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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y 05. 2024

20.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 길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미국에 올 때 국제운전면허를 만들어 왔다.

그동안 낯 선 땅이라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면허증을 여행 캐리어에 넣어둔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렌터카를 하여 좀 더 먼 곳으로 가보자고 제안하였다. 평소 신중한 남편이 먼저 용기를 내니 무모한 아내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캐리어에서 운전면허증을 찾아내었다.


우리는 아들의 추천을 받아 몬트레이의 17마일 드라이브 길을 가보기로 결정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1번 도로를 타고 해변길은 한번 달려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바 있었다.

아들과 함께 구글지도를 놓고 갈 길을 체크해 보았다. 몬트레이까지 갈 때는 산타크루즈 산맥을 넘어가는 17번 도로를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평탄한 101번 도로를 타기로 노선을 정했다. 짧지만 1번 도로도 포함되어 있어 나의 버킷리스트(?)도 약간은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159마일에 약 3시간 정도의 운전이라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 길로의 여행 경로


아들이 노부모의 드라이브길을 염려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왕 마음먹은 것 해보기로 하였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다시 못할 것 같았다.

아들로부터 미국에서의 운전 시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한 짧은 브리핑을 들었다. STOP 사인에서 반드시 몇 초간 멈추어 서야 하고 속도위반을 가급적 피하며 도로의 출구를 놓쳤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다음 출구를 이용하라는 당부였다.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렌터 카에 앉았는데 마음이 두근거리며 마치 처음 운전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차가 집 앞의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스페인 점령시절부터 선교사들이 개척했던 길로서 미서부에서 제일 오래된 길이라고 하였다. 일명 ‘왕의 길’, 즉 ‘예수님의  길’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선교사들은 1769년부터 1823년까지 샌디에이고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600마일(약 1,000km)에 이르는 이 길을 개척하며 21개의 미션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 성지들을 둘러보았던 나로서는 후나페로 세라 신부가 세웠던 미션들을 가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나 오늘의 목표는 몬트레일의 17마일 드라이브 길일뿐이라고 엇길로 새는 마음을 다잡았다.


산타크루즈 산맥을 넘는 17번 도로는 지도상에서 본 바 이상으로 꼬불꼬불하고 험한 길이었다. 길은 가파른 산맥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이어졌다. 산타크루즈 산맥의 산들은 1000미터 내외로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많은 공원들과 산들이 있어 근처 실리콘 밸리 사람들의 하이킹의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숨은 와이너리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도로 초입의 경사가 급한 산사면으로는 길 양쪽으로 원시림이 이 펼쳐져 있는데, 레드우드들이 늘어서 깊은 산림의 분위기를 풍겼다. 산맥의 정점을 지나자 비교적 완만한 산사면이 이어졌으나 역시 레드우드 나무들이 계속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역시 레드우즈의 자생지임을 실감케하는 풍경이었다. 


이 산맥의 아래로 산 안드루스 지진대가 통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산 안드루스 지진대는 환태평양의 ‘불의 고리’의 하나로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3천 명의 인명 피해를 낸 대지진이었다)의 원인이 되었고 지금도 언제든지 대형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는 판경계 단층이라고 한다. 이 단층선을 경계하여 동쪽의 북아메리카 대륙은 남동방향으로 이동하고 있고 서쪽 해양의 태평양판은 북서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수천 년이 지나고 나면 이곳의 지형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하게 여겨졌다. 아무튼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지구의 엄청난 에너지가 숨겨진 곳을 통과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이윽고 산맥을 넘고 1번 길에 합류하자 해안의 풍경이 나타났다. 평지에는 길게 농지들이 이어졌고 채소나 딸기 같은 농작물을 심어둔 광활한 평지가 지나갔다. 무엇인가를 수확하는지 사람들이 엎드려 있는 모습들도 보였다. 이곳을 배경으로 존 스타인벡(이곳 살리나스 출신이다)이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등의 작품을 썼다. <에덴의 동쪽>의 첫 장면에 제임스 딘이 긴 밭의 이랑에서 채소를 바라보는 풍경이 나오는데, 역시 작품은 그 환경에서 나오는가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살리나스를 지나갔는데 끝간데없이 이어진 채소밭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빅 써(Big Sur)로 갈 때 해안절벽길을 달리면서 느낀 호쾌함도 1번 길의 매력이었지만 나지막한 평지 마을을 지날 때의 평화로움도 이 길의 아름다움이었다. 산타 크루즈나 카피톨, 마리나 같은 이름의 마을들이 지나갔다. 마을들이 한번 들러달라고 유혹을 하였지만 그냥 몬트레일까지 계속 달렸다.


드디어 17마일 드라이브길의 초입에 들어섰다.

이곳은 패블 비치 리조트의 기업 소유지이기 때문에 통행료를 내도록 되어 있었다. 17마일 드라이브 길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정평이 나 있는 곳으로써 한해 약 1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 해변으로 찾아와 휴식과 영감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곳 페블 비치 리조트를 만든 사람은 Samuel Finley Brown Morse였다(그는 모스부호를 만들어 유명해진 Samuel Finley Breese Morse의 먼 사촌이다). 핀리 모스는 29세의 나이에 호텔 델몬트를 포함하여 몬트레이에 광범위한 부동산을 소유한 태평양개발회사(Pacific Improvement Company)에 취업하였다가 아름다운 이곳에 완전히 반했다고 한다. 그는 이사회를 설득해 Pebble Beach Golf Links와 델몬트 롯지가 오픈되도록 하였다(1919년). 스스로의 야심에 불탔던 그는 같은 해 델몬트개발회사를 설립하고 태평양개발회사로부터 델몬트 사업부를 인수하였다. 그 후 그는  사이프러스 포인트(Cypress Point), 스파이글라스힐(Spy Grass Hill) 개발뿐만 아니라 몬터레이 페닌슐라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50년에 걸친 노력이 오늘날 이 멋진 곳을 탄생시켰다. 꿈을 가진 한 사람의 열정이 이룬 업적이 인류에게 이렇게 위대한 자연 유산을 남겨 놓았다니 17마일 드라이브 길에서 나는 잠시 핀리 모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다.


우리가 Pacific Glove Gate를 통과할 때 검문 게이트에서 17 포인트가 들어있는 가이드 인쇄물을 건네주었다. 17마일 드라이브 길은 델몬트 호텔이 개장한 1919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2019년, 17개의 관광 포인트를 오픈하였다고 한다. 17개의 관광포인트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무엇인가의 이름을 붙여 자신을 홍보하는 저들의 마케팅 능력이 돋보였다.


처음 스페니시 베이(Spanish Bay)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이 전 17마일 드라이브 길 중 압권이었다. 길 모둥이를 돌자 갑자기 나타나는 태평양의 광활한 모습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운무가 서려있는 푸른 바다에 거세게 넘쳐오는 흰 파도와 큰 자갈이 널려있는 비치(그래서 pebble beach이다), 그리고 고적함. Perfect 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길 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광활한 태평양 바다가 토해내는 흰 파도가 밀려드는 모습이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왜 이곳의 지명이 스페니시 베이(Spanish Bay)인지 궁금했는데, 역시 이곳을 탐방한 스페인 탐험대와 관련이 있었다. 1769년, Don Gaspar de Portela 탐험대장과 승무원들은 몬트레이 만을 찾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캠핑을 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머나먼 항해에서 닿을 내리고 저 태평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것만 같았다.


Spanish Bay의 광활한 모습

오른쪽에 한없는 태평양의 바다가 펼쳐져있다면 이 지형의 왼쪽으로 완만하게 펼쳐진 언덕으로는 아름다운 골프장이 이어져있고 사람들이 라운딩 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 너머로는 값비싸게 보이는 저택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Pacific Glove Gate에 인접한 골프장이 그 유명한 <The Links at Spanish Bay>이고 태평양 바다에 면한 지역의 산사면에 이어져 있는 골프장이 <Monterey Peninsula Country Club >이라고 한다.


Golf Digest지에 의하면 페블비치 골프링스는 미국 1위로 선정되어 있고(세계 3위이다), Spyhill 골프장이 11위, The Links at Spanish Bay가 44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패블 비치 골프링스는 US Open의 첫 무대가 되었고(1972), 가장 많은  US Open대회(6회)를 유치한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맨발투혼을 벌인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2048년까지 3차례 더 US여자오픈가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또 어떤 한국 여성 골퍼가 이곳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릴지 기대가 되었다. 


British Open Championship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한 Tom Watson은 Spanish Bay 골프장이 Scotland의 골프장 같다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바라보니 모래와 거친 풀들이 자라 있는 풍경이 스코틀랜드의 황량함을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핀리 모스가 이곳에서 골프장을 개장할 때부터 골프장들을 골프클럽이라고 부르지 않고 The Links라고 불렀는가 보았다. Tom Watson의 감탄 이래로 이곳에서는 밤마다 백파이프가 연주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코틀랜드를 연상시키는 거친 골프장


전통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하는 것이 이곳의 모토인가 보았다.

Spanish Bay는 그렇다 치더라도 Joe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하여 Point Joe라고 이름 붙이고 옛날 중국인들이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던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하여 Chinese Rock이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다.

그러나 이름은 단지 이름일 뿐, 바다 전망의 포인트들이 모두 다 너무 아름다워 차를 자꾸 세우게 되었다.


Point Joe에서 바라본 태평양 바다: 초기 여행자들이 이곳을 몬트레이 베이의 입구인 줄 알고 이곳으로 상륙하다 많은 배가 파선되었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랜드마크는 Lone Cypress다. 250년 정도 된 사이프러스 나무가 바위 위에 외로이 서 있는데 이것이 미국인들의 감성을 울리는가 보았다. 미국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힌 유명나무가 이 나무이고 이 나무는 패블비치컴퍼니의 상징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Lone Cypress를 실제로 보니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나무의 형세가 영 수척해 보였다. 바위틈에서 자라며 파도와 비바람과 오랜 세월을 이겨낸  나무라면 경외할 만은 하지만, 나무 하나를 이렇게 마케팅에 잘 활용하였다니 핀리 모스의 경영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만일 저 나무가 죽고 나면 이곳은 무엇을 랜드마크로 내세울까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였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바위 위에 외로이 선 소나무들이 생각났다. 소나무는 사이프러스에 비할 데 없는 품격을 지닌 나무라는 생각을 하자 동해안의 7번 드라이브 길이 그리워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위틈에 외로이 선 나무들을 알리고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몰려오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돌아가서 동해안 길을 다시 한번 달려보며 바위 위에 외로이 선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lone cypress 나무


고사목들이 늘어서 있는 Ghost tree point를 지났다.

파도와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하였는데 그중에 버티고 선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띄었다. 잎도 다 잃고 쓰러질 날이 멀지 않은 저 고사목이야말로 가장 외로운 나무가 아닐까 여겨졌다. 저 고사목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감상에 젖을까 싶으니 내 마음이 다 외로워졌다.


유령나무 숲 속의 외로운 고사목 한 그루


패블비치 골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남편은 뱃줄식사를 하고 나는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햇살이 따뜻하고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패블비치골프장을 내려다보며 뱃줄 식사를 하고 있는 lone man.


패블비치 골프장이 보이는 The Rodge로 내려가 보았다. 바다 절벽 위에 세워진 세계최고의 골프장에서 티샷을 호쾌하게 날리는 골퍼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골프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남편인지라 패블비치 골프장에서 골프를 한번 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뱃줄을 달고 앉자 골퍼들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마음이 애처롭게 여겨졌다. 과거 나는 나를 주말마다 골프 과부로 만드는 남편을 많이 원망하였는데 이제 몸이 아파 골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남편이 애처롭기만 하다. 인생이 이렇게 금방 갈 줄 알았더라면 좋아하는 골프를 실컷 하게 둘 걸 하고 후회도 되었다.


페블비치 골프장 18번 홀


우리가 앉아 쉬는 테이블 앞에 이상한 수염을 줄줄 달고 선 나무의 모습이 보였다.


수염이 줄줄 달린 나무


몬트레이 글로브로 나가는 길 옆에도 수염 나무들이 계속 보였다.

특정 종류의 나무가 아니라 모든 나무에 수염이 달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이 지역에 기생하는 기생식물인 것 같았다. 바다의 습기가 만들어 내는 신기한 모습이 잠시 나의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다.


기생식물이 주렁주렁 달린 패블 비치의 나무들


몬트레이 글로브로 나가고 있는데 아들이 우리의 안부를 염려하여 전화를 하였다. 우리가 예상 외로 드라이브 길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안 아들이 거기서 아래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빅 써(Big sur)가 나오는데 거기에 빅스비 브리지라는 멋진 다리가 있다고, 이왕이면 거기까지 가볼 것을 제안하였다.


그래서 101번 길을 타려던 우리는 다시 1번 길을 타고 캘리포니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왼쪽은 산맥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과 태평양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독특한 지형이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짜릿한 드라이버 길이었다.


빅 써 가는 길의 해안 절경


그리하여 약 30분 정도 더 달려가지 빅스비 크릭 브리지(Bixby Creek Bridge)의 멋진 자태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저 다리의 위용을 보기 위하여 차를 많이 세우는 듯 왼쪽 산사면에 꽤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평일이라 혼잡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주차를 하고 절벽 앞까지 다가가 다리의 위용을 보면서 동시에 깎아지른 단애 아래의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1932년에 건설되었다는 이 콘크리트교는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져 이쪽과 저쪽의 해안 단애를 고고히 연결해주고 있었다. 이 다리가 유명세를 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사진작가들의 최고 사랑을 받는 장소이자 자동차 광고에 곧장 등장하는 명소라고 하더니 과연 명성에 손색이 없어보였다.


빅스비 다리의 아찔한 모습


빅스비 브리지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101번 도로의 드라이브 길도 아름다웠다. 차가 85번 도로로 들어서자 퇴근시간인 듯 길에 차들이 즐비하였고 한결같이 생생 달리고 있었다. 나도 운전 첫날의 두려움을 버리고 쌩하니 달려 집까지 무사히 왔다.

첫 렌터 카 드라이브 길이 이렇게 멋지게 끝이 났다. 나서보기를 백번 잘했다고 흡족해하였다.

내일은 소망하던 레드우드 숲으로 가보자고 남편과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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