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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직급에 적합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by 최환규

오래전 회사의 정보 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외국 회사로부터 컨설팅을 받을 때의 일이다. 컨설팅이 시작되기 전 컨설팅 관련 현업 부서 책임자인 상무가 컨설팅 장소를 점검하러 왔다. 이곳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공간이라 손볼 곳이 많았다. 상무가 그곳을 둘러본 다음 “책상 위 유리에 금이 갔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라는 말을 실무자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책상 유리와 화장실 휴지에만 관심을 두던 상무는 막상 컨설팅이 시작되자 컨설팅 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컨설턴트를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지면 가장 불편한 사람은 그곳을 자주 사용하는 필자와 같은 실무자였기에 컨설팅 책임자인 상무가 지적하지 않아도 당연히 준비를 해야 한다. 오히려 상무가 자기 역할에 맞지 않은 사항을 지적함으로써 실무자로서는 도움을 받았다고 여기기는커녕 상무의 지적을 잔소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컨설팅 책임자인 상무가 자기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안내 데스크와 화장실이 아니라 컨설팅 결과가 회사와 자기 부서 업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초점을 두어야 했다. 책임자인 상무가 실무자의 영역에 관심을 두게 되면, 누군가는 책임자인 상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무는 실무자 역할을, 부장 혹은 과장은 상무의 역할을 한다면 그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직장 상사 중에는 사소한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상사가 있다. 부하가 보고서 초안을 보여주면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오·탈자에만 초점을 두고, 어쩌다 틀린 숫자라도 발견하면 보고서 작성자가 회사를 망하게 한 것처럼 부하를 잡도리하는 상사가 있다. 만약 상사는 오·탈자에 초점을 두고, 부하는 상사의 관점에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상사와 부하의 역할의 바뀐 것이다.


물론 업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상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보고서의 오·탈자를 수정도 중요할 수도 있지만, 오·탈자 수정은 신입사원을 비롯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상사까지 담당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업무 전체를 조망하고, 업무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정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중요하고도 가치가 큰 일이다. 회사가 이런 업무를 상사에게 맡기는 이유는 상사가 부하보다 업무 지식과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상사가 전체를 조망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업무에서 일관성이 없거나, 조직이 추구하는 비전이나 철학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 업무를 다른 부서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원은 갈등을 경험하고,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업무 전체를 알고 있는 상사는 부서원 개인의 업무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업무 배분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사는 자신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업무를 배분하기도 한다. 친한 사람에게는 쉽고 티 나는 업무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렵고 생색나지 않는 업무를 주는 것이다. 상사가 이런 방식으로 업무 배분을 계속하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갈등이 심해지면서 상사가 지녀야 할 능력에 대해 의심받을 수 있다.

거의 모든 회사에서는 직무 기술서를 작성한다. 필자가 인터넷에서 탐색한 공공기관의 부서장 직무 기술서를 보면 직무 수행 내용으로는 ‘부서원 인적자원관리, 장·단기 계획수립, 사업개발 및 운영 총괄’ 등으로 설명되고 있고, 기초 능력으로는 ‘프로젝트 전략 기획, 통합 관리’ 등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조직의 직무 기술서에는 부서장의 역할이 위의 내용과 비슷하게 적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직급이 높아질수록 조직 전체를 조망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직장인은 자신의 직급에 적합한 업무를 해야 한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넓은 범위의 어려운 업무를, 직급이 낮은 사람은 좁은 범위의 쉬운 업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기 업무를 회사 전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연습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조직의 비전이나 철학에 맞게 한 방향 정렬이 가능하고, 그저 자기 역할 수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운영 차원에서 성과 향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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