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나의 양재천 산책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서 시작된다. 늘씬하게 하늘로 뻗어 오른 나무들이 하염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매력이 있다. 양재천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양재천이라고 하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양재천을 상징하는 풍경은 단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수령 50년 가까이 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학여울역 건너편에서 시작하여 영동 2교까지 도로 양옆으로 나무 터널을 이루다가 그 후로는 <시민의 숲>까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진다.
나는 양재천을 걸을 때마다 양재천을 명품으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온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과연 이 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신록이 파릇하게 돋는 봄이면 죽은 듯이 서있던 나무에서 일제히 연한 고사리 같은 잎들이 펼쳐진다. 파스텔 색조의 연두색 잎들은 검붉은 나무줄기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양재천을 생명 가득한 곳으로 깨어나게 한다. 여름이 되면 나뭇잎들은 초록으로 무성해지며 시원한 풍경을 연출하여 초록의 터널 속으로 한없이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가을에는 나뭇잎들이 붉게 단풍이 져 마치 ‘빨강머리 앤’을 연상시키듯 주변 풍경을 로맨틱하게 변모시킨다. 심지어 겨울에 나목으로 늘어서 있을 때도 삼각형의 균형 잡힌 골격이 당당하게 드러나면서 나무의 아름다운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이 나무는 전국적으로 명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많이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가장 유명해 앞서 언급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최우수 길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나도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일부러 찾아가 걸어보았다. 그런데 돌아와 양재천의 이 가로수 길을 보면서 “어라, 가까이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잖아”하며 새삼 더 놀라운 기분을 느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절대 부럽지 않은 곳이 양재천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파랑새가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이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1943년 중국 쓰촨 성 양쯔강 상류 지방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 이전에는 화석 나무로만 알려져 있었다. 화석에서 이 나무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은 일본의 고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였다. 그는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했고, 이 나무 모양이 낙우송이나 세쿼이아와는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메타(meta) 세쿼이아’ 속(屬)으로 학계에 보고하였다(1941년).
중국에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실존한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의 아널드 식물원이 중국으로 달려갔고 그들이 이 나무를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 나무가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50년대 초반에 처음 도입돼 산림청이 대량 번식시킨 뒤 국가에서 이 나무를 가로수로 권장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양재천에는 강남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에 심어졌다고 하니 어언 이 나무의 수령이 50년 가까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포항에서도 이 화석 나무의 존재가 발견된 바 있으므로 메타세쿼이아는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건지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억 5천만 년 전에는 메타세쿼이아 형제 나무들이 북반구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메타세쿼이아를 위시하여 세쿼이아, 자이언트 세쿼이아의 세 종류만 남아있다고 한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세쿼이아와 자이언트 세쿼이아의 위용을 한껏 느낀 바 있었다. 미국 서부지역의 해안지방에 자생하는 세쿼이아 나무들은 키가 90미터까지 자라는 것도 있었고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는 줄기 밑동이 12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다. 메타세쿼이아의 원산지에서는 키가 35m까지 자랐다고 하니 그 자태가 대단했을 것이다.
나는 양재천 가로수 길을 걸으며 고대 한반도에서도 무성했을 메타세쿼이아 숲을 상상해 본다. 이 나무의 평균 수명은 100년 이상이고, 400년 넘게 자라는 개체도 있다고 하니 양재천의 메타세쿼이아도 잘 돌봐주면 오래 우리 곁에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해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나무들이 고마워 지나갈 때마다 말없이 나무를 쓰다듬어 준다.
4월의 양재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새순이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