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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Jul 22. 2024

개, 갈증, 구멍 그리고 정신분석

루나로도 채울 수 없는 갈증

루나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에밀리랑 개공원에서..


저는 큰 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뵈온 적도 없는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도 그랬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기 전부터 그러했으니 이것은 만들어진 성향이 아닌 순전히 피를 타고 내려온 기질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옆 집에 사는 사모예드, 루나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지만 저랑은 이제 무척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니, 루나 보호자가 산책을 하려 집을 나오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단지 안을 돌다 곧장 우리 집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심지어 야간 산책을 하다 말고 밤 열 시에 우리 집에 루나가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아무리 섹스리스 집안이라지만 '밤 열 시에 그렇게 갑자기 오다니 루나야, 좀 너무하구나' 싶어도 밉지 않습니다. 시간 여유가 더 있어서 루나를 더 보고 싶을 뿐입니다.


루나는 말은 못하지만 한다면 오빠라고 하겠어요!

루나 엄마도 이제는 내가 루나랑 이렇게 친한 것을 응원하니 거의 공동 육아 수준으로 루나를 두 가정이 전력을 다해서 돌보고 있습니다.


루나 엄마도 이제는 맘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 다하라고 허락했으니 루나가 좋아하는 공원에 데려가 마음껏 친구 강아지들이랑 놀게 해 줍니다. 뛰어다니는 루나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이 날아갈 듯합니다.


썰매견답게 늠름하면서도 공격성이 낮고 사람이나 다른 강아지들에게 친절하기에 보는 사람마다 다가와서 예쁘다고 칭찬하고 만나는 강아지들은 1초 만에 절친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루나 엄마가 집에서 중국말을 써서 그런가 루나는 유독 중국말을 하는 견주들에게 다가서 인사합니다. 이 사정을 말해주면 처음 보는 중국인들이라도 빵 터지며 루나를 안아 주고 중국말로 뭔가 엄청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고 루나에게 키스해 줍니다.


북극 개가 호주라는 사막에 시집와서 중국인 집에 살며 한국 아저씨랑 놀러 다닙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제 평생에 꿈꾸던 소원 중 하나가 이루어진 것 같은 날들입니다. 큰 개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실컷 놀아주는 장면 말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소망했으나 마흔이 한참 넘은 이제야 제 힘으로 당당히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면 다시 모든 것이 공허해집니다. 루나가 옆에 없어서 그런가? 루나를 안고 자면 이 공허함이 사라질까? 아이고 그 말썽쟁이 강아지가 행여 여기 가만히 누워 있겠다. 도자기 박물관 황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루나를 보면 온 집안이 다 부서질 듯하고 나가서 놀자고 웡웡 짖는 소리는 단지 정문까지 울립니다. 그리고 늑대 혈통이라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북극 친구들 들으라고 하울리도 하니 옆 집에 루나가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왜 이 갈증이 사라지지 않지? 눈을 감고 아무리 루나랑 뛰어노는 장면을 떠올리고 루나 복스러운 털을 쓰다듬어 주고 깨끗하게 몸을 손수 씻어주는 그 시간을 복기해 보지만 나아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얼마나 더 큰 개를 품어야 내 마음속에 이 구멍이 채워질까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시달리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신분석 책을 폅니다.


정신분석에서 욕망은 가질 수 없는 것, 채울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여 부단한 노력이나 행운으로 그것을 얻거나 성취한다면 곧바로 내 욕망은 그것 임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옮겨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끝없이 변하는 욕망을 쫓아가다 보면 손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요. 루나랑 같은 강아지를 열 마리 더 얻게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말로 들립니다.


짱구야 좀 말려봐..

욕망 중에 욕망은 성욕이겠습니다. 그럼 성욕도 이럴까요? 아내랑 일본 음식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다가 만화 '짱구는 못 말려' 한 장면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짱구 엄마가 아빠에게 란제리 속 옷을 입고 술을 권하면서 뭔가 부탁하고 아양을 떠는 장면 같았습니다.


내가 알기로 짱구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인데 저 작가는 정신이 있는 친구인가 뭔가 싶다가도 남편을 위해 란제리를 입고 맘에도 없는 애교를 부리는 아내 모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럴 수 있는 아내가 있을 것입니다. 기질이나 성격이 맞아야 저렇겠지요. 좋은 아내 나쁜 아내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으로 우리 아내들이 일본 아내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돌아서서 잊어야 합니다.


내가 이집트 왕자라면 일곱 아내를 둘 것이고 그중에 한 자리는 꼭 일본 여성을 초빙하겠습니다. 근데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자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경험한 적도 없는 상상이지만 그럴 확률이 큽니다. 물량 공세로는 내 욕망을 이길 수 없다고 하니까요.


욕망이 가진 이런 기질, 구조, 근원 따위를 알아야 여기서 벗어날 것입니다. 아니면 전략을 바꾸어 욕망을 변하지 못하게 고체로 만드는 기술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럼 녀석을 사로잡는 순간 내 욕망은 채워집니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프로이트 유아성욕 이론은 사실 대부분 정확하게는 모르십니다. 대략은 어린아이도 젖을 빠는 행위를 통해 성욕이 생성되며 자라며 생식기가 성숙해짐에 따라 성욕도 다양하게 발전해 간다는 식으로 알고겠십니다. 정확하게 반대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 거면 그냥 모른다고 하시고 다시 처음부터 배우기라도 할 텐데 대부분 이걸로 안다 생각하고 절대 프로이트 선생님 텍스트는 읽지 않으니 무덤에서도 프로이트 선생님은 외롭습니다.


언어라는 코르셋에 우리 성기를 맞추고 있습니다.

성욕은 발달하는 것이 아니고 줄어드는 것입니다. 무엇도 가능한 상상계에서 우리는 언어가 지배하는 상징계로 들어가는 인생을 산다고  라캉 쌤이 했습니다. 그럼 언어는 상징이며 법이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통해 무한한 상상이 거세되며 이렇게 문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자꾸 거세되었다는 말일까요?



정확한 언어를 배우기 전인 모든 영유아들은 아직 문명에 들어오기 전이기에 성도착자들입니다. 그들이 사는 상상계에는 제한도 법도 윤리 따위도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성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 종種간에 장벽이 없습니다 (수간);

2. 근친 간에 장벽도 없습니다;

3. 대상에 규제도 없습니다 (성기에 국한하지 않음);

4.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똥을 핥아야 흥분하거나 시간屍姦 등);

5. 성性간에 장벽도 없습니다 (동성애).


위에 사항 중에 5번은 이제 대부분 문화권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에 아기는 자라면서 언어를 배우고 규제를 당하면서 하나하나 이 욕망들이 거세되어 잘려 나갑니다. 아프고 힘들기 그지없는 과정으로 교육을 받는 것으로 문명 속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가끔 연인들이 성교를 하기 전에 어린 시절로 퇴행한 듯이 혀 짧은 소리를 하거나 아기 흉내를 내면서 서로를 "아기야~ 자기야~"부르고 염병 지랄하는 현상도 착실하게 이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광수 교수님이 꿈에 그리던 여성을 찾아서 결혼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톱이랑 하이힐 페티시가 있다는 교수님은 결국 그것을 받아주는 여성을 만나서 결혼했지만 종국에는 또다시 이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 인터뷰라 이혼은 아니고 동거 종말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행정 절차가 아니고 내가 그토록 원했던 도착을 만족시켜주며 날 존경해 주던 여성이랑 섹스도 결국에는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이야기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이따위 정신분석 이론을 모르는 MC는 입 헤~벌리고 무슨 섹스 이야기 더 나오려나 딴생각하는 듯했는데 저는 너무나 슬펐고 내가 교수님을 인터뷰했다면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쑈는 그냥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셨기에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영영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거세되어 있기에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해도 결국 욕망을 채우는 것에는 실패하며 기껏해야 이렇게 글을 써서 뭔가를 남기거나 개랑 놀면서 다른 식으로 욕망을 승화시키는 정도가 다이지만 그런 유사 행위는 그때뿐이니 평생 남는 것은 신경증뿐입니다. 결국 신경증이란 내가 가진 강력한 욕구가 거세되어 무의식에 억제된 이후에 현신現身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아 검열을 뚫고 기형처럼 올라오는 증상입니다. 문명 속에 사는 우리 모두가 신경증, 노이로제를 앓고 있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무한한 상상으로 엄청난 성욕을 가졌던 유아기를 떠나 꼰대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는 늘 유아기로 퇴행하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으니 그것이야 말로 잃어버린 대륙이며 상실한 시기입니다. 누가 아이들을 순수하다 했나요? 개뻥입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우리랑 다릅니다. 그들 육체는 동물병원에서 중성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언어 속 상상계에 살지 않기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거세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먹고 싸는 것만 충족되면 갈증도, 구멍도 모두 메워질 것입니다.


북방계 썰매견인 루나는 땅을 파고 들어가 체온을 유지하려는 습성을 보입니다. 루나야 근데 여긴 호주라는 사막이야..


언어로 지어진 세상에 살기에 내 실재랑 다를 수 밖에 없는, 언어가 만들어 놓은 내 주체는 영원히 대사가 맞지 않습니다. 그 어떤 정교한 언어도 내 실재를 모두 구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가진 이 갈증, 내 안에 있는 이 구명은 채워질 수 없다고 프로이트 선생님도 라깡 쌤도 말씀하십니다.


그럼 정신분석을 받으면 신경증 님이랑 이런 갈증 님이 좀 가실까요?


라깡 쌤은 이런 욕망은 상상계 법 안에 있는 것이며 이것을 초월한 반은 법, 반은 불법인 욕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이상스/향락이라고 하는데 채워질 수 있다고도 하는군요. 그것이 정신분석이 목표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주변에 이런 것을 채운 사람이 있을지 먼저 조사해 봅니다. 먼저 미성년자 강간으로 감옥에 간 화가 친구를 인터뷰하려 했지만 한국은 형량이 짧아서 벌써 출소한 덕에 면회 가려고 준비하다가 출소해 버리고 잠적해서 기회를 잃었습니다. 녀석은 선생이라는 위계를 이용해서 학생들이랑 성관계를 맺고 이를 몰래 촬영까지 한 혐의를 인정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정신분석을 받았고 지금은 정신분석가로 활동 중인 분에게 물었습니다. 정신분석을 받으니 좋던가요? 갈증이 좀 채워졌나요?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분석체험자는 분석을 받고 나면 사람이 좀 싸가지가 없어지고 야해진다고 했는데 대략 무슨 말일지 감이 왔습니다. 내 욕망이나 주이상스를 모두 채우진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10년 전인가 정신분석씬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담실 강간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수재 중에 수재이며 외국에서 정신분석을 사사한 정통 중에 정통인 분석가가 자기 환자들을 위계를 이용해 섹스를 해대고 영상 촬영도 하다가 거부하면 몰래 찍는 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지인들에게 돌려보다 걸렸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는 분석가이면서 자기 욕망을 분석받지는 못했는지 어떻게 법을 어기라는 자기 욕동에 끌려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치네요.


미국 사례를 보아도 15% 이상 상담사/분석가들이 내담자랑 섹스했다는 통계도 있다니 분석을 또 받으면 뭐 하나 싶습니다. 분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호통칠 분들 반응이 뻔하니 어디 가서 정신분석 공부한다고 말하기가 애매합니다.




글을 마치려 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썼다고 한들 바뀌는 것도 채워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내 구멍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고 할까요? 하지만 미세한 희열은 느낍니다. 너무 어두워 형체도 몰랐던 두려움이 대략 실루엣이라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루나, 2024



"성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유아기의 과다한 성을 상실하는 것, 감쇄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이트에게 유아기는 성이   자유롭게 방출되던 시기,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상실된 시기이다. (중략) 성인의 성이란 바로 상실로부터 되돌아온 유아   성욕의 잔재이다. 즉 유아 성욕의 흔적에 불과한 것이다." <미성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성년의 정신분석학>, 문학과 사회, 맹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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