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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y 14. 2024

22. 샌프란 다시 보기: 두 얼굴의 샌프란시스코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남편이 칼트레인을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오자고 제안하였다.

“샌프란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오자.”

라고 하니 우리가  마치 샌프란 근교의 주민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돼 가니 이곳 생활에 대한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는가 보았다.

남편은 차이나타운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올 생각이었지만 나는 지난번 샌프란 여행 시 샌프란의 명물인 케이블 카를 타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 이 기회에 케이블 카를 한번 타보고 싶었다. 남편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듯 내 의견에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편은 아내의 의견에 따라주었다(미국에 와서 남편은 나에게 너무 양보를 많이 한다).


마운틴 뷰 역으로 가서 샌프란시스코행 열차표를 끊었다. 아들이 샌프란의 치안에 대해 누누이 염려를 표하였기 때문에 아들내외에게는 우리의 샌프란행을 알리지 않았다. 급행의 경우 45분 만에 가건만 바쁜 일이 없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칼트레인을 탔다. 한 시간 15분이 걸려 샌프란시스코 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종점까지 갔기 때문에 차장의 미국식 안내방송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칼트레인 역


미국은 자동차 중심의 나라이지 기차는 별로 중요한 이동수단은 아닌 것 같았다. 칼트레인만 해도 캘리포니아 전역을 카버할 것 같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길로이에서 샌프란까지만 운행되는 통근용 열차에 불과했다. 구글 맵을 보아도 도로는 크고 분명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비해 철도노선은 알아차리기도 어렵게 가늘게 표시되어 있다. 샌프란의 칼트레인 역도 시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 초입의 변두리에 있었다.

케이블 카를 타려면 유니언스퀘어까지 가야 했다. 샌프란은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들은 바 있어 구글 맵에 의지하여 걸어가기로 하였다. 마치 도시 탐험을 나서기라도 한 듯 우리는 비장하게 샌프란의 도로를 걸었다.


먼저 현대미술관 쪽으로 갔고 거기서 유니언스퀘어로 갔다. 도중에 길이 헷갈려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무리의 젊은 남자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남자들 곁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강하게 났다. 마리화나 냄새는 유니언스퀘어 쪽으로 갈수록 강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샌프란시스코의 공기 중에는 마리화나의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역에서 현대미술관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 커다란 비닐뭉터기를 짊어지고 가는 노숙자를 몇 명 지나쳤다.

지난번 딸내외와 샌프란을 방문했을 때, 조심성이 많은 우리 사위가 샌프란의 노숙자들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경고를 했던 기억이 났다. 지난번에는 사위가 운전하여 우리를 안전하게 모시고 다녔으므로 샌프란의 치안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관광지 곳곳에 자동차 파손에 대한 경고가 붙어있어 치안이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만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샌프란은 미국 내 자동차 파손 범죄 순위가 압도적 1위라고 하였다. 2위인 LA보다 무려 3배나 높다고 하니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듯도 했다. 그래서 차 안에 짐을 두지 말라는 경고가 가는 곳마다 붙어있는 가 보았다.


유니언스퀘어에 닿았다.

유니언스퀘어의 붉은 하트는 샌프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은 사랑과 꽃의 도시인 샌프란에 도착했음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는다. 나도 전에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유니언스퀘어에 있는 하트모양의 상징물


그런데 유니언스퀘어의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노숙자들이었다. 샌프란이 노숙자 천지가 되었다더니 정말인가 보았다. 호텔의 화장실에도 무엇인가를 경고하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나마 남녀공용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여러 곳에서 남녀공용 화장실을 만났던 터라).  

 

어떤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고 친절하게 물어왔다. 나는 감각적으로 그 사나이가 사기꾼 성향의 인물임을 알았다. 그냥 No, Thanks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샌프란은 1906의 대지진 후 완전히 새로이 건설되었다. 건물은 크고 아름답게 지어졌고 거리는 더 넓어졌으며 도로는 동맥처럼 이어졌고 멋진 기념물들이 세워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 이름다운 도시가 병들어 있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 유니언스퀘어라는 도심 한복판마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무언가 한적한 것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음습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유니언스퀘어 근처의 거리 모습


드디어 케이블카를 탔다.

1873년에 건설된 이 케이블 카는 전 세계 마지막 수동식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야말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이다. 센프란을 찾는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이 비히클은 낭만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샌프란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의 표지에도 거의 언제나 케리블 카의 유리창 바깥쪽 벤치에 메달려 도심을 달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소개될 정도이다. 유니언스퀘어의 종점에서 관계자들이 수동식으로 열차 궤도를 바꾸는 모습은 관광상품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모습이기도 하다.


케이블 카에는 샌프란을 찾은 관광객들이 여전히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언덕길로 오르는 케이블 카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창문 밖 벤치 의자에 앉고 싶었으나 남편이 그 자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나를 제지하였으므로 마지못해 안쪽 자리에 앉았다.


샌프란의 명물 케이블 카


케이블 카는 유니언스퀘어를 출발하여 차이나타운,  노브 힐, 금융 지구 등을 거쳐 종점인 피셔맨스 워프에 도착하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작은 도시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오르내리며 보이는 풍경들이 낯이 익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피셔맨즈 와프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공원과 바다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아까와 비숫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상냥한 미소를 띠며 자기가 뭐 도와줄 게 없겠느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어리벙해 보이는 동양인 노인네를 겨냥하여 한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남자를 무시하고 돌아가는 케이블 카에 앉았다. 이번에는 내 고집이 이겼다. 희망하던 창밖 벤치의자에 남편과 나란히 앉았다. 그래서 그런지 케이블 카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나는 샌프란에 다시 와서 케이블 카를 타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 카


예매해 둔 열차 시간에 맞춰야 했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칼트레인 역까지 걸었다. 남편도 나도 점심도 먹지 못한 채 허급지급 캐이블 카만 타고 돌아오는 꼴이 되었다. 열차의 이층 구석자리에 앉아 남편은 늦은 뱃줄식사를 하였고 나는 역사에서 산 커피와 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였다.

이날 우리는 진짜 많이 걸었기 때문에 열차를 타자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나 만족한 피곤함이었다.


아들에게 샌프란을 다녀온 무용담을 자랑하였더니 아들내외가 깜짝 놀랐다. 샌프란은 범죄발생률이 미국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이라면서 우리의 무모함을 걱정하였다.

우리는 차도 없었고 단출하게 우리 두 발로 걸어 다녔으므로 도난당할 것도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아들은 길에서 핸드폰을 날치기해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구글맵을 보고 다니는 관광객들이 호구가 된다고 했다. 낮에 본 말끔한 차림의 두 사나이가 생각났다. 커다란 비닐 뭉터기를 짊어지고 걸어가던 노숙자들도 생각났다. 거리에 넘치던 마리화나 냄새는 또 어찌할 것인가.


이날 내가 그토록 아름다운 꽃의 도시라고 칭송하던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나의 샌프란에 대한 소감을 수정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샌프란시스코는 샌프란시스코였다. 내게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의 도시였다. 나는  아름다운 도시로 샌프란시스코를 계속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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