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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y 13. 2024

21. 레드우드 숲에 빠지다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메타세쿼이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혹해 있던 나였던지라 캘리포니아에 가면 꼭 레드우드 숲을 찾아 가 보고 싶었다.

캘리포니아에는 메타쉐콰이어(Metasequoia glyptostroboides)의 형제 나무들이 있으니 세쿼이아(Coast Redwood, Sequoia sempervirens)와 자이언트 세쿼이아(Sequoiadendron giganteum)가 그들이다. 1억 5천만 년 전에는 이런 종류의 나무들이 북반구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지금은 이 세 종류의 나무들만 남아있다.


양재천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세쿼이아 과(Sequoioideae family)에 속하는 이들 형제 나무들은 서로 다른 나무이면서 매우 유사하다. 세 나무 모두 키가 큰 침엽수이고 달걀모양의 열매를 맺으며, 오래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두껍고 붉은 껍질을 가지고 있어 레드우드라고 불리며, 이 두꺼운 껍질 때문에 산불에도 타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다. 다만 메타세쿼이아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점과 자이언트 세쿼이아와 코스트 레드우드는 모두 캘리포니아가 원산지이며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주로 자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코스트 레드우드와 자이언트 세쿼이아도 모양이나 서식지에서 차이가 나는데, 코스트 레드우드는 오레곤 주 남쪽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주의 북쪽까지 태평양 연안에서 주로 자라고 자이언트 세쿼이아보다 키가 크고  날씬한 편이다. 이에 비해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코스트 레드우드보다 줄기가 두껍고 키는 작으며 시에라 네바다 지역의 서쪽 경사면의 숲에서만 소규모로 서식하고 있다.


좌: Coasrt Redwood와 Giant Sequoia          우: 두 나무의 서식지



나는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자이언트 세쿼이아인 ‘셔먼장군(General Sherman)’을 만나기 위하여 미국에 오기 전부터 세쿼이아 국립공원 방문을 소망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일정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후일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 만나보기로 하고 우선 집 근처의 코스트 레드우드 숲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실리콘 밸리의 팔로 알토 시는 거대한 레드우드인 <엘 팔로 알토(El Palo Alto)>에서 유래되었다. 팔로 알토와 인접해 있는 마운틴 뷰도 코스트 레드우드의 자생지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시내 곳곳에서 키 큰 레드우드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잘 보존된 엄청난 레드우드 숲들이 있어 나의 소망의 일부는 풀 수 있게 되었다.


어제의 렌터 카 경험이 나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어제 산타 크루즈 산맥을 넘어가면서 보았던 레드우드 공원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처음 정한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빅베이슨 레드우드 주립공원(Big Basin Redwoods State Park)이었다. 이곳에는 1500년 이상된 키 100미터가 넘는 코스트 레드우드들이 즐비하다고 들어 진작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0년의 대형산불로 빅베이슨지역의 레드우드 숲이 큰 피해를 입어 레드우드의 위용을 느끼기에 역부족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은 근처의 Henry Cowell Redwoods 주립공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제 넘은 산타크루즈 산맥을 다시 넘었다. 1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스콧츠밸리 쪽으로 빠져 오른쪽 계곡으로 계속 들어가자 Henry Cowell Redwoods 주립공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문객 센터 바로 앞에서부터 규모가 엄청난 레드우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었다. 이 숲 속에서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약 90미터이고 나이는 약 1,500년이라고 하였다.


레드우드는 목재로써 사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1900년 초,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대부분은 벌목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오래된 레드우드 숲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Henry Cowell 같은 자연보호 활동가들의 역할 때문이었다고 한다. Henry Cowell은 특히 캘리포니아의 공원 및 자연보호를 위해 맹렬히 분투하였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은 캘리포니아의 몇몇 공원과 보호구역에 남아있다.


비지터 센터 앞에는 1934년, 번개를 맞고 쓰러진 나무 한 토막이 전시되어 있는데 예수탄생시기인 1세기부터 의 인류의 역사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위로 쭉쭉 뻗은 붉은 나무들 사이를 걸으면서 나무들이 간직한 옛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평화롭게 살았을 인디언들과, 모험심에 가득 찼을 스페인 탐험대들, 골드러시를 타고 몰려왔던 사람들과 나무를 베어내던 벌목군들, 거기다 벌목을 막고 나무를 지키려고 분투하던 Henry Cowell 같은 사람들. 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이곳에 서서 인간사의 굴곡을 지켜보았을 터였다. 말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면 고요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Henry Cowell Redwoods 주립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고목: 이 나무의 나이와 인류사를 알려주고 있다.

 



Henry Cowell Redwoods 주립공원 바로 곁에 Roaring Camp Railroad가 있다. 본래 이 철로는 벌목을 위해 만들어진 증기 열차라고 했는데 지금은 레드우드 숲 속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관광열차로 변신하였다. 여전히 증기를 내뿜으며 뿌앙뿌앙~기적을 울리며 레드우드 숲 속으로 사람들을 안내하여 인기가 높은 관광상품이 되어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니 기차역에는 유원지 같은 아주 작은 마을(펠톤마을)을 만들어 놓고 서부개척시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펠론마을: 옛 서부시대를 재현해 놓았다


기차에는 손님이 가득하여 놀라웠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동한 부모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려는 부모들의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싶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흰 연기를 내뿜으며 오래된 레드우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기찻길 바로 옆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뻗어있었고 쓰러진 고목들, 밑동에 구멍이 뚫린 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지나갔다.

도중에 잠시의 자유시간이 주어져 레드우드 숲 속의 산책도 허용되었다. 아이들이 쓰러진 나무 덩걸에 기어오르며 내지르는 환호소리가 즐거운 분위기를 돋웠다.

우리나라 제천 청풍호의 모노레일을 타고 숲 속을 올라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시간 30분 동안의 레드우드 숲 속 기차여행으로 레드우드에 대한 갈망은 어느 정도 충족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숲속 아슬아슬한 다리 위로 증기열차가 지나간다.


울창한 레드우드 숲속에서 산책 시간도 가졌다.




이왕 레드우드를 보러 나선 김에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드우드 숲 중 하나로 명성이 높은 뮤어 우즈 국립공원(Muir Woods National Park)도 섭렵하러 나섰다. 뮤어 우즈 국립공원은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태평양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영화 <혹성탈출>을 촬영한 로케이션으로도 유명하다고 하길래 얼마나 아름다울까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과연 뮤어우즈국립공원 내의 레드우즈는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나무의 위용이  헨리 코웰 주립공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세월의 위용을 자랑하는 레드우드 나무들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었고 숲 속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가만가만히 났다. 숲 속의 개울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어디에선가 신비로운 요정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크로아티아의 프리트비체가 생각났다. 프리트비체는 아름다운 요정의 숲으로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가보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그 곁으로는 작은 개울이 가만가만 흐른다.


오래된 나무에는 화마와 질병과 세월의 상흔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래, 상처받지않고 천년이상의 세월을 견디는 나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오랜 세월을 견대낸 나무를 장하다며  쓰다듬어 주었다


뮤어 우즈 국립공원 내의 레드우드 나무들


숲 속에 햇볕이 비춰 들자 붉은 나무줄기가 신비롭게 빛을 발하고 나무 그늘에 가려 어둡게 보이는 줄기와 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루었다. 저 숲 어디에서 <혹성탈출>의 주인공 원숭이가 짠하고 나타날 것도 같았다. 


빛이 만들어낸 숲의 신비스러움


숲 속에 홀로 놓인 벤치가 말할 수 없는 적막감과 함께 숲의 정취를 돋우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나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 모를 새가 아름답게 지저겨 주다가 제 길을 갔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브리지 4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위로 올라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지고 고요한 숲의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하여 나의 레드우드 숲에 대한 갈증이 완전히 풀렸다. 몸에서 레드우드 줄기의 붉은 물이 찔끔 흐를 것도 같았다. 

레드우드 숲이 오래오래 잘 보존되기를 희망하며 이제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혹성탈출>을 감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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