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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환규 Oct 09. 2024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을 처음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말과 같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고객에게 전달하기로 한 서류를 집에 놓고 나왔다. 바쁜 마음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순간 아차 싶어 내려가는 버튼을 다시 눌렀지만, 엘리베이터가 이런 급한 마음을 알아줄 리가 없기 때문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시간만 낭비했다. 빨리 가려는 마음에 급하게 한 행동으로 인해 시간이 두 배가 걸린 것이다.      


평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엘리베이터의 현재 위치를 표시해 주는 숫자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엘리베이터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시간에 쫓기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급한 마음에 ‘내려가는 버튼’과 ‘올라가는 버튼’을 한꺼번에 누르거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버튼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이 계속해서 누르기도 한다.     

 

자신의 급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는 되지만 이런 행동이 자신에게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 사람이 내려가는 버튼을 함께 누르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멈추게 되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의 다른 사람들 시간도 낭비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지 올라가는지 보지도 않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일단 타고 보는 사람도 있다. 급한 마음에 무조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는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중간에 급하게 내려야 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급히 서두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경부고속도로이다. 대부분 전문가는 경부고속도로를 완공하는 데 16년이 걸린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5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이렇게 급하게 서두른 결과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컸다.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경부고속도로는 부실 공사로 인한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도로 폭은 애초 계획한 24m에서 22.4m로 줄어들었고, 비용과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중앙분리대를 비롯한 안전시설을 생략하고 진행하였기에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개통 1년 만에 전 구간에 덧씌우기 공사를 시행하게 되자 당시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경부고속도로가 누워 있으니 망정이지 서 있었다면 벌써 와우아파트처럼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통 후 10년간의 유지보수비용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을 넘는 수준이었으니 초고속 건설의 후유증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일을 그르치게 된 또 하나의 사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서둘러 일을 그르치게 된 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다투었을 때 갈등당사자인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제삼자가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 나서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제삼자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 빨리 화해하기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삼자가 싸운 당사자보다 지위나 권력이 높은 경우 당사자들에게 강하게 압박하면서 화해를 강요한다. 제삼자의 압박으로 인해 두 사람은 억지로 화해를 하게 되지만 마음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의 찌꺼기는 남아있게 된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는 더 큰 다툼의 원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의 요소를 제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또다시 유사한 다툼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빨리 승부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는 운동선수의 행동에서도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야구경기에서 수비수가 빨리 이닝을 마치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하는 경우 공을 잡는 데 집중하기보다 다음 던질 곳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타자를 살려주게 된다. 축구경기에서도 공격수가 슛할 때 마음이 급하게 되면 골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골을 차게 된다. 가끔 축구시합에서 자책골이 나오는 것도 이런 경우라 생각된다.      


급한 마음은 자신의 능력 발휘를 어렵게 만든다. 경기에 지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이렇게 한 선수는 자신을 탓하면서 마음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못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이처럼 급한 마음은 상대 팀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새롭게 조직의 장으로 임명된 사람도 급한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입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이른 시간 안에 능력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부서원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결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작하자마자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 자신감을 잃게 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며, 그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불신하게 되어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급히 서두른 것이 화근이 되어 조직 구성원 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등산하는 모습을 보자. 다른 사람보다 정상에 빨리 오르겠다는 마음에 초반부터 속도를 낸다면 정상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기 몸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야 정상에 오르는 기쁨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과일을 얻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싹이 터서 튼실한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씨앗이 땅속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해야 건강한 싹이 나오는 것처럼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하고, 본연의 목적에 합당한 행동을 하며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없다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 말은 업무 수행 과정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성장 과정이 달라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경험과 지식이 다르고 삶의 방식과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일해 나가는 곳이 바로 조직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른 생각과 다른 해석을 하게 되고, 이것이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불편해지므로 어떻게든 이른 시간 안에 해결되기를 바란다. 술자리를 마련해 서로 화해하라고 권하기도 하고 부서 분위기를 해치지 말라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갈등을 일시적으로 물밑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지 갈등 해결은 아니다. 오히려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을 갈등 당사자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갈등이 발생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전한 해결이 필요하다. 갈등당사자가 함께 모여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화하고 이해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고 이는 성과 향상과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을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빨리 해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수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조한 마음에 상대방에게 해결을 강요하면서 또 다른 갈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해결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급할수록 한 박자 쉬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와 상대를 위한 것인가?’,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것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이고 원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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