인 탐험대에 의해 발견된 거대 삼나무. 그들은 이 나무에  ‘El palo alto’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 레드우드는 현재 팔로 알토 시의 로고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스탠퍼드 대학의 로고 속에도 등장한다(이 나무는 아직도 살아있다고 한다).


팔로 알토 시 로고


현재 팔로 알토 시는 실리콘 밸리의 신화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휴렛팩커드, 인텔, AMD 본사 등이 있다. 그러나 1891년 스탠퍼드 대학이 개교하였을 때만 해도 팔로 알토에는 복숭아와 아몬드 과수원만 듬성듬성 있는 시골이었다. 이곳에서 쇼클리(Williams Shockley)가 반도체연구소를 시작하면서(1957년) 그가 고용한 박사들이 쇼클리를 떠나 후일 반도체산업을 이끌었다.

거기다 스탠퍼드 대학의 공대 학장인 프레더릭 터먼(Frederick Terman) 교수의 권유와 지원에 의해 2차 대전 종전 후 밴처기업들이 비약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터먼 교수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회사를 세워라! 학교가 도와줄게!"를 강조하면서 벤처 붐을 이끌었다. 현재 스탠퍼드 출신의 밴처기업만 18,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팔로 알토라는 도시는 스탠퍼드 대학을 위해 만들어졌고 스탠퍼드 대학에 의해 발전한 곳이다.


그런데 역에 내리고 보니 스탠퍼드대학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굳이 우버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걸, 아들은 한 번도 기차를 타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역사 근처에 있는 학교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좀 기다리자 학교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5분도 채 가지 않아 학교정문에 이어 야자나무가 줄을 선 팜 드라이브(Palm drive)가 나타났다. 1마일간 이어지는 이 멋진 길은 스탠퍼드대학의 유명한 풍경이다. 팜 드라이브(Palm drive)에 늘어선 팜 트리는 대추야자 나무라고 한다. 대추(date)가 줄줄이 익으면 그것도 장관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더라면 걸어와도 될뻔한 거리였다. 그러나 대학 입구가 곧 대학은 아니었다. 이곳은 1000만 평의 넓이를 자랑하는 엄청난 크기의 대학이다. 학교 버스를 타기를 잘했다.


팜 드라이브 길의 끝 지점에 유명한 스탠퍼드 오발(oval)이 나타난다. 오발은 계란모양을 뜻하는데, 잔디가 심어진 공원 모양이 계란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번에는 메인 쿼드에서 오발 쪽을 바라만 보았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보니 오발의 드넓은 면적이 실감이 났다. 이곳에 스탠퍼드의 상징인 S자가 꽃으로 새겨져 있고 푸른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자유로이 앉거나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스탠퍼드대학의 모토가 느껴지는 자유로운 풍경이었다.


오발에서 바라본 팜 드라이브 길 : 대추야자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스탠퍼드 대학은 자유로운 학풍을 강조하는 대학이다. 이는 이 대학의 로고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스탠퍼드대학의 로고를 보면 원안에 키가 삐죽하게 큰 나무가 서 있고(EL palo alto이다), 그 곁으로는 대학의 모토가 ‘Die Luft der Freiheit weht’라고 독일어로 적혀있는데,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왜 독일어로 적었는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전통적인 느낌을 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스탠퍼드 대학은 지금까지도 이 모토를 지켜 진보적 사상의 바람을 학생과 지역사회에 불어넣어 왔다.


스탠퍼드 대학 로고


스탠퍼드 대학이 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 1위로 선정되었는지는 차가 팜 드라이브에 들어설 때부터 감이 오기 시작했지만, 붉은 지붕에 연황색 돌을 사용해 만든 건물들이 늘어선 메인 쿼드가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확실히 알 수 있다. 캠퍼스 건물들은 모두 같은 색깔을 사용하여 시각적 통일을 이루었고, 잔디밭과 멋진 수목들은 마치 고급 리조트에 온듯한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대학 조성 당시 스탠퍼드 부부는 뉴욕 시의 센트랄 파크를 설계한 프레데릭 옴스테드(F. L. Olmsted)에게 이 학교의 건축과 조경을 의뢰하였다고 한다. 옴스테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 이 아름다운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빌딩 건축에 사용된 돌은 산호세의 채석장에서 채굴된 지역특산물인 사암을 사용했는데, 이를 위해 산호세까지 철로를 연결해 돌들을 옮기고 석수들이 돌을 깎아 돌벽돌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어머어마한 스케일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다. 거기다 건물들을 이어주는 연속적인 아치는 스탠퍼드 특유의 풍경을 조성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내었을까 하고 감탄하였다.


아치로 연결된 주랑


서쪽 문


캠퍼스 가운데에 있는 메인 쿼드(Main quad: 38개의 2층 건물들과 그 건물 1층을 연결하는 회랑이 넓은 직사각형의 광장)가 캠퍼스의 중심이다.


메인쿼드 입구의 메모리얼 코트 안쪽에 로댕의 조각 작품이 세워져 있다.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이다. 여섯 명의 남자들이 목에 밧줄을 매고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이 조각품은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칼레시에서 있었던 여섯 명의 지도자들의 모습을 로댕이 작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당시  칼레시를 점령한 영국왕은 칼레시의 모든 시민을 죽이려고 했으나 마음을 바꿔 시민대표 6명을 뽑아오면 다른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6명의 죽을 대표를 뽑지 못하여 고민하던 차, 상위 부유층 중 한 사람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의 뒤를 이어 고위관료, 상류층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다. 로댕은 이 칼레의 여섯 시민을 조각작품으로 남겼다.  

칼레의 시민 사건은 프랑스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남겼다. 프랑스인들은 이 용기 있는 6명을 영웅시했으나 로댕은 절망 속에서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던 이들 6명의 암울함을 사실적으로 표현으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왜 하필 이 작품을 스탠퍼드 대학의 학문의 산실인 메인 쿼드 입구에 세워두었을까? 그속에 스탠퍼드의 엘리트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해 보았다.

아무튼 그 유명한 로댕의 조각 작품을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스탠퍼드 대학은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댕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조각공원에는 <지옥의 문>과 <생각하는 사람>의 진품 조각상도 있다고 하나 보지 못하고 와서 아쉬웠다.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


 내부 주 쿼드(main inner courtyard)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둔 여덟 개의 식물 서클이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에 처음 보는 꽃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명주솜나무라는 식물이었다. 미인수라고도 부른다는데 과연 스탠퍼드의 정원에 선정될 만치 아름다운 분홍의 커다란 꽃을 피우는 식물이었다. 이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면 하얀 솜이 가득 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가 보았다.

바닥에는 분홍의 커다란 꽃잎들이 봉오리채 뚝뚝 떨어져 있어 미인박명의 전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ㅎㅎ).

거기에 비하면 한없이 하늘로 쏫은 워싱턴야자나무는 이 대학의 기상을 알리는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려는 섬세한 배려 같아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야자나무 식물 서클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메모리얼 처치(Memorial church)도 방문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이곳은 형식은 가톨릭 성당이지만 사실은 모든 종교활동에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스탠퍼드 부부가 처음 성당형식으로 교회를 지을 때부터 개신교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 행사에 이 교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는 바 현재는 이슬람교나 유대교 등 그 어떤 종교단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스탠퍼드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취지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성당 안에 작은 기도실들이 있는 듯 학생들이 종교모임을 하는지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남편과 나는 성당에 앉아 잠시 기도하였다. 미국에 와서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갈증을 이 성당에 앉아 기도하며 보충하였다. 나 같이 영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대학 캠퍼스 중심에 이렇게 멋진 교회를 지은 스탠퍼드 부부의 혜안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이런 것이야말로 후세에 남겨진 ‘위대한 유산이다’라고 느꼈다.

 

메모리얼 처치 내부 모습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는 학생식당이 몰려있는 로미타 몰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외 파라솔들이 많아서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남편은 뱃줄식사를 하였고 나는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었다. 빵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속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물어대 성가시기는 했다. 그래도 스탠퍼드의 아름답게 조성된 캠퍼스와 수목들을 바라보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앞에도 키 큰 레드우드 나무들이 몇 그루 보였다. 이 대학 어딘가에 세콰이어 코트야드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세콰이어가 많이 있을까 궁금하였다. ree)


교정의 쉐콰이어 나무들


점심을 먹고 내부 쿼드의 주랑을 따라 쭉 걸어보았다. 내부 쿼드를 둘러싼 보행로에는 각 졸업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1896년부터 시작된 연도표시가 기념 성당 앞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서쪽 건물의 절반에 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아들이 졸업한 년도가 적혀 있는 보도 위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세상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오죽하면 스탠퍼드 학생들을 오리에 비유했겠는가? 오리는 유유작작히 물위에서 노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부지런히 발짓을 해야 물 위에 떠있을 수 있다. 어려운 과정을 무사히 마친 아들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캠퍼스 투어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같이 보이는 동양인 부부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을 꽤 보았다. 중국인 캠퍼스 투어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자녀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이라고 하였다. 한국부모의 교육열을 능가하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호기심반 걱정반의 심정이 되었다. 내게는 중국인들이 세계를 향하여 야심을 발휘하는 역력한 증거처럼 여겨졌다.


2022년도 스탠퍼드 대학교의 합격률은 3.68%로 보고 되었는데 이는 미국 대학 최하위 합격률이고, 이는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하기가 매우 까다로움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학에는 동양계 학생들의 비율이 꽤 높다고 들었다.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공지능 회사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도 이 대학 출신이다. 젠슨 황은 중국인들이 자녀들을 통해 원대한 꿈을 이루고 싶어 할 살아있는 모델인 셈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유학생들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스탠퍼드 졸업생 중에는 왜 젠슨 황 같은 인물이 나오지 못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중국은 세계 정상을 향한 집념에 불타오르고 있다. 스탠퍼드를 기웃거리는 중국 부모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위협감이었다.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며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다시 칼트레인을 타고 마운틴 뷰 역에 내리자 우리의 장도(?)를 걱정한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아 너무 걱정하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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