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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유 Sep 13. 2023

나의 첫 고구마 농사

처음이니까 괜찮아




고구마? 

심기만 하면 그냥 다 되는 건 줄 알았지. 


5월 중순에 샀던 고구마 모종 100개

고구마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매번 농장에 주문해서 사 먹고 있었는데 

노는 땅이 있으니 거기다 고구마 모종을 심어서 원 없이 실컷 먹어보자라는 마음이 들어서

5월 중순 즈음에 고구마 모종을 100개 사서 심었다. 

퇴비도 충분히 주고, 물도 열심히 챙겨 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라니의 습격을 당했다. 

고라니가 고구마순을 좋아할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주변에 잡초도 많고, 이것저것 다양한 녹음이 푸르른 뒷산이 풍요롭게 있는데

왜 하필 나의 소중한 고구마순을 다 뜯어먹었을까? 

원망도 들고 야속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 

고라니가 참 예쁘고 곱게 생겼는데 울음소리와 텃밭을 망쳐놓는 모습을 보면

그냥 예뻐할 수만은 없는 동물이다. 


고구마 순을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땅에 심을 때 가졌었던 나의 부푼 꿈은

생각지 못한 고라니로 인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져 버렸다. 



4개월이 지나면 이렇게 성장한다.



동네 이웃분들은 고라니의 습격을 막기 위해 미리 그물망을 이리저리 다 쳐 놓았는데,

나는 "예쁘게 생긴 고라니가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야"

라는 마음에 그물망을 치지 않았던 것이 몹시 후회가 되었다. 


100개의 고구마 모종 중에 살아남은 것은 겨우 30여 개 정도


나머지는 모두 고라니가 다 뜯어먹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보통은 추석 때쯤에 이르러서 캔다고 하는데

나는 "땅속에 정말 고구마가 달려 있긴 있는 걸까?"

궁금함이 너무 커서 조금만 파 보기로 했다. 






너무 작지만 고구마는 고구마다

4개월 뒤 땅을 파보니.....


앗! 뭔가가 땅 속에 있긴 있었다. 

고구마가 자신의 자태를 세상 밖으로 빼꼼히 드러내기 시작하자

나는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괜찮아, 그래도 고구마잖아. 

"작으면 어때? 이렇게 달린 게 어디야 "

큰 고구마를 기대했던 부풀었던 꿈은 나의 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저 멀리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고구마를 하나 캔 김에 그 옆에 있는 것들도 조금 더 파보고 싶어졌다. 

혹시 큰 게 나올지도 몰라.  





넌 농사 못해! 


고구마를 캐는데 고양이가 와서 눈빛으로 말하는 듯했다.

"더 이상 큰 고구마는 없어!" 

진짜 그럴까? 

오기로 몇 개를 더 파본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이번 고구마 농사의 결과


결과는 역시나 다 알이 작다. 

고구마 알이 작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잘은 모르겠다. 

고구마가 너무 커도 맛이 없지만, 그래도 사이즈가 어느 정도는 나왔으면 했는데 

내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그냥 심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올해는 그냥 무작정 심어본 것이다. 


내년에는 고라니의 습격도 막는데 신경을 쓸 것이고

올해보다 고구마의 알을 좀 더 크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저기 정보도 찾아보고, 동네 이웃분들에게 자문도 구해 볼 것이다. 




쉽게 생각하고 시도했는데 결과는 소소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래도 뭔가 작은 결실이라도 있어서 기쁘고 보람되었다.

고구마 캘 때의 마음은 마치 땅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런 기분, 이런 느낌, 이런 경험들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뭐든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담 없이 시도하고, 부담 없이 실패해 보는 것. 

그 횟수가 늘어나다 보면 나도 나만의 노하우가 생길 것임을 알기에 

이번 경험도 나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 



한 밤의 군고구마



밤이 되고 어둑어둑 해지자 불을 피우고 고구마 몇 개를 호일에 싸서 구워보았다. 

그래도 맛은 어떤가? 너무 궁금하잖아

내가 처음으로 해본 고구마 농사인데, 하하하 


뒷 산의 가을 풀벌레 소리와 함께 모닥불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마음을 더없이 평화롭게 해 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코끝으로 고구마가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고요히 비집고 들어온다. 

고구마 익은 냄새를 맡으면 왠지 마음이 더 포근해지고 행복해진다. 





크기가 작아도 맛있으면 된거지!

군고구마를 한 입 먹는 순간!

"실패는 아니구나"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먹자마자 입 가에 가득 번지는 미소, 저절로 행복해지는 미간.

남편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 엄지 척을 하며 환하게 웃는 순간.

고구마의 크기가 작아도 우린 충분히 행복을 가득 느끼고 있었다.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었어. 

그 과정이 충분히 재미있었고 

모든 게 다 공부임을 알게 되었지.

그럼 된 거지. 

내년엔 좀 더 잘해보기로 하자며 허허 웃으면서 잘 마무리하면 되는 거야.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작은 것에서 느끼는 재미. 

거창하고 큰 재미가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주 작고 소소한 재미를 찾다보면

삶이 매일매일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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