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없는 레몬청 담그기
오랜만에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3 커플이 함께 모여 하룻밤 그 집에서 자고 와야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뭔가를 사가지고 가자니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는 분이라 내가 사들고 가는 물건의 가치는 빛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레몬청을 담그기로 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나만의 정성이 들어간 것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낱개로 사면 비싸기 때문에 청과물 시장에 들러 레몬 한 박스를 구매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레몬청을 담그기 시작했다. 초대받은 하루 전날이나, 이틀 전에 미리 담그면 딱 좋다.
유리용기는 시간에 쫓겨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이소에서 저렴한 것을 구매했다. 예전에도 다이소에서 유리용기를 사봤었는데 가격이 저렴한 대신 밀폐력을 좀 떨어진다. 하지만 부담 없이 누군가에게 급하게 선물하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레몬청을 완성한 다음 밀봉만 꼼꼼히 잘해주면 된다.
위생을 위해 유리 용기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하나하나 열탕 소독을 해주어야 한다.
용기를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바로 담그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에 냄비 바닥에 거즈를 먼저 깔고 그 위에 거꾸로 뒤집어 서서히 함께 끓이면 파손 위험 없이 열탕소독을 잘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 : 베이킹 소다를 사용하여 레몬을 뽀득뽀득 흐르는 물에 잘 닦아 준다.
두 번째 단계 : 굵은소금을 뿌린 뒤 소금과 함께 흐르는 물에 빡빡 잘 닦아 주어야 한다.
세 번째 단계 : 펄펄 끓는 물에 레몬을 담그고 잔여 왁스가 떨어져 나가도록 잘 소독한 다음 건져준다.
일단 여기까지 하면 살짝 피로감이 찾아오고 몸이 지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이제부터이다.
이제 레몬을 앞 뒤의 꽁지를 떼어내고 몸통 부분을 적당한 크기로 잘 잘라준다.
레몬에 박혀 있는 씨앗들을 포크로 모두 골라내어 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레몬청에서 쓴 맛이 나기 때문에 조금 번거롭더라도 씨를 제거하는 이 과정은 중요하다. 여기서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된다. 뭐든 정성이 들어가야 맛이 있어지는 법이다.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로 흰 설탕을 꺼려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선물을 할 때는 꿀로 청을 담가서 주면 싫어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다. 꿀을 한꺼번에 다 부어버리면 용기 밖으로 넘칠 수도 있기 때문에 천천히 부어서 레몬이 모두 잘 잠기게끔 채워주면 된다.
선물용 레몬청을 담그면서 우리 집 냉장고에도 쟁여두고 먹을 레몬청도 함께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해 놓고 나니 굉장히 큰 일을 해낸 듯이 뿌듯하고 행복감이 밀려들어온다.
마치 두둑한 통장 잔고를 바라보듯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진다.
모든 작업이 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맥주 한 캔을 땄다. 수고한 나를 위한 위로주.
남아 있는 레몬 한 개를 맥주에 퐁당 빠트려 먹으니 레몬의 상큼함이 더해져 피로감을 일순간에 스르륵 녹여준다. 크으.... 이런 게 행복이다.
선물은 받는 마음보다 준비해서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하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좋은 상품들을 사서 줄 수도 있지만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을 때 청을 담가주는 방법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자신만의 정성과 감성이 가미된 것은 조금 어설프고 서툴더라도 진심이 느껴지며 더욱 따뜻한 선물이 된다.
레몬청은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복잡한 레시피도 없다. 레몬을 청결하게 잘 세척하는 것에만 신경을 조금 써주면 된다. 이번 모임에 각 가정마다 한 병씩 잘 밀봉해서 포장해 가지고 가니 모두들 감탄과 감동을 하며 많이 좋아해 주었다. 선물 받는 사람의 표정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일 때 선물을 준비한 사람은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고 기쁘다.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정성이 가미된 선물 주기
돈 주고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은 참 많다.
하지만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약간의 정성의 들어간 선물을 준비해서 줄 때 상대방은 매우 감동한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그건 바로 정성이다.
내가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을 더욱 감동시킨다.
https://youtu.be/ORVIGMKPhUE?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