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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Sep 17. 2023

캣토피아

내가 사랑한 고양이

나 하나 보고 혈혈단신 호주로 와서 살고 있는 아내는 친구도 가족도 없이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여기 산 저도 이렇다 할 친구나 가족이 없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곁에 두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감성이랑 이성을 갖춘 사람이란 고국에 산다 한들 평생에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각자 무의식 속 갈등이나 소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데 저는 선수입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주어 담고 그중에 서로 필요한 이들을 연결해 주거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은 한데 모아서 조직하고 협회를 만드는 일 따위 말입니다. 이런 오지랖은 업으로 하는 회계사 일보다 진심입니다.


아내는 저랑 정반대 성격입니다. 집에 사람 초대하거나 모르는 사람들하고 식사하는 일 등에 소질이 없어 무척 힘들어합니다. 그렇다 보니 시드니에 와서도 저랑 있는 것 이외에는 딱히 새로운 친구나 취미를 만들지 못했고 이곳에서 취직했으나 회사 사람들하고 따로 친분을 나누거나 하는 편은 아닙니다.  


다행하게도 아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 년 내내 나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아내는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후배 회계사 고양이 <미지>랑 가장 친했던 프로이트. 자신이랑 비슷한 단묘랑 친한 듯.





결혼은 제가 총각 때 살던 옥탑방에서 시작했기에 여러 가지 사정상 고양이를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늘 고양이 타령하던 아내를 달래주려 사설 고양이 구조센터에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거나 철창 안에 갇혀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녀석들이랑 놀아주는 소일거리로 마음을 달래고 버텼습니다.


이 정도는 애교도 아니지~

그러다 운명처럼 지금 "프로이트"라는 샴페인색 잡종 남자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향한 애교랑 인간 손을 그리워하는 갈증이 아내 갈증이랑 같은 크기인 것이 확인되자 우리는 어려운 덜컥 녀석을 입양하게 됩니다. 


원래는 호주 아저씨가 키우던 녀석으로 잠시 보호 센터에 왔다가 무슨 일인지 영영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사람 손에 길들여진 탓에 프로이트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신통한 재주가 있는 놈이라 첫날부터 우리를 향해 온갖 재롱을 부리며 입양을 주저하던 저마저 홀렸습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고양이 집사 생활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좁은 옥탑방에서 세 식구가 지내야 했으니 프로이트 역시 고생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녀석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운이 좋게 경매를 통해 꿈에 그리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우리가 마당을 고집한 것은 온전히 프로이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집을 보러 다니는 시간에도 우리는 고양이가 살만한 집인가 늘 고려하고 주변까지 살폈습니다. 맘에 드는 집이 몇 군데 나왔지만 고양이가 살기게 적합하지 못해서 포기한 적도 여럿입니다.


지금 이 집은 정말 좋습니다. 돌이켜보니 고양이가 살기 좋은 집은 사람에게도 살기 좋았습니다. 집 뒤에는 작은 숲이 있어서 푸근함도 있고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환경은 정말로 외국에서 사는 느낌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랜 유학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한 진짜 호주 삶을 프로이트 덕에 이곳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임시 보호했던 귀염둥이 <로하>

이사를 온 후 저는 고양이를 위해 집을 개조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원래가 공간 계산 능력도 부족하고 손재주도 꽝이라 무얼 만들어 본 적도 없지만, 프로이트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은 것이 한 번 머리에 스치면 그때부터는 삼차원으로 도면이랑 재료를 어디서 사야 할지는 물론이고, 머릿속에서는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는 내 손이 환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벽에는 고양이가 올라갈 수 있는 3층 계단을 달고, 장롱 위에는 캣스텝을 연결한 고양이 쉼터를 설치해 주고, 안방이랑 연결된 베란다는 고양이 햇빛방으로, 뒤 마당 자두나무는 천연 고양이 놀이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시설을 만들어만 놓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없이도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캣도어도 만들었지요. 고양이가 좋아한다고 후배에게 듣고서는 열대어도 키우기 시작해 수 십 마리까지 늘렸습니다.


아내는 새 집을 이렇게 상처 내고 어설프게 못질하면서 벽에 구멍을 내는 것에 심한 알러지를 일으켰지만 고양이들을 향한 내 맘이 너무도 뜨거웠고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이트를 위한 것이라니 투덜거리면서도 옆에서 저를 도우며 투박한 디자인을 섬세하게 보안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집은 고양이가 살기에 너무도 좋은 천국, '캣토피아'가 됩니다.


이런 집을 자랑하고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랑 교류도 할 겸 해서, 시드니 고양이 집사 모임이라는 비영리 단체도 만들어서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친교도 나누고 아픈 고양이들 치료 정보나 고국 여행을 갈 때 서로 고양이를 임시 보호해 주는 품앗이 일도 나누고 있습니다. 


여기가 가장 높고 편해용~





세상에 모든 일이 이렇게 좋은 면만 있다면 우리는 신경증도, 갈등도 없는 엄마 양수 속 같은 느낌으로 살겠지만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욕망이 있고, 인간인 저는 저대로 강력한 욕동이 있어서 두 세계는 정면 충돌합니다. 


서열 1위 위엄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입니다. 화장실을 집 밖에도 만들어 주자 절대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은 사용하지 않더군요. 담을 타고 집 뒤 공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마당에 있는 화장실도 쓰지 않습니다. 최대한 멀리 가서 일을 보고 옵니다. 아마도 자기 영역 경계를  따라서 흔적을 남기며 냄새로 결계를 치는 것 같고 우리 집을 자신도 먹고 자는 곳으로만 여기는 듯합니다. 


또 고양이 자랑인가 하시겠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집이랑 마주한 작은 공원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많은 동/식물 곤충이 살고 있습니다. 호주 다람쥐인 Possum, 와일드 터키, 각종 도마뱀이랑 새들, 큰 거미/바퀴/여치 그리고 쥐...




Huntsman

쥐는 고양이에겐 꿈속에서도 그리는 대상입니다. 만약 고양이 무의식을 볼 수 있는 기법이 발견된다면 아마 대부분 고양이들 무의식에서는 쥐가 큰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단순히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골병난 고양이에게 가장 좋은 보양식도 쥐라고 하더군요.


고양이가 가지고 놀기에 적합한 크기, 속도, 힘을 가진 동물을 설계해 보라고 하면 그것 역시도 쥐입니다. 즉, 맛있고 너무 귀엽고 재미있고 화풀이도 하기에 안성맞춤이니 고양이가 쥐를 쫓는 마음은 우리는 상상도 못 할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짐작하셨겠지만, 프로이트는 결국 쥐를 물고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길생활을 한 적이 없는 녀석은 쥐를 먹이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얼마나 쥐를 소중하게 물고 들어오는지 집 안에 풀어놓은 쥐를 보면 털 끝하나 다친 곳이 없습니다. 산채로, 너무도 소중한 아기를 데리고 오듯이 집에 물고 와서는 엄마에게 선물로 큰 인심이라도 쓰듯 내어 줍니다. 


수시로 잡아오는 작은 도마뱀이나 대왕 여치, 거미 까지는 어찌어찌해서 해결 봅니다만 쥐는 정말이지 소름이 끼칩니다. 작은 생쥐이기에 얼굴은 막상 귀엽긴 하지만 그 징그러운 꼬리랑 엄청난 스피드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날 미치게 합니다. 


일 년이면 두어 번 이렇게 동네 쥐돌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옵니다. 방금도 한 마리 잡아서 방생해 주고 새벽에 다시 잠을 청하지만 너무도 말똥 해진 정신을 견디다 못해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고요. 


쥐 잡은 사진은 마차 올릴 수 없어서 작은 도마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프로이트 선생 <정신분석 입문>을 보면 각자 다른 소원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불행해지는 짤막한 동화가 나옵니다. 작은 도깨비를 구해주고 선물로 받은 세 가지 소원 중에 너무도 순박하고 배가 고팠던 아내가 불연 '맛있는 소시지가 먹고 싶다'라고 해서 세상 모든 소시지 독점권이라도 얻을 수 있는 막강한 소원을 소지시 하나랑 바뀌게 되고 이로서 화가 끝까지 난 남편이 '저 놈에 소시지 아내 코에 확 붙어 버리라'는 저주가 두 번째 소원으로 낭비되며 결국 그 소시지를 떼어내는 것으로 마지막 소원을 탕진한 하여 소시지 하나를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랑 사람이 한 집에서 살면서 모두 행복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프로이트는 엄마를 위해 기를 쓰고 쥐랑 거미를 잡아와 주지만 엄마는 그런 프로이트 맘을 알아줄 가 없습니다. 비명 지르고 펄쩍 뛰는 엄마 모습이 너무도 기뻐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는 있겠지만요. 


고양이랑 인간, 두 개 무의식 속 다른 소원이 충돌한 결과로 무엇이 남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드니에서 태어나 이제 영어는 다 잊고 몸에서 김치랑 마늘 냄새가 피어나는 우리 프로이트. 자기도 반려쥐를 키우고 싶다고 늘 항변하는 녀석!


아빠, 브런치 좀 그만해요.

우리가 프로이트를 가족으로 필요로 하고 의지하는 것처럼 녀석도 우리를 꼭 필요한 존재로 대하기를 기대합니다.


호주에서 태어난 고양이지만 한국계 부모인 우리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양이를 위한 천국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도 그곳에 가볼 수 있어서 그때 서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한국 부모를 만나서 살았던 네 묘생猫生은 어떠했는지. 혹시 아쉽거나 원망스럽던 순간은 없던지 궁금합니다. 가끔 주변에선 고양이에게 그렇게 시간을 쏟으니 애가 없는 것 아니냐, 누구 다른 사람 주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과론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비교 연구를 한 것도 아니니 정말 그런지 어쩐 지는 모르죠. 


하지만 제가 아는 프로이트는 결코 그렇게 옹졸한 인간 같은 성격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아이가 하나 생긴다면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잘 챙겨줄 녀석이 프로이트라고 보이거든요. 제가 고양이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장롱 위를 제일 좋아하는 우리 둘째 라캉이, 다리가 불편해서 한 번에 오르지 못해 옆에 계단이 많아야 해요.


영역을 순찰 중인 우리 프로이트, 호주 이웃들도 이제 녀석을 다 알지요.


사람하고만 살아서 고양이처럼 앉는 법을 모르는 프로이트. 내 작은 서재 앞에서.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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