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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06. 2024

3. 이른 봄에는 노란색 꽃이

<양재천 산책>

길을 가다가 땅바닥에 딱 붙어 피어있는 민들레를 보았다. 민들레의 노란색이 선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노란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색이다. 노란색이라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은 색이다. 그래서 노랑색이라고 적는다.

 

길섶의 노랑 민들레


이 아름다운 외양 속에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을 감추고 있다. 민들레는 밟히며 살아갈 운명을 예감한 꽃이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땅바닥에 딱 붙어 옆으로만 퍼지며 자란다. 민들레는 자리를 탓하지 않는다. 도심의 돌 틈 속에서도, 가시덤불 속에서도 고개를 내밀고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홀씨 되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미련 없이 여행을 떠난다. 낮은 자세로 견디다가 형제들과 결별한 채 낯선 길로의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민들레에서 생명력과 함께 진취적인 기상을 만난다.


민들레와 유사하게  생긴 꽃이 씀바귀이다.  씀바귀는 잎이 갈래가 많이 져서 민들레처럼 노랗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아련하게 보인다. 왜인지 마음이 가는 노랑꽃이다.


씀바귀꽃


그러고 보니 초봄에 피어나는 꽃들에 유난히 노란색이 많다.

눈 속에 피어난다는 복수초를 위시하여 지금 한창 노란색을 흩날리고 있는 산수유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는 개나리도 그렇다.


2월에 꽃을 피운 복수초(제주도에서 촬영),  아파트의 산수유,  양재천의 개나리


이른 봄, 양재천에 수선화가 피기 시작한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수선화 품종이 개발된 듯, 양재천을 화려하게 수놓은 다양한 수선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수선화를 대표하는 색은 노란색이다.


양재천의 수선화


수선화를 보면 영화 <닥터 지바고>가 생각난다. 혁명 와중에 반동분자로 찍혀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를 타야 했던 암울한 이 가족 앞에 유리아틴의 한적한 집 앞의 수선화는 말할 수 없는 애가를 들려준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쓸쓸하고...

그 수선화는 사랑하는 여인과 만삭의 아내 사이에서 번민하는 오마 샤리프의 깊은 눈매와 너무 잘 어울린다. 아! 시간 내어  <닥터 지바고>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노란 수선화가 만개해 있는 그 모습을  반복해 보고 싶다.


이 밖에도 영춘화, 생강나무같이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도 어김없이 노란색 꽃을 피운다.

영춘화 꽃 모양은 개나리를 닮았는데 줄기는 인동초 같고 꽃 색깔은 개나리 같은 노란색이다. 영춘화(迎春花)란 이름 자체가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이 꽃은 개나리보다 더 먼저 노랑 꽃잎을 연다.

생강나무 꽃은 산수유를 닮았다.

생강나무에서는 생강 냄새가 난다. 어릴 적 금정산을 뛰어다닐 때, 이른 봄에 샛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을 만나면 그때마다 줄기를 잘라 생강 냄새를 맡아보곤 했는데, 지금은 생강나무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생강나무를 강화도 <일만 위 순교자현양동산>에서 한껏 볼 수 있었다. 묵주기도를 하며 동산을 걷는데 생강나무 꽃 때문에 자꾸 분심이 들었다. 그러나 반가웠다. 생강나무 꽃!


영춘화와 강화에 있는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에서 만난 생강나무 꽃


양재천에는 산괴불주머니와 애기똥풀도 노란 꽃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이제 수줍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 꽃들도 좀 있으면 천변을 노랗게 물들일 것이다. 


양재천의 산괴불주머니 꽃(왼쪽)과 애기똥풀 꽃(오른쪽)


황매도 빼놓을 수 없는 노란 봄꽃이다. 양재천에 이 황매를 많이 심어두었다. 초록의 세상이 열릴 때 노란색 황매는 초록색 식물들과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더욱 생생하게 보인다.


양재천의 황매


봄에 피는 노란 꽃에 양지꽃도 빼놓을 수 없다. 양지꽃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산기슭이나 풀밭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핀다. 다섯 잎의 노랑 꽃잎이 햇볕을 향하여 활짝 고개를 든 모습이 마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양지꽃과 똑 닮은 뱀딸기꽃도 피었다. 이 꽃은 양지꽃과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뱀딸기 꽃이 지면 빨간 딸기가 열리는데 독이 없어 먹어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예쁜 식물에 뱀딸기라는 기이한 이름을 붙여 혐오감을 줄까? 꽃에게 미안한 일이다.


양지꽃과 뱀딸기꽃

 

언급하고 보니 이른 봄에는 노란색 꽃이 유독 많이 피어난다.

노란색 꽃이 많다는 것은 그만치 수분에 관여하는 곤충들이 노란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곤충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벌과 등에 등은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벌과 등에를 유혹하기 위하여 식물이 이 아름다운 노란색을 만들어 냈다면, 벌이나 등에 덕분에 내가 화사한 초봄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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