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교 선배를 만났다. 식품 관련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선배였다. 이 선배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몇 년 전 벤처 기업을 창업했는데 함께 일하는 직원들로 인해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다. 이 선배의 불만은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것과 ‘경영진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선배가 이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말을 들으면서 약간의 분노마저 느끼게 되었다. 선배는 이런 여러 사정을 말하면서 자기를 도와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선배와 만난 후 경영관리 담당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맞닥뜨린 현실은 기쁨보다는 분노, 희망보다는 좌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 다음 날부터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업무는 선배가 회사 업무에 방해된다고 말한 몇 사람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업무에서 배제한 한 사람이 그 회사의 등기 임원인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선배가 겪는 어려움은 선배가 별다른 고민 없이 회사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사선임을 할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이사 두 사람이 결탁해 선배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회사의 이사진은 선배인 대표이사와 이사 2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배에게 이사 둘은 선배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은 비즈니스로 알게 된 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채용한 직원으로 본인이 이사가 되고 싶다고 말해 선임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대표이사와 개인적인 친분도 적었고 선배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이사회 안건은 ‘대표이사 해임’이었다. 해임 사유는 선배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은 선배가 자신의 모교에서 MBA 과정에서 알게 된 중견 기업의 사장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투자금으로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사 두 사람은 선배의 계획이 현실성이 떨어져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회사의 재정 상태가 나빠질 것이 확실하므로 이를 막기 위해 선배를 대표에서 해임하겠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선배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선배는 드라마에서 보던 경영권 분쟁에서 대표이사에서 해임되면서 회사의 경영에서도 손을 떼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선배가 필자처럼 기존 직원을 대체하기 위해 채용한 사람들도 바뀐 경영진으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배는 또 다른 어리석은 선택을 준비하고 있었다.
3월이 지나기 전에 전임 대표이사인 선배와 새로운 대표이사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졌다. 선배가 채용한 모든 직원은 사표를 내는 것으로 했고, 선배는 자신의 주식을 액면가로 팔고 그 회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 결과 필자도 근무한 지 1달 보름만이 3월 31일 퇴사를 했다.
선배와 오랜 인연을 끊기 전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는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감정노동과 관련된 책의 내용을 수정해 출간하는 작업을 했다. 거의 1년 정도 준비한 끝에 ‘오늘도 감정노동 중입니다’를 출간할 수 있었고, 출판사 사장이 유튜브에 출연해 책 소개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유튜브에 관한 관심이 그다지 없을 때라 출연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기꺼이 출연하겠다고 결심했다.
유튜브 촬영 날짜가 정해지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된 감정노동 경험은 금융회사의 고객서비스 팀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거의 전부였다. 감정노동에 대한 생생한 경험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최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감정노동을 경험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집 앞에 있는 우체국에서 며칠만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며칠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에 있는 백화점 주차관리를 하는 회사에서 vip 고객을 대상으로 발레 파킹 아르바이트를 할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백화점 주차장에서 면접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것이 취업과 관련한 경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