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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y 18. 2024

24. 아들아 잘 살아라.

뱃줄 달고 미국 여행


내일이면 한 달간의 미국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미국생활의 결산이기도 하고 아들 내외와 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여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이별(fairwell)의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남편이 먼저 한 달간이나 부모를 모시느라고 아들 며느리가 고생이 많았다고 치하의 말을 꺼내었다.

아들내외가 먼저 우리를 초대하였지만 며느리는 여전히 시어른들과의 한달살이를 힘들어하는 것 같았고 아들은 그게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도 아들내외의 눈치를 보고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 남편은 미국 도착 일주일 후부터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지만 내가 남편을 누르며 한 달을 버텼다. 남편으로서는 대단한 인내를 보였던 셈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돌아갈 내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 집에 돌아가면 일단 내 마음대로  먹고 쉬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 수 있다. 


아들집에 지내며 가장 불편했던 일은 식성이 서로 다른 일이었다. 식성을 떠나 아들집의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며느리는 입덧이 심해 늘 힘들어하였고 아들도 어느새 미국입맛이 베었는지 햄버거며 멕시코 음식이며 인도음식 등을 시켜 먹는 것을 좋아하였다. 과일도 잘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채소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내가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깔끔한  아들은 냉장고에 금방 먹지도 않을 식품이 들어 있는 모습을 견디기 어려워하였다.


예전에 나도 신혼시절에는 그랬다. 딱 먹을만치 마련하고 남은 음식은 다 버렸다. 그런 우리 신혼집으로 시어머님이 오셨을 때가 생각났다. 시어머님은 시골에서 마련한 귀한 무엇인가를 머리에 이고 장시간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도착하셨으니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그런데 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니께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요리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고 있었으니 참 답답하셨을 것이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께서

“너그 집에 식은 밥 없나?”

하고 역정을 내셨다. ‘식은 밥이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자 냉장고가 비면 살림밑천이 거들 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


남편은 내가 냉동실을 가득 채우는 것에 대해 늘 불만을 가졌다. 어느 주말, 지방에서 서울 집으로 왔을 때 냉동실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이 냉동실에 들어있던 나의 살림밑천을 몽땅 버려버렸던 것이었다.

아들의 깔끔한 성격은 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 터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나저나 아들 집 냉장고를  내 집처럼 열고 음식을 꺼내먹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우리 시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큰아들은 손이 아프다”라고 자주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역시 결혼한 아들은 손이 아팠다. 


아들은 제 아버지로부터 회사생활의 지혜를 얻고 싶은 듯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남편은 일에 재미를 가질 것, 열심히 할 것, 동료와 잘 지낼 것 등을 아들에게 조언하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제 곧 아버지가 될 터이니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언행에 특별히 유의하도록 하여라”

라고 충고하였다. 특별히 남편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니 자신이나 가족에게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여라”라고 특별 당부하였다. 

나도 한 달간 아들과 지내다 보니 아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걱정하고 있었다. 남편도 아들의 그런 경향을 염려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8년여의 미국 생활은 아들을 상당히 낯선 얼굴로 만들어 놓았다. 

아들이 가장 낯설어 보이는 이유는 아들이 경제적 안정에 대해 상당한 초조감을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최고 관심사는 계속 오르는 집 값 속에서 어떻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어떻게 하면 금전적인 결핍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나는 아들이 경제에 관련된 독서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마디로 아들은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미래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불안한 법이다. 그러나 사람은 불안을 이기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 특히 내게는 아들이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여겨졌다. 아들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세계 일류기업에 취업해 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편이다. 제 아내인 나의 며느리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에서 포스트 닥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될 터였다. 내 눈에는 아들내외야말로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 부부로 보였다.


아들이 미국식 물질주의에 상당히 젖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물질적인 욕심이 커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지는 법이다. 언젠가 퇴임식장에서 한 경제학 전공 교수가 펼치던 행복론이 떠올랐다. 행복이란 욕망을 분모로 하고 가진 것을 분자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분자값이 아무리 커도 분모의 크기를 줄이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설파하였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창창한 미래가 너희 앞에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너무 한쪽에 치우친 독서는 심성을 황폐시키므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을 충고하였다. 아들은 나의 충고를 받아들일 시점이 아닌 것 같았다. 자기 엄마를 공감능력이라고는 단 1%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때 나는 참 슬펐다.


나도 서울의 미친 집값을 걱정한다. 자기 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한 가정에 있어 일생을 기울여 분투해야 할 대역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집은 살다 보면 어떻게 마련해진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남편과 나도 저축과 은행대출과 가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집을 샀다. 지금은 집값이 너무 올라 아들 같은 젊은 세대들이 절망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부터 절망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들은 하루빨리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세대인 나는 아들의 소망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들이 소망하는 삶이  아들만의  소망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욱 걱정이 된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하여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고 관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상주의자인 나는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려는 노력보다는 더 중요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많은 경험을 쌓아 인생의 폭을 넓히며 좋은 친구를 만들어(인생의 반려자도 포함이 된다) 행복한 인생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너무 돈에만 연연하게되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다 놓치고 마음을 황폐시키고 만다. 

젊은이들이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어 놀고먹고 해외여행하고 골프 치는 인생을 꿈꾼다면 인생은 너무 시시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 그들이 그 오랜 시간을 공부하며 인생에 대비해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들, 너는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보다 운이 좋아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취업하였고 아름답고 유능한 아내를 얻었다. 그러니 너는 운이 없어 고통당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운을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은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너는 더 부자친구들과 더 잘난 사람들을 바라보며 결핍을 느끼겠지만 세상에는 먹고살기 버거워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너는 나의 이런 생각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재 너에게는 결핍된 것이 너무나 많고 빨리 그 목표를 이루고 싶은 갈망이 너무나 크게 너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너도 이 엄마 나이가 되어보면 이 세상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회가 닿으면 크로포트킨이 쓴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거라.  


나는 아들이 출세, 부와 명예만을 좇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물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네가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욕심은 끝 모를 불행 속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법이니 분모인 욕망을 줄이고 너 자신을 신뢰하며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아량을 가지며 정의의 구현에도 관심을 가져 이 세상이 약간 더 나아지는데 네가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우리가 세상의 어떤 부모들처럼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서포트를 팍팍해주지 못하여 미안하다. 그러나 너희들을 키우고 공부시킨 것만으로 우리는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그동안 너도 네 처와 함께 우리에게 최선을 다한 것을 안다. 고마웠어.

덕분에 미국 구경 잘했다.

곧 태어날 새 식구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거라.

앞으로 수많은 암초와 더 많은 기쁜 일들이 너희들 앞에 펼쳐지겠지. 그러나 이 엄마는 너희들이 현명하게 인생을 잘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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