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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Oct 29. 2024

우리는 왜 미신을 쫓는가

정신분석으로 본 토속 종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꺼내지 않는 주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섹스랑 종교에 대한 이야기죠. 불행하게도 제 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인데요. 제 글이 팔리지 않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없는 것은 섹스에 관해 쓴 글들로 라이킷을 누르시는 빈도에서 여성 작가님들 반응이 현격하게 주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섹스보다는 종교에 관한 것을 써 작가님들 의견이랑 반응을 들어 볼까 합니다.




종교란 대략 우리 무의식에 거하는 강력한 초자아가 각 문화에 맞게 각색되고 각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발현된 정도라 생각하는데 이런 초자아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타인을 저주하고 싶어도 저주하지 못하고 그 공격성을 억압하여 무의식에 저장하는 시스템을 통칭합니다. 종교를 너무 정신분석 식으로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관점에서 종교를 정의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렇게 억압된 흉악한 것들, 초자아로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반윤리, 반사회성 욕구 (가령 살인 충동이나 난잡한 성욕)는 의식 검열을 피해 다른 모습으로 무의식이라는 관을 뚫고 종종 우리 삶에 나타나는데요. 실수, 농담, 꿈 따위가 그것이며 이로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됩니다.


파묘, 2024, 장재현

특히 종교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엄한 초자아를 탑재하였기에 평소 억압은 더욱 강력해지겠지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고 죽이도록 짜증이나도 겉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으니 그들이 겪는 강박이랑 불안은 저처럼 인격신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인간보다 더 지독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 22장)



종교를 정신분석 측면에서 보는 것은 이것으로 대략 마무리하고요. 오늘은 그보다 단수가 낮다는 미신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제가 평소 관심 있는 신병, 무당, 심령 따위에 대해서 정신분석은 어떻게 이를 소화해 낼지 제가 이해한 수준에서 연결해 보겠습니다. 그전에 신비주의/ 텔레파시/ 주술/ 미신/ 심령/ 영혼 등에 관한 논문을 수 십 편 찾아보았는데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뭔가 기발한 한 줄이라도 찾아보려 했으나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했습니다.


대신에 한 가지 공통점은 보았습니다. 미신이나 심령 점술에 관한 논문들 대다수는 그런 것들이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바닥에 깔고 있으며 글쓴이는 대부분 그런 믿음에서 자신은 자유롭다 혹은 상위에 있다는 식으로 글을 쓰니 논문이라면서 마치 연구 주제를 비하하거나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내 글을 찾는 당신들은 무지하다는 조롱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미신이 왜 지금도 번성하고 있는지 특히 고등 종교라는 대형 교회나 근사한 사찰이 넘치는 한국에서 토속 종교라는 이름으로 고등 종교 못지않게 번성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거나 모르겠다는 식으로 끝나 버립니다. 결국 건질 것은 별로 없는 자기 학식 자랑입니다.




그래도 읽은 것이 아까우니 제가 간략하게만 논문 몇 개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미신이 무엇인지 고등 종교랑 어떻게 다른지입니다.


곡성, 2016, 나홍진

첫째로 미신이랑 종교를 나누는 가장 큰 차이는 그 목표가 가지는 시간성입니다. 미신은 특정 부분에서 눈앞에 이득을 목표로 한다면 종교는 그보다 오랜 시간, 심지어 내가 죽은 이후에 자손들이나 천국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이득을 얻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가면 흔하게 듣는 말로 전혀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 뜻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다음으로 보이는 내용은 과학이랑 비교하는 것인데요. 과학이 제시하는 인과율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물음에 종교나 미신이 답을 주려한다는 역시 뻔한 해석이죠. 종교랑 미신은 논리를 넘어서는 어떤 초자연성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종교는 그 세계관을 지탱하는 큰 흐름이나 자신들이 만든 율법을 통해서만 설명하려 하고 미신은 그마저도 없다는 특이점을 보입니다. 전혀 없다기보다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 자율성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미신이 살아남게 된 경쟁력 중에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내가 가진 사사로운 욕망은 지금 눈앞에 생떼같이 버티고 있는데 넓은 세계관을 가진 고등 종교에서는 다른 신도나 다른 민족을 같이 구원해야 하는 목표를 내세우기에 한 개인 소원만을 성취해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연대 의대에 합격하려는 기도를 들어준다면 모르는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니 인격신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합니다. 


이렇게 인류 복지나 보편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진화한 고등 종교랑은 다르게 미신으로 치부되는 우리 토속 종교들은 아직도 개개인 고객 소원이 우선이기에, 도덕 선생님 같은 조언만 나열하는 목사보다는, 시원하게 내 적들을 저주해 주는 무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호주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미신에 집착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원인으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말이 가진 특수성입니다. 우리말은 세계에서 존칭이 가장 복잡한 언어입니다. 영어에도 존대는 있지만 우리처럼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죽는다는 말은 고작해야 die인데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다 보니 pass away라는 완곡한 존대어를 씁니다. 영어 전체에서 존대어라고는 이거 하나 찾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상대랑 내 관계나 계급 구조, 감정, 분위기 등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뒈졌다,  돌아가셨다, 운명했다, 사망했다, 타계했다, 서거했다, 작고했다, 영면했다, 별세했다, 절명했다, 급사했다, 요절했다, 단명했다, 사별했다, 상처했다 등 직접 죽음을 표현하는 동사도 많고요. 숨을 거두었다, 눈을 감았다, 생을 다했다, 명이 끊어졌다, 하늘로 올라갔다 식으로 완곡한 표현은 수도 없지만 더욱 큰 문제는 한자어를 동반한 등하/빈천/예척/용어/조락/승하/하서/사거/선종/순국/순교/순직/전사/산화/취의 등 특별한 집단이 특별한 조건에 쓰는 표현도 많다는 것이죠. 


이렇게 관계에 매우 집착하는 우리 언어 특성상 대화를 시작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상대랑 내 관계를 먼저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나이가 몇 인지, 결혼은 했는지, 직업은, 고향은 어디고, 아이는 있는지 등등 호주에서는 정보법으로 보호받는 아주 내밀한 개인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묻지요. 가끔 이런 질문이 꼰대 같다며 투덜거리는 우리 mz들을 봅니다만 한글이 가진 특수성이 이러하니 양해를 구합니다. 물론 나이를 앞세워 하대하자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서 미리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려니 그렇습니다.


아주 심한 경우를 상상해 보면 상대랑 내 관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한글이 주는 특수성으로 인해 실어증에 걸리는 것이죠. 이런 바보스런 경우가 있겠냐고 하시겠지만 100년 전 조선 시대라고 가정하면 사회 계급이 확연한 때라서 상대랑 내 관계를 모르는데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는 낭패를 보거나 심하게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한글은 결국 한국인들 삶을 지배하는 구조가 됩니다. 다시말해 지금 우리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용산에 있는 최고급 정치인이나 주변 강대국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언어입니다. 한국인이 살면서 겪는 불안이나 절망 중에 많은 부분은 바로 이 관계 때문입니다. 이를 잘 맺고 해석하고 풀어내면 우리가 처한 대부분 문제가 이해되고 불만, 불안이 사라짐을 경험합니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에서는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개념이지만 우리 민족에게 드리워진 불안이 다른 민족이 가진 것이랑 다르다면 그것은 우리 한국인들 무의식을 구성하는 한글 구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것이 우리 민족이 가진 집단 무의식이라고 말하는 연장선 정도는 용납할 의향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칼 융-분석심리학을 살짝 보면 그 내용은 과학보다는 예술이고 종교이며 융 쎔은 컬트 리더 혹은 도사에 가깝습니다. 어차피 검증할 수 없기는 정신분석이나 분석 심리학이나 개찐 도찐이라고 우리를 혐오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여래랑 예수가 다투는 꼴이겠지요.


요약하자면 집단 무의식이란 같은 언어를 쓰는 집단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언어체계 속 공통 논리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우리는 개인 서사는 다를지언정 관계를 통해서만 작동하는 운영체계 위에 살며 집단 무의식을 공유합니다.


제가 호주 분석가에게 분석을 피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관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영어 문법으로 설계된 무의식을 가진 분석가에게 조선 놈 무의식 분석을 의뢰하기란 서로 애매하지요. 무의식은 언어 구조로 되어 있다는 라캉 선생 말씀을 첨언하며 이 논의는 마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시 미신.

무의식이 미련한 믿음을 발생시킨다고 하겠습니다. 무의식은 언어 구조라고 했으니 환유라는 수사기법이 적용됩니다. 비슷한 것을 연결해서 표현하는 것이 환유인데요. 한 가지 기표가 거리상 가까운 다른 기표로 연결되는 현상으로 처음 보는 대상을 설명하는 경우에 유용하게 쓰입니다.


문제는 이런 용도로 끝나야 할 환유가 당장 불안한 미래를 점치고 나아가 내 욕망을 해석하는 상황에도 쓰인다는 것이지요. 가령 미역은 미끄럽다 = 미끄러우면 넘어진다 = 시험에서 떨어진다 = 고로 시험날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미역이라는 기표가 미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환유를 통해서 설명했는데요. 이런 사례는 우리 문화권에서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이젠 프로이트로 돌아가 봅시다. 프로이트 선생님은 정신분석을 의학 내지 과학으로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지금이야 정신분석이라는 단어가 섹시해 보이니까 여기저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주어다 쓰지만 처음 프로이트 선생님이 이 학문을 들고 나왔을 때는 비과학을 지나 마녀 주술이랑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철저하게 주류 학계에서 무시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시달리다 보니 프로이트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미신이나 심령술 따위는 하찮거나 창피한 주제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토템과 타부]라는 논문에서 종교란 사회가 겪는 신경증이라고 까지 비판하니 당신에게 종교란 순진한 신도들 눈탱이 치기 위한 수단이나 고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금지 문화 정도로 불편해하며 이것이 현대에선 개인 신경증을 유발하는 주원인으로 지목하십니다.


물론 당장 불상이랑 십자가를 때려 엎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인간은 불안한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나마도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더욱 불안한 유아기, 유년기를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신경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무기력해 보이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 불안이나 강박을 위로하는 것은 종교도 어느 정도는 역할이 있으며 훌륭한 기능을 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이러한 위로, 소원 성취, 완벽한 아버지에 대한 욕구 등을 종교가 주기는 하지만 온전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2013, 잠실, 정겨운 오타

이렇게 입바른 소리 하는 자네는 그럼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를 갈구한 적도 없을뿐더러 미신을 누구보다 숭배하고 사랑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없는 인간, 없어 보이는 인간, 완벽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인간을  혐오합니다.


마치 종교를 평가하는 것이랑 마찬가지로 무속 신앙이나 미신 역시도 좋다 나쁘다는 덕성 개념을 도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어를 쓰는 동안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들 우리 대중이 쓰는 언어까지 과학 발달이랑 속도를 맞추어 변하지 않기에 해결될 수가 없는, 해결할 필요도 없는 논의입니다. 우리말에 높임을 우선 다 삭제하자는 주장이랑 비슷하겠네요.



이런 측면에서 외국에서 신기하게 본다는 우리 신병이라는 특이한 증상은 저로서는 정신분석 측면에서 이해하고 치료해야 할 병이라기보다는 우리 한글이 가진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귀신이라는 초자아가 유독 강해지는 순간, 특히 섹스를 경험하는 이후에 신병이 종종 나타나는 사례를 관찰했다는 논문이 뜻하는 바를 지금 새삼 떠올려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혼전 섹스는 아직도 타부시하는 주제로 이를 경험한 심약한 사람은 강력한 초자아로부터 철퇴를 맞게 되며 그로서 신내림이 시작된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저같이 뻔뻔한 놈들이야 첫 섹스 이후 그 맛을 잊지못해 또하려고 미쳐 날뛰겠지만 마음이 비단결 같고 남을 배려하는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할머니로 둔갑한 초자아에게 된통 혼이 나는 환상을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양종승


그래도 방법을 물으신다면, 이런 미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첫째 초자아가 없어야 하며, 둘째 무의식도 없고, 셋째로 언어도 초월한 존재여야겠습니다만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자신은 귀신도 앞으로 닥쳐올 미래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체입니다. 살아서 말을 하는 인간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저는 덩치 큰 남성에 대한 공포가 심합니다. 나보다 강한 남자에게 폭력이나 가학을 받은 어린 시절 경험이 이것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바로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죽도록 맞던 기억 말이죠. 아버지랑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분석을 받게 되면 분석가에게나 털어놓을 이야기지요. 아버지 허물을 들추는 일이니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 말고는, 나도 초아자가 있고 유교 사회에서 교육받은 자식으로서 도리가 있으니, 어디가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꿈에서 덩치 큰 남자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비굴하게 대하는 제 모습이 뜻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스스로에게 완전한 면제부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다 그렇게 맞고 살았다던가 그러게 공부 좀 잘해서 서울대학 가지 그랬냐는 시큰둥한 핑계로 충분합니다.


지금 아우가 지독한 우울증에 알콜 의존증을 헤메이며 어둡게 사는 것은 그 친구가 타고난 기질이 나랑 다르기도 하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그 교육이 일조한 부분도 분명 크다 보입니다. 어느 날 저녁 서른이 넘은 아우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형, 나는 아이를 낳으며 아버지가 때린 만큼 그대로 돌려줄 거야.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섹스랑 종교 이야기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주변에 잘 나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을 같이 논해야하는 주제이며 무의식 안에 있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은 언어를 초월하기에 대화로 이것이 가진 차이나 해답을 도출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피하게 됩니다.


정치 이야기는 약간에 이해관계가 엮인 경우가 있어서 다르지만, 섹스나 종교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더라도 타협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글 한 편을 마무리했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백조가 사는 호수, 스트라



References:

개역한글 성경

미신 - 김시헌 / 수필가

무당의 신병과 신들림 - 한국무속학 제2집(2000), 양종승

미신이란 무엇인가 - 특집 20세기 미신, 이광규, 서울사대 교수

Totem and Taboo (1913) - 프로이트

작가님, 미신에 대한 글 너무 재밌습니다. 침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욕망의 발현은 정신분석학이나 미신이나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ㅋㅋㅋㅋㅋ 여성 작가들이 섹스 이야기 나오면 라이킷 안 누르나보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하하하하하. 대개의 논문이 학식 자랑이라는 대목도 심히 공감되고요. ㅎㅎㅎㅎㅎㅎ! 꿀잼입니다. 저만 아는 게 아쉬울 정도로. 주제가 어렵긴 하지만, 글은 아주 쉽고 통찰이 풍부하여 읽는 이가 마음이 즐겁고, 색다른 영감을 얻습니다. 작가님 글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합니다. 게다가 읽기 정말 편해요. 겸손도 느껴지고요. 좋은 글이어요. by 양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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