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이 약간 만들어지고 있네요.
시골집에 꽃이 피었다는 제보가 자꾸만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시골집으로 내려가고 싶어 마음이 들썩였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꽃소식을 알려주는 이들은 시골 동서와 진주에 살고 계시는 둘째 형님, 그리고 나의 두 언니들이다.
시골 동서는 시골에 살다 돌아가신 남편의 사촌 동생의 아내이다. 사촌 동생은 들일 하다 자신의 밭에 엎드린 채 일어서지 못하였다. 갑자기 과부가 된 동서는 그래도 삶을 영위해야 했기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열심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워낙 꽃을 좋아하고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그녀는 본인의 집을 꽃동산으로 만들더니 우리 집 정원에도 관심을 보인다. 수시로 각종 꽃모종을 우리 집에 이식해 주고 꽃이 피면 꽃이 피었다고 멋진 글과 함께 꽃 소식을 전해준다.
진주에 살고 계시는 둘째 큰 동서는 시골집에 위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시골집으로 달려가 준다. 가령 우리가 소등을 제대로 해두지 않고 서울로 와 버렸을 때나 현관문이 열렸을 때에 시골분들이 진주 동서에게로 연락을 취한다.
몇 해전 우리가 산청 삼매(三梅)를 보는 매화 나들이를 함께 했을 때 형님은 홍매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모양이었다. 그 후 홍매나무 한그루를 사서 시골 마당에 심으셨다. 형님은 2월부터 홍매의 개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골집으로 가서 중계방송을 해 주셨다. 역시 자신이 심거나 뿌리거나 해야 관심이 생기는 법인가 보았다. 관심이 생기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꽃밭에도 관여하게 된다.
나의 아바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는 나의 두 언니들이다. 내가 자주 시골에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아는 나의 두 언니들은 나를 대신하여 수시로 시골집에 가 주고 소식을 전해준다. 올해도 벌써 몇 번째 소식을 전해왔다. 2월에는 홍매 소식을 전하더니 3월에는 시골집 근처에서 냉이를 캐어 냉잇국을 끓여 먹고 놀았다는 사진을 올려주었다. 4월 초에는 시골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단속사 절터에서 쑥을 실컷 캐었다는 소식이었다. 언니들은 그때마다 나도 내려와 동참하자고 꼬셨지만 마음만 달려갔지 몸을 쉽게 뺄 수가 없었다. 막 손자를 봐주기로 결정한 때여서 나의 역할을 펑크낼 수가 없었다.
4월 초에 시골 동서가 시골집 마당 사진을 올려주었을 때만 해도 마당이 휑하니 비어 아무 생명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언니들이 “좀 있으면 차례로 꽃이 필 거야”라며 위로해주었다.
그러더니 5월에 들자 시골마당에 뭔가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꽃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먼저 모란이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왔다. 이어서 진주 형님으로부터 함박꽃이 피었다는 소식도 상경했다. 형님은 상기된 목소리로 “동서! 시골집 마당에 꽃이 가득 피었어. 함박꽃이 여러 개 피고 양귀비도 너무 예쁘다. 코스모스가 잔뜩 올라와 꽃을 피운 놈들도 있어. ”라고 하였다. 나는 “코스모스가요? ”, 라며 놀란다. 역시 야생의 생명력이 가장 강한 놈이 코스모스인 모양이다. 작년에 그렇게 뽑아버렸는데 꽃씨가 땅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았다. 날이 가물어서 키가 자라지 못한 코스모스가 급하다고 먼저 꽃을 피운 모양이었다.
5월 말에믐 진주 형님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졌다. 앵두가 익었는지 궁금하여 시골집에 들렀다고 하였다. 나는 마당 풍경이 궁금하여 형님께 사진을 부탁하였더니 아예 마당 전체를 비디오로 찍어 보냈다.
같은 날 시골 동서도 시골 마당 비디오를 보내 주었다. 이 비디오를 언니들에게 보냈더니 언니들이 궁금증을 못 이겨 5월 말에 또 시골집에 다녀갔다. 이번에는 산소 앞 팬스에 핀 장미까지 찍어 보냈다. 언니들은 마당에 쇠뜨기 풀이 많이 올라와 풀 뽑느라고 한바탕 점쟁을 치렀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꽃을 피운 개량종 모란과 작약의 일부는 가지가 꺾여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가지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꽃이 너무 큰 탓으로 보였다. 그 광경이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달려가서 지지대로 받쳐주고 싶었다.
담 밑에 심어둔 아이리스들도 올해도 잊지 않고 꽃을 피웠다. 커다란 독일 붓꽃도 피었고 노란 창포도 경쟁하듯 꽃을 내었으며 흰 아이리스들도 수줍고 우아하게 꽃을 피웠다.
이 아이리스들은 시골 동서가 갖다 심어준 것들이다. 시골집을 막 새로 짓고 마당이 텅 비었을 때 제일 먼저 꽃나무 몇 그루를 갖고 온 고마운 사람이 시골 동서였다. 아이리스를 길 옆 돌담 아래에 쭉 심었는데 해마다 꽃을 풍성히 피운다. 번식력도 놀라워 해마다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인이 봐주지도 못하는데 꽃만 홀로 피어 벌나비를 불러 모으고 있으니 참으로 대견하다. 언니들이 올려준 아이리스의 사진들을 보며 밀생 한 아이리스들을 좀 떼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꽃 소식에 몸이 단 나는 6월 초의 연휴를 맞아 시골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작약 한그루가 나를 위해 꽃 한송이을 남겨주고 있었다. 마침 오전에 내린 비를 맞고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있는 작약 꽃의 모습이 너무 화사하면서도 청초하였다. 딸이 작약을 좋아하여 시골 마당에 작약을 여러 개 심었다. 그중에는 재래식 작약도 있고 개량 작약도 있었다. 시점을 맞추지 못해 다른 작약 꽃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남아있는 예쁜 한송이 작약꽃을 딸 보듯이 반가이 보았다.
작약 밭 아래에 차이브가 보라색 꽃덩이를 달았다. 이 차이브는 작년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운 것을 시골 마당에 이식해 놓았던 것이었다. 그때는 실처럼 가늘어서 살까 싶지 않더니 기적적이게도 올해 꽃을 피웠다. 줄기도 많이 튼실해지면서 줄기에 비해 커다란 꽃을 굳건히 받치고 섰다. 스스로 버태 낸 생명력이 놀라며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차이브를 심어 풍성한 차이브 무리를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연보라의 차이브 꽃동산이 만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마음이 설렌다.
현재 우리 시골집을 가장 빛내주는 꽃무리는 뭐니 뭐니 해도 샤스타데이지이다. 청초한 무리의 흰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내 마음을 심쿵하게 한다. 중심의 노란 두상화는 달걀노른자처럼 노랗고 노란 중심꽃을 둘러싼 설상화는 눈처럼 순결한 백색이다. 무리 지어 핀 샤스타데이지의 청초한 모습은 마가렛과도 다르고 구절초와도 다르다.
이 풍성한 데이지 꽃도 몇 알의 씨앗에서 시작되었으니 자연의 번식력이 놀랍기만 하다. 이 데이지는 우리 동네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 맺혀있는 씨 한 줌을 따와서 번식시킨 것이다. 삼 년 만에 너무나 왕성하게 마당을 점령하고 말아 이것을 속아내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데이지가 왕성하게 자리를 차지하자 데크 아래 우에 피던 초화화가 완전 밀려나고 말았다. 데이지를 들춰내자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초화화 몇 줄기가 나타났다. 영역다툼에서 데이지가 승리하였다. 나는 초화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올해는 잘 볼 수 없을 것 같아 애석해하면서 초화화 뒤에 핀 데이지들을 뽑아주었다. 미안 샤스타데이지! 너무 번식을 잘하면 귀한 대접을 못 받는단다.
뒷마당 돌담 아래 심어둔 분홍낮달맞이꽃도 활짝 피어 돌담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이 달맞이꽃도 시골 동서가 몇 뿌리 가져다준 것에서 시작하였다. 달맞이꽃의 번식력이 샤스타데이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편이다. 분홍의 커다란 꽃이 낮에 피어 해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달맞이꽃으로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용을 닮은 예쁜 꽃들이 돌담 아래에 가득 피어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붉은 인동초도 담을 따라 올라가며 꽃을 많이 피웠다. 처음에 시골 동서가 인동초 삽목한 것을 몇 뿌리 가지고 왔길래 텅 빈 마당에 심었다. 그런데 인동초는 마당 한가운데에 심는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덩굴이 엄청 뻗어 나와 온 마당을 인동덩굴이 기어 다녔다. 그래서 담 쪽으로 옮기고 줄을 매달아 주었더니 삼 년도 안되어 이렇게 왕성하게 꽃을 피웠다.
본래 인동초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봄철에 꽃을 피운다고 하여 겨울을 참고 이겨낸다는 뜻으로 인동초(忍冬草)로 부른다고 한다. 고난을 이겨낸 정치가 DJ를 인동초에 비유하는 이유도 그가 가진 강인한 생명력과 인내심, 역경을 견딘 상징성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인동초도 생명력이 너무 과하다. 한 나무가 너무 번성하면 다른 꽃나무에게 위협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인동초를 뽑아버릴까 고심하기도 했는데, 꽃향기가 너무 좋아 웃자란 새 줄기만 잘라주고 그대로 두고 보기로 한다. 인동초는 향기가 좋아 향수의 재료로도 사용된다고 하고 긴 초롱처럼 생긴 안쪽 주머니에는 꿀이 듬뿍 들어있어 벌나비의 양식이 된다고도 한다. 우리 마당에 벌 나비가 끊임없이 찾아드는 이유도 이 인동초 때문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인동초 꽃을 보니 벌을 살리라는 서평원 회장님의 유지가 떠올랐다. 지금 나는 서 회장님의 유지를 일부나마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고 위로해 보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붉은 덩굴장미가 꽃을 피운 것이다. 이 장미는 양재천에서 주운 줄기여서 내게 더욱 의미가 있다. 양재천의 유수지 쪽에 붉은 덩굴장미들이 탐스러운데, 어느 날 산책하다 보니 관리인들이 줄기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나는 얼씨구나 하고 긴 줄기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 줄기를 여러 개로 나누어 삽목을 해두었더니 몇 개가 뿌리를 내렸고 시골에 이식하자 이 한나무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올해 놀랍게도 풍성하게 붉은 꽃을 피웠다. 언젠가 어느 날 돌담 위로 장미가지가 뻗어나가 아름다운 붉은 장미 덤불을 이룰 것을 상상하자 마음이 벌써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앵두도 익었다. 이 앵두나무는 남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함께하는 나무라고 하여 남편이 애착하는 나무이다. 왜인지 상태가 좋지 않아 우리의 걱정을 샀는데, 그래도 앵두를 빨갛게 달았다. 이 앵두는 새큼하고 달콤한 맛이 절묘하다. 원래 앵두맛이 그렇지만 이 나무의 앵두맛이 더 좋은 것 같다. 과육이 별로 없어 사실 과일로는 별로이지만 일하다 구갈이 생겼을 때 이 앵두를 한 잎 깨물면 새큼달큼한 맛이 입안에 돌며 구갈이 싹 가신다. 작년보다는 수확이 못하지만 그래도 땅이 만들어낸 작품이 신기하고 고맙기만 하다.
작년에 수많은 씨앗을 사서 서울 집에서 싹을 틔워 시골집에 이식한 것의 대부분이 죽었다. 버바스쿰만 몇 개 살더니 올해 이렇게 멋진 꽃을 피웠다. 매혹적인 보라색꽃이다. 나는 버바스쿰의 사방에 지지대를 세우고 줄로 묶어주었다. 땅바닥에 붙은 식물에서 이렇게 꽃대가 높이 쏫아오르고 줄기마다 꽃망울을 저렇게 많이 매달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것도 신비한 보라색의 꽃을 피워 올리다니... 버바스쿰에게 살아나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꽃양귀비도 돌계단 사이에서 꽃을 피웠다. 화려함으로 치면 붉은 양귀비꽃에 대적할 다른 꽃이 없다. 올해는 특별히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건만 작년에 몇 포기 피었던 꽃들에서 씨가 떨어져 저절로 핀 모양이었다. 오히려 씨를 뿌린 캘리포니아 포피는 이제 겨우 싹이 올라올 정도로 발육이 늦다. 캘리포니아에서 본 노란 포피밭을 만들려면 턱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붉은 양귀비 밭에 노란 포피도 지지 않고 피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가 안되면 어떠랴. 내년을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나의 작업 중 제일 성공적인 일은 3월에 모종을 사다 심은 로메인 상치이다. 언니들도, 진주 형님도 이 상치 잎을 따서 먹었다고 내게 칭송을 보내왔다. 나도 남은 잎들을 수확하여 서울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삭하고 싱싱한 로메인 상치로 인해 수확의 보람을 느꼈다. 그때 함께 심은 와일드 루꼴라는 전혀 기색이 없더니 이번에 가서 보니 몇 개가 싹이 터서 힘겹게 살아있었다. 그동안 땅이 너무 가물었던 모양이었다.
담아래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은 어린 모란이다. 청송의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모란 나무가 씨를 새카맣게 매달고 있었다. 주인에게 씨앗을 채취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주인 내외까지 가세하여 씨앗을 따주었다. 서울 아파트에서 싹을 여러 개 틔웠으나 시골로 이식에 실패하고 이 한송이만 살아남았다. 이 모란이 꽃을 피우면 청송 고택의 원주인에게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사례만 자랑하였지만 사실 실패가 더 많았다. 꽃씨의 싹을 틔워 시골에 이식한 버베나, 플록스, 네메시아, 루피너스, 숙근솔채, 캘리포니아 블루벨, 팬스데몬, 로도치톤, 락스퍼, 리야트리스, 채송화 등이 모두 죽었다. 크게 기대를 하며 심은 은목서도 말라죽고 말았다. 수선화와 튤립도 성공적인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수종은 수국이다. 수국은 여러 송이를 사다 심었건만 도저히 잘 되지 않는다. 너무 땡볕에 두어서일까. 아니면 물을 좋아하는 수국에 물을 자주 주지 못해서일까. 그저 땅에 심기만 하고 자주 돌보지 못하였으니 수국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처럼 나의 꽃밭 재건사업은 약간의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기는 하나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식물들을 들여다보니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내 집으로 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식물에서도 인연을 생각한다. 나와 인연이 있는 식물들을 잘 가꾸고 싶다. 이 나마의 꽃밭을 일구는데도 남편과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도움을 보탠 지인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중 가장 고마운 것은 자연이다. 흙이고 햇볕이고 바람이고 비이다.
이번에 가서 담을 따라 백화등을 두 포기 심었다. 백화등은 하얀 꽃을 엄청 피우는데 향기가 기가 막힌다. 비록 가느다란 두 줄기의 백화등이지만 금방 자라 담을 흰 꽃으로 덮고 향기를 피울 것을 믿는다.
나의 꽃밭은 나의 상상 속에서 풍성히 완성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