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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Jul 17. 2024

정신분석으로 본 신병神病

무당, 원시종교 & 해리장애

만신萬神은 무녀巫女  여자 무당을, 박수는 남자 무당을 칭한다고 합니다.


<파묘> 리뷰 등을 하면서 몇 번 무당이나 우리 민속 종교 (무교巫敎)에 대해 썼는데요. 오늘은 무당이 되기 위해서 겪는다고 알려진 이른바 "신병"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누군가 신병에 관해 정신분석 관점에서 쓴 글이 있을까 하여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으니, 이번에도 제가 보고 싶어서, 논문을 몇 개 찾아보고 쓰겠습니다.


www.dsm5.org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약칭 DSM)2013년에 다섯 번째 개정판까지 나왔고요. 네 번째 버전인 DSM-4에는 우리 "화병 Hwabyung"이랑 "신병 Shin-byung"이 다른 문화권 증상으로 소개되었다고 해서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DSM에 신병이 등록 되면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문화로 대했던 신병을 진단 매뉴얼에서 보게 됩니다. 신병이 진짜 '병'이 되는거죠.


그런 논의보다 제가 기대했던 것은 외국 연구자들이 제 3자 입장에서 우리 K-증상을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를 보는 거였어요. 지금 DSM-5TR에는 그나마도 신병 내용은 삭제된듯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용어 정리를 하고요. 논문은 제가 평소 하는 이야기 방식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Glossary

강신무 = 신내림을 통해서 무당이 된 경우.

세습무 = 세습을 통해 무당이 된 경우.

공수 = 신령이 무당 입을 빌려 단골(의뢰인)에게 자기 뜻을 전하는 일.

신병 = 특정 신이 어떤 사람에게 내렸을 때 생기는 현상 (신들림).

영험함 = 신이 자기 전문 영역 내에서 발휘하는 초자연 힘.

빙의 = 귀신 등이 인체를 통제한다는 개념으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흔함.

신점 = 태어난 생년월일시로 점을 치는 사주랑 달리 신으로부터 받은 영험한 능력을 통한 점술.

인다리 = 人다리, 신내림을 거부할 경우 다른 가족을 죽게 하여 신으로 가는 다리로 인간을 씀.




깊은 논의를 하기에 앞서 가장 유명한 개념인 강신무랑 세습무를 살펴보자. 강신무는 경기 북부인 서울, 황해도 지방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북방 시베리아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샤머니즘이라는 것이 원시종교 혹은 고대종교로 분류되고 중세를 거치면서 대부분 유교나 불교 같은 고등종교 영향으로 사라지거나 남았다 해도 아주 일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기독교같은 거대 종교랑 함께 살아남아 번창하고 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이런 무속 신앙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으나 조정이 무당에게 세금을 걷는 무포세(巫布稅)를 도입하는 바람에 오히려 무속을 공식 인정한 꼴이 되어 지켜진 것으로 보인다. 순조 무렵엔 전국에 2천 명 정도 무당을 관청에서 확보하여 관리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강신무는 신병체험을 통해 무당이 되지만 세습 성향도 있으며, 영험한 능력을 바탕으로 하되 개인 능력뿐 아니라 예술 소양도 필요로 한다. 북방 샤먼 계통이 내려와 강신무를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남부지방 세습무랑 오랜 시간 섞여서 이 구분은 이제 크게 의미가 없으며 원래 계통이 그러했다고 참고하는 수준으로 보자. 하지만 강신무 특성을 따로 구분해 보는 것은 공부에 도움이 되기에 그 특성을 간략하게 보자.


첫째, 무병 또는 신병 체험을 한다. 보통은 신이 강제로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무당이 되고 싶어 기도를 통해 신내림을 요청해서 받는 경우도 있다.


둘째, 신당이 있고 신관을 나타내는 도구/무구들이 있다. 신 형상을 그린 무신도나 굿거리에서 무당에게 들어온 신격에 따라 갈아입는 다양한 무복, 작두 타기, 사실 세우기 등 신비한 힘을 과시하는 굿진행도 여기에 속한다.


셋째, 굿 진행이 타악기 중심이고 뛰는 춤을 주로 시연한다. 이것이 세습무랑 차이라고 하기도 한다.


넷째, 영력에 의한 점(占)을 행한다. 대부분 강신무들은 별다른 질문 없이 곧 장 의뢰인 신상을 파악하고 점사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강신무는 단순한 사제 역할이랑 신과 인간 사이 중개자 역할을 넘어 때로는 자신이 직접 신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신을 모시려고 하는데 도저히 신이 오지 않아 억지로 굿을 하는 경우도 있다네요. 또한 구애비鬼業라고하여 강신무당들이 후손으로 신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했던 무구들을 땅에 묻거나 불태워 버리는 관습도 있다고 합니다.


"신병이 무당 혈연과 무속 집안의 환경적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신의 점지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기는 것인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 까지 강신무당 발생설에 관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무당 집안의 혈연관계와는 무관하게 갑작스러운 신내림에 의해 무당이 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나 신빙성 있는 어떠한 자료는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당의 신병과 신들림, 양종승, p117)


대부분 예비 무당들은 초기에는 신을 받지 않으려 버티며 신병을 지니고 살지만 끝내 거부하면 '신벌'이라는 혹독한 고난이 자신이나 가족 혹은 후대에 온다는 스토리는 흔하다. 가령 인다리. 사람마다 신병 증상은 다르지만 신병이 본격 시작되면 빈곤해지고, 사회에서 고립되며, 정서 불안에 시달리다 많은 경우 환각, 환시, 환청 등을 동반하는데 주요 증상은 아래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것들이다.


1. 우연히 시름시름 않는다.
2. 밥을 먹지 못한다.
3. 몸에 마비가 온다.
4. 이유 없이 몸이 마른다.
5. 사지가 쑤시고 뒤틀린다.
6. 마음이 들떠 안정할 수 없게 된다.
7. 꿈이 많아진다.
8. 집을 뛰쳐나가 산야를 헤맨다.
9. 몸이 아플 때 의약치료를 하게 되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10. 가정파탄을 맞아 이혼을 하게 된다.
11. 직업을 자주 옮긴다.
12. 모든 일에 의욕이 없다.
13. 신비스러운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14. 혼자 있고 싶어 한다.

15. 괴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16. 강한 힘이 솟구친다.
17. 먼 곳에 있는 상황을 알아맞춘다.
18. 아픈 사람을 낫게 한다.
19. 사업을 망치게 한다.
20. 재성 손실을 보게 한다.
21. 미래 일을 알아맞춘다.
22. 신 물건들을 캐어 온다.

(무당의 신병과 신들림, 양종승)


신병은 불치병이 아니다. 치유 방법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무속 의례를 통한 굿이다. 그리고 날 찍은 신에게 내 몸을 바치면 그 대가로 무당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신점을 보게 되거나 영화 <파묘> 김고은처럼 칼로 자기 얼굴을 그어도 해가 없다.


다음으로 세습무는 신병이나 내림굿보다는 혈통을 중심으로 한 세습을 뜻한다. 경기 이남을 기반으로 한 전라도 경상도 남부지방에서 유행했으며 신분제 사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기에 세습무란 있기 힘들다. 이러한 세습무는 당연하게도 영험한 능력이 없어도 굿을 한다. 도제식으로 스승에게 배워서 하면 되는 것이다. 영력이 없이 제사를 수행하는 사제개념이다.  


세습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신라 화랑 제도는 정치, 군사 이외에 종교, 예술 요소들이 있어서 무부들이 활동했다. 그래서 남부 지방에서는 무당을 "화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랑이들은 굿판을 직접 운용하지 않더라도 무부로서 굿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무녀에게 가르쳤다는 기록도 있다. 특이한 것은 아무리 무부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굿은 무녀가 담당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렇다 보니 이남 지역 여성은 영험한 능력보다는 무부랑 결혼하여 배움을 통해 세습무녀가 될 수 있다.


세습무는 세습무계 출신 여자가 세습무계 출신 남자랑 결혼한 후 시어머니로부터 기능을 물려받는 ‘시어머니-며느리’ 또는 ‘아버지-아들’의 세습 관계로 무업을 계승하기도 한다. 여기부터는 주제별로 묶어서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1 남자들 역할

강신무 집안 남자(무부巫夫)들은 무속이랑 전혀 관계가 없다. 아내가 영험한 능력을 받은 무당일 뿐 자기 일을 한다. 한편 세습무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일을 가르치듯 사사하는 것으로 그 중간에 남편이 있으니 남편은 아내가 무당 일을 할 때 옆에서 경을 읽거나 굿거리에 도움을 주는 정도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다루는 것은 어차피 영험한 영역이고 귀신에게 소원하는 경우가 많으니 경기 이남의 세습무들도 강신무 요소가 들어감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나라 무속은 이련 이유로 자연스레 강신무가 주를 이루게 된다.


2 북방 vs 남방 논쟁

경기 이북은 수렵 위주로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고, 북방 민족이랑 잦은 전쟁으로 종교보다 무력(武力)에 의한 통치가 주로 이뤄진 데 비해, 경기 이남은 농경 위주로 정착 생활을 했고, 안정된 사회생활 속에 무(巫)와 같은 종교가 정착될 수 있었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으나 너무도 막연하며 뒷받침할 근거도 삼한 시대 이전 것들이기에 이러한 논의는 사실상 역사에 입각한 논의라기보단 지금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추정에 가깝다.


3 강신무 vs 세습무 차이

강신무와 세습무는 여러 차이가 있다고 한다. 굿을 하는 방법에서도 강신무는 굿하는 도중에 신이 들려 스스로 신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굿거리가 바뀔 때마다 화려한 무복을 갈아입고 신칼, 방울 등과 같은 무구들을 들고서 춤을 추며 몸에 내린 신을 통해 신이 전하는 말을 하는 공수를 내린다.


이에 비해 세습무는 음악 연행 위주로 신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인간 소원을 빌어 주는 식이다. 세습무는 굿거리에 따라 무복을 갈아입지 않고, 방울이나 삼지창 등과 같은 무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또한, 곡예나 묘기 같은 화려한 볼거리가 제공되지 않으며, 빙의해서 내리는 공수도 없다. 하지만 방식 차이일 뿐 그 안에 세계관, 신관, 계통은 맥을 같이한다. 무엇보다 강신무들이 몸주신으로 모시는 신들은 조상신인 경우가 많아서 혈통을 통한 대물림, 즉 세습인 경우가 많다.


강신무-세습무 구분은 현재 무당들도 자신을 그렇게 나눌 정도로 학계뿐 아니라 모두 인정하는 양식으로 매김 했지만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 1920년대 서양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우리 무당에 대한 기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구분은 없었으며, 20세기 초 한국무속에 대한 근대 연구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강신무는 집안 세습이고 세습무도 영험한 기운을 신봉한다.


무엇보다 이런 구분이 주는 가장 큰 폐해는 다양한 주체성을 가지고 무업에 종사하고 있는 무당들 모두를 담고 분류하기에는 부족하며, 우리 무당들이 단 두 가지 방식만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가령 독경을 하는 독경무 같은 한국무속 전문가들은 강신무나 세습무 구분만으로는 서술하기 힘들어 자칫 아예 없는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무당을 규정하고 기록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강신체험  여부뿐만이 아니라 지역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강신무-세습무 구분은 깔끔하며 일반론으로 쓰기에 좋지만 너무 단순한 것을 넘어, 현실 무당은 훨씬 복잡한 성격으로, 이렇게 둘로 나뉘는 경우가 없다.


전통신앙이나 한국무속 연구에 대한 논문이나 자료도 많은데 시간 제약이 있으니 옥석을 가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강신무-세습무를 태고적부터 있던 무당 정체성인양 쓴 글은 거르면 되겠다. 무속 전문가가 아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볼만한 교양서라면 어느 정도 수용하겠지만 진지한 연구 논문에서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4 진오기굿

무당들은 망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서 굿거리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진오기굿이 이루어질 때 무당이 망자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줄수록 무당은 인정받고 그 권위는 올라간다. 그리고 단골객이나 구경온 사람들도 굿판에 적극 참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망자 모습을 굿판에서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도 무당 역할인 셈이다.


조상거리에서 무당이 얼마나 재가집을 울리는가에 따라 무당 능력이 판단되는 만큼 망자 역할을 다하는 무당 소임은 막중하다. 망자 혼이 내리긴 내렸는데 정확하지가 않아 무작정 높이 뛰기만 하다가 우연히 천정을 건드려 망자가 천정에 숨겨 둔 돈을 우연히 발견하여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이런 굿을 진오기굿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친다.


5 무당은 여자가 많다.

우리 무속신앙을 처음으로 연구한 기록이라는 1920년대 미국 선교사들 글에서도 무당은 여자가 많다는 내용을 볼 수가 있다. 이 특이점에 대한 분석이나 명쾌한 해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없어 보인다. 이 역시 정신분석 측면에서 아래 다루어 보자.


강신무․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범


6 원시종교 vs 고등종교

종교란 영험한 초자연 힘을 이용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로 거칠게 요약할 수도 있다. 종교가 현실생활과 얽히는 정도는 미개한 사회일수록 높다. 초자연 영역이랑 현실생활 사이에 관련성은 조상숭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대가족 사회에서 흔히 보인다. 그러니 무당들이 조상신, 할아버지 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특히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시종교는 뚜렷한 교조(敎祖)나 문자로 표현된 교전(敎典)을 갖지 않으며 체계 있는 교리도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치·경제·도덕·관습·사회 등의 각 제도랑 자연스레 얽힌다.


논공 천왕당, 대구시 민속자료 5호

기독교 세계관에서 보자면 시온 산에 실제로 야훼가 거주했던 구약 시대에서 시작, 예수가 잠시 도래한 신약을 지나, 지금은 모두가 떠나고 성령만이 공기처럼 우리에게 남아있다. 구약은 원시 종교로서 모습이 어느 정도 보인다. 그리고 신약으로 오면서, 금기/제약보다는 교화를 통한 전도 방식으로 고등종교로 진화해 간다.


구약 시대는 야훼께서 정말로 이 땅에 거주하는 시기로 온통 악마랑 신들 그리고 영험한 예언자, 위대한 제사장들이 이 땅에서 불을 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바다를 가르는 기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으니 지금 무교 세계관이랑 비슷하기에 샤머니즘, 원시종교랑 비슷하다고 한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거의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불가라는 고등 종교가 있음에도 우리 무속은 석가-여래보다 아래에 위치한 작은 신들을 믿는 Sub-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더 크고 강력한 신/대타자가 있는 세계관에 흡수되어 작은 세계관은 사라지기 마련인데 우리 무속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서비스 영역이 다르다. 불가는 세상을 통합하는 거대 종교로 내 자잘하고 때론 사악한 욕망 하나만 딱 떼어내서 부탁하기 힘들다. 불가에서는 수행을 통해 욕심을 버리며 내 근원을 뜯어고치기를 바라나 우리 무교는 내가 모시는 신이 가진 힘 자체가 특정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기에, 애정운이나 사업운 시험대박 등 일타강사처럼 전문신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시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무당 역술인 100만명 목사 다섯배, 교인 25%가 점을 본다. 점술산업 규모 10조 - 한국기독일보, 2022


우리 무교도 고등종교로서 특성을 충분히 보인다. 가령 구전으로만 온다는 '공수'도 일부 지역에서는 문서로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은 없어진 단골판 제도 역시 단골무당이 단골객을 관리하며 은퇴 시에는 적절한 시장 가격을 책정에 다른 무당에게 넘기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무포세가 있어서 버텼다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데 무교가 어찌 이렇게 성행하는가? 이 논의는 고등종교-원시종교 측면에서 다루면 끝이 없겠다. 아래 정신분석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짧게 말해 내가 믿으면 고등종교요, 니가 믿으면 원시종교다.


7 종교적 직능자 / 지도자

대부분 사회에는 영험한 존재로 믿어지며 대중을 인도하는 특수한 소수 인간이 있다. 종교 직능자도 이런 부류이다. 우리 인간은 이상하게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그 진리가 설파되는 과정에서 인간 모습을 한 신이나 적어도 인간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을 필요로 한다. 짐승이던 괴물이던 하다 못해 식물이나 바람이라도 내게 말을 해주길 바란다.


이것은 모든 신화나 법이 시작된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으로 발견되는데 법을 제정하려면 나랑 다른 대타자 혹은 위대한 지도자 추장이 처음 선포해야 하는 선행 조건을 필요로 한다. 옆 집에 사는 아저씨가 선포해서는 법이 될 리가 없다. 나랑 같은 계층 사람이 지정한 법은 아무도 따르지 않으려 하니, 나보다 높은, 신령한 권위가 있는 누군가 있어야 비로소 법이 시작된다.


아무리 논리가 정연한 법이라도 친구가 말하면 웃기고, 엿같은 법이라도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직인을 찍어서 공표하면 따른다. 우리는 왜 이럴까? 이 역시 정신분석 측면에서 아래 다시 다루자.



8 현대 심리학에서 본 신병

상담학, 스키너, 심리학

신병(神病)을 현대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볼까? 우선 별로 없다. 강화이론으로 유명하며 다양한 동물 실험을 통해서 잘 알려진 스키너 형이 미신에 대해 말한 것을 겨우 찾았는데 이걸로 심리학자들이 신병에 대해서 가지는 견해를 엿보자. 그들은 신병이나 무속을 단순 우연에서 비롯된 것을 과대 해석하는 잘못된 조건화로 본다. 즉 결괏값이랑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 조건은 하등에 연관 관계가 없으나 우리는 그 둘을 강제로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 버리는 오류이다.


"The concept of superstitious behavior has been generalized to explain some aspect of the behavior that occurs under contingent conditions. For example, a number of different stereotyped responses may occur in different subjects, even though no particular topography is necessary to produce the reinforcement. It seems likely that some of the topographies are more effortful than necessary. The topography may be said to be conditioned superstitious because of their adventitious pairing with reinforcement." (p.307)
미신 개념은 우연한 조건아래서 일어난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정해진 논리 구조가 없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반응 따위는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는 두 사건 사이에 논리가 있다기보다는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을 준다. 이러한 논리 형태들은 결과 값이랑 우연히 연결되었을 뿐 우연한 조건에서 일어난 미신이라고 하겠다.

제도권에서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교육하시는 선생들은 평소 이 학문을 철저한 과학이라 강조하기에 신내림이나 초자연 현상에 대한 논의는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거나 깊은 언급이 피하지만 정작 많은 경우 자신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더군요. 아이러니하죠.


9. 해리성 정체성장애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F44.81

*DSM-5TR를 살펴 본다해서 신내림/신병을 진짜 병으로 인식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정신의학에서는 신병을 어떻게 볼까? DSM-5TR에서 신병이랑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보니 해리성 정체성장애인 듯한데 이는 둘 이상 별개 성격이 한 명에게 발현되어 정체성이 붕괴되는 장애로 어떤 문화권에서는 '빙의'라고 한다. 여기서 정체성이 붕괴되었다는 말은 감각, 행동, 의식, 운동 기능 심지어 기억까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런 증상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명확하다.


이것이 증상으로 취급받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 등 중요한 영역에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이 있는 경우로 약물이나 알콩 중독으로 인한 일시 증상 따위는 포함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약으로 낫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치료방법도 없기에 현대 의학에서는 이것을 정신 신경질환 일종으로 규정하여 정신병으로 분리한다. 신병에 대한 병인을 모르기에 당연히 치유방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으로 과학에서 다룰 영역이 아니라 문화나 종교로 설명을 미루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신들림, 신병 등은 우리 한민족 문화랑 종교를 배경으로 이해하고 한국 무교라는 무속신앙 혹은 토종 종교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인지 DSM-5TR에서도 '빙의'라는 단어를 언급한 듯하다.


우리의 무속은 샤머니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巫)’라는 특수 신앙 체계로 보아야 된다. - 손태도, 서울대 한국문화 연구소



분석실, 여기가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가 이 글에 진짜 주제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위에 나온 질문들을 먼저 짧게 정리하고 답을 시작하겠습니다.


1 - 무당은 여자가 많다;
2 - 지금도 무교가 성행하는 이유;
3 - 우리는 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
4 - 신 vs 정신분석 증상




1 - 무당은 여자가 많다

우리 무의식은 언어 구조로 되어 있다고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언어는 <기표-시니피앙>으로 되어 있으며 불경하거나 자아가 받아들이기 힘든 시니피앙은 억제되어 어두운 공감에 켜켜이 쌓이게 되는데 그렇게 쌓인 시니피앙들은 서로 연결되려는 성질이 있는 언어라 어두운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연결되어 무의식이 되니, 무의식은 언어구조라 하겠습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문명을 이룩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법이나 제도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은 남자들 몫입니다. 남자들이 언어도 주관해서 만들었고 그로 인해 생긴 법도 철저하게 남자들 입장입니다. 다른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을 만든 사람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아니면 신은 모두 남자란 말일까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 신명기 5:21


신체구조가 남자랑 다른 여자들은 결국 남자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한 남자들 세계관을 따라야 하는데 여자들이 보기에는 전혀 감흥이 없을 법을 따라야 하고 그 규율 안에 살아야 하니 고난이 크겠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 사례에 나오는 많은 환자들이 여자인 것이랑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Anna O라는 여성 히스테리 증상을 연구하다 탄생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라 보입니다.


여자들은 이해못할 남자들 욕망을 제어하는 규율을 따라야 하는 세상에서 여자들은 결국 신경증, 히스테리, 노이로제에 시달린다고 보는데요. 신병도 그런 과정에서 해석되어 여성 중에 무당이 많다고 보입니다.


이웃의 남편은요? 성인지 감수성이 너무 떨어지는 법조항입니다.
역시 여담인데요. 동성애 성향이 없는 여자들 경우는 마지막 10계에 해당 사항이 없으니 9계가 되고요.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7계 '간음하지 말라' 8계 '도둑질하지 말라'로 인해서 이를 잘 지켰다면 10계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서는 안 된다'는 중복 조항이라 녀/남 모두에게 9계가 됩니다.


2 - 지금도 무교가 성행하는 이유

무의식을 가지고 그것으로부터 조종되는 우리는 종종 무의식을 혼魂이라던가 알 수 없는 귀신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성에 강하게 끌리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모르고, 고등 종교나 그 교리에 설득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무교 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


제 바람은 무교 시장만큼 정신분석 시장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3 - 우리는 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

태어나는 순간 보호자/어머니에게 우리 생사여탈권을 온전히 기대었던 우리는 내 욕구를 언어를 통해 요구하며 살아야 했는데 그 시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막대하게 깁니다. 그 과정에서 언어 요구는 복잡해지고 보호자 말은 진리처럼 듣고 따라야 했습니다. 늑대가 키웠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영웅 신화는 이 불편한 사실을 끊어내기 위함이라고도 보입니다. 그 신화 속 영웅은 대타자 없이 자랐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대타자인 어머니가 진리를 말해준다는 서사 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으니 성인이 되어서도 법이나 교리 따위를 배울 때 누군가 그것을 읊어주는 대타자가 있기를 나도 모르게 원합니다. 무당 역시 가끔 그 역학을 해주고요.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가 새로운 대타자가 되는 일을 해줍니다.


4 - 신내림 vs 정신분석 증상

이 둘은 공통점이 많아 보입니다. 이 짧은 말을 하려고 이 긴 글을 썼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이 발견한 히스테리 증자들이 보이는 특성을 먼저 보시죠.


해부학상 몸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몸에 통증을 호소한다;

몸이랑 의식은 연결되어 있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

대화로 치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신병하고 그대로입니다. 나아가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을 보면 분석시에 증상을 다루는 방식이 기존 의학이나 심리학이랑 다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정상이라는 것을 설정하지 않기에 증상을 제거 대상이나 병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의식 산물이며 바로 나 자신입니다. 증상을 사회생활이 가능한 수준에서 어느 정도 교정은 하겠으나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무당에게 신내림 역시 축출해야 할 증상이 아니라 통합할 대상으로 지속되고 유지하는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신병이 지독한 환청이랑 환상을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정신분석에서는 약물치료랑 병행할 것을 권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환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관, 세계관을 완성해 주면서 치유/완화를 유도합니다. 무당들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앓고 있는 신병이 인정받으면 그때부터 증상이 사라진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언어로 인정 받으면 씻은 듯이 증상이 치유된다니, 마치 히스테리 환자들이 프로이트 선생님이랑 인터뷰를 마치고 증상에 대한 무의식 원인을 인정받아 몸이랑 마음을 괴롭히던 통증이 완화되는 장면이랑 비슷합니다.


글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그만 줄이고 싶습니다. 끝으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성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신병을 시작시키는 계기 중에 하나 일수 있다는 양종승 선생님 글입니다.

양종승



노이로제를 인격 성숙을 위한 의미 있는 고통이라고 보는 몇몇 근대정신의학자의 소감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 "신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2023년 4월 어느 토요일, 캔버라



References:

"무당의 신병과 신들림" 한국무속학 제2집(2000), 양종승

"강신무의 사례로 본 강신무와 세습무의 유형 구분" 한국무속학 제7집(2003), 홍태한

"강신무․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무속학 제7집(2003), 이용범

"강신무․세습무 유형론에 대한 일고찰" 한국무속학 제8집(2004), 김동규

"강신무와 세습무" 한국무속학 제8집(2004), 손태도

"내림굿 재고" 한국무속학 제42집(2021), 이용범

"신을 받은 무당과 세습 무당" 이경엽

"원시종교"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원시_종교

"원시종교(原始宗敎, primitive religion)" 한국컴퓨터선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 DSM-5TR" 권준수

"대한민국은 점술공화국 인가?" 한국기독일보, 16/02/22

"SYSTEMS AND THEORIES IN PSYCHOLOGY", 2nd, MELVIN H. MARX & WILLIAM A. HILLIX

"학습이론의 이해와 적용" 2판, 정순례 외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 (1937), 프로이트




이 글이 인기가 있어 후속편을 따로 제작하였습니다. 아래입니다.

https://brunch.co.kr/@dreamhunter/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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