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여느 날과 같이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양재천에 놓인 작은 다리를 통해 개포동 쪽으로 건너간 후 타워 팰리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그때 믿을 수 없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타워 팰리스를 배경으로 천변의 개활지에 온통 하얀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던 것이었다.
개망초였다.
어제 그제까지 만해도 이곳은 녹색의 물억새 천지였는데, 언제 흰 꽃들이 피어 풍경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는가 하고 놀랐다.
김선굉 시인은 낙동강 강가에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가 피어 있는 풍경을 보고
‘모여서 아름다운 것 가운데 이만한 것 잘 없으리라.’
라고 읊었더니 과연 양재천에 핀 억만 송이의 개망초꽃은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웠다.
개망초 꽃밭으로 발을 내딛자, 꽃 억만 송이가 품어내는 꽃향기가 저녁 무렵의 양재천 천변의 넓은 공간에서 훅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보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듯, 중심의 노란 꽃(두상화)은 색이 선명하였고 노란 꽃을 둘러싼 바깥쪽의 설상화는 눈처럼 순결한 백색이었다. 개망초꽃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하고 새삼 놀랐다. 누가 이 아름다운 꽃에 개망초라는 얄궂은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타워 팰리스 쪽의 하늘에 불그레한 노을의 잔영이 약간 남아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개망초 꽃밭은 기괴하게 솟아있는 타워 팰리스까지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는 듯했다.
양재천 근처에 살면서부터 양재천 산책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남편이 암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양재천 산책은 절실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신념으로 남편과 함께 필사적으로 양재천을 걸었다.
걷는 도중, 벤치에 앉아 잠깐 쉬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그네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키 큰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번잡한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양재천을 걸을 때면 30년 전, 동경의 신주쿠에 살 때가 생각난다. 신주쿠를 흐르는 간다가와 강가를 걸으며 깨끗하게 정비된 천변과 천변에 핀 벚꽃과 물속을 유유히 누비던 붉은 잉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간다가와 강변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양재천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재천에는 간다가와 강변에서 볼 수 없는 메타세쿼이아, 은행나무, 느티나무, 양버즘나무 같은 큰 나무들이 멋들어지게 자라고 있고 아름다운 꽃이 피며 새들과 벌 나비가 찾아든다. 회색의 큰 왜가리와 직박구리, 참새, 물까치 등 새들이 날아오고, 물에는 잉어들과 청둥오리들이 평화로이 유영한다. 그래서 양재천을 걷는 것은 늘 새로운 발견이다. 나는 양재천을 걸으며 온갖 나무들과 꽃들과 새들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 그대들!
봄의 양재천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나의 재주 없음을 한탄하자 재주가 많은 인순 언니가 양재천 그림을 몇 점 그려 주었다. 예상한대로 아름다웠다.
개망초꽃이 가득 핀 양재천의 모습에 혹해 이날 양재천을 찬양하는 글을 처음으로 적었다. 그리고 이 재주 많은 화가의 그림을 넣은 <양재천 찬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양재천의 개망초 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