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분석가를 찾아서
1> 고양이는 기필코 내 방에 들어온다.
고양이는 자기 욕구에 충실합니다. 한 번 내 방에 들어와서 같이 놀고 자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이루어 냅니다. 행여라도 내가 문을 걸고 그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밤이 새도록 앞에서 울고 긁습니다. 아빠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달래다가 무섭게 혼내도 보고 간식을 주거나 고양이가 싫어하는 향도 피워보지만 새벽이면 내 옆에서 골골거리며 욕구가 충족되었다는 기쁜 노래를 부르며 자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놈들에게는 자기 욕구를 억압해서 무의식에 넣거나, 대화를 통해서 내일 출근해야 하는 아빠 사정을 고려하면서 포근한 이불을 포기하는 딜따위는 없습니다. 인간 문명 속에 살기 위해 욕구를 거세당하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고양이들은 고등한 언어도, 욕구을 희생했기에 나오는 신경증도 없습니다. 욕구만 채워지면 오늘 그냥 행복합니다.
그럼 우리는 완벽하게 욕구를 포기하던가요? 저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들을 지켜보면 자기 욕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실현하느냐는 문제일 뿐 우리도 결국에는 그 욕구를 충족받고 맙니다. 우리 어머니 경우 예쁜 이름이던 근사한 밍크 코트던 뭐던 우리 행색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도 말씀하시지만 결국 어떤 희생을 가족이나 당신이 치르더라도 손에 넣는 모습을 아들로서 지켜봅니다. 고양이가 저열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돈은 없지만 나름 성공한 회계사로 유도 코치를 겸하며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중에 글도 쓰고 사는 호주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우는 누가 보아도 어두운 터널에 살고 있습니다. 알콜 따위에 의존하기 십상이고 늘 우울하다는 말을 하며 친구도 없고 가족 친지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해 오늘 저녁이라도 무슨 사고를 친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불안한 중년 남자입니다.
내가 형으로 누린 행복감이랑 이 성공은 동생 인생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라는 부채감이 늘 나를 괴롭힙니다. 어려서는 그런 감사함을 몰랐다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그 빚을 갚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에게 투자한 내 시간이랑 노력을 더해 보면 동생 인생에 들어간 자원도 나랑 비슷할텐데 아우는 마음 속 사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가 겪는 결핍은 보는 사람도 목이 마를 정도로 끝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형된 죄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내가 형으로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닌 듯 동생이 나보다 늦게 한 가족이 된 것도 그 친구 잘못은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우리 부모님도 인간이기에 가진 한계가 명확했고 재벌도 아니기에 주어진 재화 속에서 자랐으니 아우는 그런 결핍이 있을 수밖에요.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삽니다. 유독 이 친구만 왜 이럴까요? 이 세상 모든 둘째들이 우리 아우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 가슴속에 있는 그 검고 강렬한 블랙홀은 엄마가 형만 사랑했기에 탄생한 결핍이라고 스스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에 P자도 모르는 아우이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고 남을 분석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도 언어가 있기에 생기는 욕망 중에 하나 같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 사람은 모두 기본이 투잡입니다. 내가 원래 하는 일 하나에 남들 심리를 상담해 주는 일 추가요.
2> 분석가 수난시대
정신분석을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분석가가 되고픈 욕망이 생깁니다. 주짓수를 오래 연마하면 시합 선수나 관장은 아니더라도 코치가 되어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랑 비슷한 느낌으로 누구나 가지는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욕구는 아니기에 반드시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고 막상 분석가가 된다고 해도 문제이긴 합니다.
프로이트 선생님 글에 보면 정신분석이 무엇인지 어린 의대생들 앞에서 세미나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선 거창하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 다들 자기 꿈을 분석하는 '자기 분석'으로 시작해 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 입문>에 나오는 이 부분을 오해하여 자기 분석을 통해서 분석가가 되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100년 전 상황으로 분석가가 세상에 한 명뿐인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조언한 것이니 지금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계속하는 이야기지만 분석가가 되기 위해서는 고도로 훈련된 분석가에게 '교육 분석'을 몇 년에 걸쳐 받아야 합니다. 관련 학위도 필요 없고 의사일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한국도 지역마다 우수한 분석가들이 있기에 예전처럼 외국에 나가서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습니다. 좋은 시절입니다.
20년 전쯤 프랑스에서 정통한 분석 과정을 이수한 분석가이자 석학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 정신분석 특히 라캉 연구 발전이랑 대중 확산이 이루어졌으나 그 석학은 교육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분석가라는 호칭이나 그 화려한 스펙이 무색하게도 내담자를 위계를 이용해 강간하여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 말씀처럼 장이 아픈 내과 의사는 오히려 그것이 환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정신병이 있거나 심각한 도착증세를 보이는 정신 분석가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분석가 자신이 자기 무의식을 마주하여 법을 갱신하고 환상을 횡단한 경험을 했다면 과연 그런 사고를 쳤을까 싶습니다.
그 사건 이후 피어나려던 우리 나라 라캉씬은 큰 혼란을 겪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피해자인 내담자들이고 다음으로는 그에게 교육 분석을 받고 배출된 분석가들로, 성범죄자에게 분석 받았다는 낙인이 찍혀 버립니다. 주짓수를 잘못 배운 사람에게 주짓수 블랙 벨트를 사사 받아서 도장을 개업했다는 식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니 스승이 엉터리인데 넌 말해 뭐 하냐.
그 석학이랑 함께 활동하던 분들 중에는 큰 혼란 이후에 갑자기 자신이 분석가라고 변신하여 화려한 언변이랑 강력한 이론으로 단숨에 스타가 된 분이 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교육 분석을 누구에게 받아서 분석가가 되었는지 애매하다고 하여 역시 그 스타를 욕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섹시하고 정신분석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한 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짓수 규정을 이해한 것일 뿐 실제 주짓수 시합을 나간 적이 없다는 비난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정신분석씬은 지금 그 누구도 온전한 분석가라고 말하기 조금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 둘 이전에 분석가들은 주로 정신과 의사들로 미국 등지에서 석/박사 과정 중에 외국어로 분석을 받고 돌아온 유학파 의사들이 주류입니다. 그들은 정신분석을 정신의학 하부 종목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더욱 큰 문제는 외국어로 분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무의식은 언어 중에도 모국어로 작동합니다. 외국에서 20년 넘게 산 저도 영어로 꿈꾸지 않습니다. 꿈에서 채소 종류인 매운 고추를 보았다고 분석가에게 말하면 우리 분석가는 그 안에 sexual 한 이미지를 바로 연결시키겠습니다만 호주 분석가에게 I saw a red pepper in my dream 하면 한국어는커녕 우리 문화를 전혀 모르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는 분석만큼은 모국어로 받겠습니다.
3. 기의 & 기표
라캉 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학'을 이용합니다. 소쉬르 형이 이야기하는 언어학이랑은 또 살짝 다르다지만 저는 그것까지는 모르고요. 대략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언어는 기표랑 기의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기표는 음성이나 문자이고 기의는 개념입니다. 미완성 핏덩이로 태어난 우리는 10년이 넘는 유아기/유년기 시절 내내 욕구를 보호자에게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지금 욕구란 내가 이루려는 뜻으로 이것을 보호자에게 전달하여 충족 받는 것이 목표가 되겠죠. 그럼 기의가 우선이고 우리는 기의에 접근하기 위해 기표를 사용한다고 하겠습니다. 언어학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으로 쌀로 밥 짓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갈 정도로 복잡해지는데요. 조금만 더 정리해 보겠습니다. 말을 통해서 우리는 의미에 접근하지요. 여기서 은유랑 환유 개념이 나오고요.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실재를 엄마가 가르쳐준 사전 안에서 적절한 낱말을 찾아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주야장창 떠듭니다.
그게 아니고 옆에 좀 더 쎄게.. 아니야. 늦었어. 지금은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고!
우리가 잡으려는 실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실재는 기표가 연쇄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른 기표들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 생각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분석가랑 우리가 카우치에서 나누는 대화 '자유 연상'이기도 하고 우리 언어가 가진 특성이며 무의식을 이루는 구조라고 합니다.
기표가 계속 미끄러지고 연쇄된다는 것을 이렇게 공부를 통해서만 이해한다는 것은 막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말은 시장 싸구려 좌판에서 파는 MBTI나 명언 모음에도 널렸습니다. 이것이 정신분석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분석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표는 미끄러진다는 개념이랑 욕망은 끝없이 변한다는 것이 어느 날 꿈에 이미지 형식으로 나타나 멋지게 이어집니다. 기표가 끊임없이 다른 기표로 치환되는 것, 무의식은 언어 구조이며, 언어로 인해 우리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삼단 논법이 완성되며 서로를 해석하기에 이릅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스스로 설득이 될 만큼 그럴싸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맞는 해석이던 아니면 매번 궁금해하니 꿈속에서 엉터리로 지어낸 서사이든 간에 꿈속에서마저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매달리는 제 모습이 대견해보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4. 예수 & 원죄
예수는 죄가 없이 태어나야 했습니다. 죄가 없는 어린양이 온 세상 모든 죄를 지고 희생되어야 세상도 악마도 인정하고 뻘쭘해서 닥치고 야훼 뜻을 따르겠지요.
생때같은 생명이 남들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 아닥하고 내 말 좀 들어라!
신약에 딴지를 걸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정말로 궁금해서 쓰는 것인데요. 예수는 죄가 없어야 했기에 동정녀 마리아, 즉 성욕에 이끌려 홀딱 벗고 헉헉 거리며 피스톤질 하다가 생긴 생명이 아니고 멀쩡한 남의 아내 몸에 천사가 씨를 넣어서 잉태한, 시작부터 죄가 없는 생명이라는 논리까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걷고 말하고 천상천하 설법을 전했다는 여래랑은 다르게 예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며 대략 평범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러다 가나안 결혼식에서 본격 사역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럼 아기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게 아기 예수는 엄마 마리아를 대타자로 삼아서 말을 배우고 엄마랑 근친하는 상상을 하고 마구간에 있는 짐승도 넘보는 수간 욕구를 거세당하며 상징계; 언어 세계; 문명으로 들어왔을 것인데요. 서른 살에 목수라는 직업도 있고 사람이랑 잘 어울려 살던 예수는 결국 오이디푸스 컴플랙스를 경험한 신경증자라는 이야기까지 감히 유추해봅니다. 진짜 문제는 위에서 말한 욕구 때문에, 태어날 때는 죄가 없게 설계되었을 지언정 말을 배우기 전에 상상계 혹은 실재계에 잠시라도 거했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 자체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경한 논의는 그만하고요. 이렇듯 무결한 원조를 만드는 일은 힘들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은 당연하게도 정신분석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전에 정신분석가는커녕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 개념도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논리로 순화 오류라고 여러 차례 말씀 드렸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도 주변에 최면 요법을 실천하거나 위대한 교수님들이 있어 사사를 받았다지만 그것은 최면술사가 되거나 정신과 의사가 되는 과정이고 정신분석가가 되는 '교육 분석' 과정은 아닙니다. 그러니 프로이트 선생님도 죄송하지만 자기 분석을 많이 하셨고 정신분석 창시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분석가는 아닙니다.
그럼 라깡 쌤은요? 의사가 된 이후에 루돌프 뢰벤슈타인(Rudolf Lœwenstein) 교수님에게 교육 분석을 받기 시작했지만 대판 싸우고 분석을 중단함은 물론이요. 뒤끝이 강했던 루돌프 형은 라캉 쌤이 분석가로 정신분석협회에 등록이 되는 과정에 초를 쳐서 엿을 제대로 먹입니다. 이런 두 사람이 분석가랑 교육 내담자였다니 분석을 제대로 주고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5. 완벽한 분석가를 찾아서
정신분석은 보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저는 이를 해결하고자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해 호주 상담학회에 가입하려 했습니다. 물론 정신분석은 보험처리를 못하게 막는 법이 도입되기에 그마저도 포기하게 되었고요. 더욱 큰 문제는 분석가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내담자들이야 어쩌다 하루가서 분석받고 상담료 내고는 휑하니 돌아오면 끝입니다. 하지만 분석가는 다양한 증상을 가진 내담자들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고나 송사가 일어나면 지켜줄 협회도 보험도 없겠지요. 문명사회에서 무보험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잘 아실 거라 더 이상 설명은 줄입니다.
분석가를 평가하는 기준에 당신 어느 학교 나왔고 누구에게 사사 받았냐고 따지는 것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생각하는 평가 기준은 얼마나 세심하게 내담자를 생각하는지 그리고 내담자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조각을 어찌 처리하는지 입니다.
모두 원죄가 있기에 완벽한 분석가란 시장에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완벽을 쫓아간다는 욕망 역시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이고 막상 완벽한 분석가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순간 그는 내가 찾던 분석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완벽한 분석이라는 것도 환상이니 불가능하겠습니다. 그럼 이 순환 오류에 그만 종지부 찍겠습니다.
위대한 분석가란 늘 공부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이 한 줄로 분석가에 대한 은유를 마감하겠습니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를 통해 끝없이 이어지던 생각도 멈추게 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The most uncompromising attitude on this question is adopted by J. G. E. Maass, the philosopher1805, quoted by Winterstein (1912): ‘Experience confirms our view that we dream most frequently of the things on which our warmest passions are centred. And this shows that our passions must have an influence on the production of our dreams. The ambitious man dreams of the laurels he has won (or imagines he has won) or of those he has still to win; while the lover is busied in his dreams with the object of his sweet hopes. . . . All the sensual desires and repulsions that slumber in the heart can, if anything sets them in motion, cause a dream to arise from the ideas that are associated with them or cause those ideas to intervene in a dream that is already present."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태도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가장 열망하는 것을 꿈에서 본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열망하는 것이 꿈을 생성해 낸다고 볼 수 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자신이 월계관을 썼거나 앞으로 쓰는 꿈을 꿀 것이고 사랑에 빠진 사람 꿈은 달달한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런 모든 행복감이나 혐오감은, 어떤 계기가 닿으면, 그 생각이랑 연관된 꿈을 일으키고 반대로 그런 생각이 지금 꿈에 끼어들기도 한다." (꿈의 해석, 프로이트,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