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입니다
취향을 찾아보겠다며 취향 기록을 시작한 지 벌써 2달이 지났다. 2달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디서 자랐는지도 모를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날들이 있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내가 찾아낸 취향 덕분에 살 수 있는, 살아내고야 마는 날들도 있었다.
취향 기록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은 이게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해야 하는 일을 해내기에도 바쁜 삶인데, 이걸 굳이? 그런 내가 피어오르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취향 기록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하루에는 그들만큼이나 또렷한 취향들로 가득 차 있는 게 너무나도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또렷한 취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매한 나의 착각이었다. 찾아보면 누구보다 또렷한 취향을 갖고 있는 분야가 제법 많았다. 아날로그 기록에 관심이 많았지만 매번 실패했던 것도, 카페에 가는 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취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의 또렷한 취향을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취향이 아닌 내가 문제였다.
취향을 알게 되는 분야가 늘어날수록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졌다. 만족감의 대부분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야'라는 부분에서 생겨났다.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오래도록 모르고 지냈을 나를 이제라도 알게 되는 게 반갑기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작은 변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흘러가기만 하던 하루들이 어딘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웅덩이를 만났다. 물이 깊지 않아도 커다란 안정감이 있었다.
취향을 알고 나서 삶에 찾아온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실패의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특히나 물건을 살 때, 무엇이 내 취향에 보다 가까운 상품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무언가를 구매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취향에 가까운 물건은 대체로 희소성이 있거나 가격대가 높았고, 반대로 취향과 먼 물건은 값이 저렴했으며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전자의 물건을 구매하기로 결정한다면 큰 지출을 감안해야만 했고, 후자의 물건을 구매하기로 결정한다면 만족도는 떨어져도 지갑을 지킬 수 있었다.
취향 기록을 하기 전이었다면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이제는 되도록이면 전자를 택할 수 있도록 한다. 후자를 택했을 때 무언가 지속된 경험이 적다는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3개월 이상 사용하지 못했던 것도 나와 취향이 맞는 다이어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취향 기록은 계속 이어가 보려고 한다. 내 취향을 정확히 알면 실패의 확률이 줄어들고, 내가 모르던 취향을 발견하면 나의 세계가 한 걸음 더 넓어진다.
취향 기록을 시작할 때 새겨 넣었던 하나의 문장을 기억한다.
혹시 모를 일이다.
이렇게 발견한 작은 취향이
언젠가 위태로운 나를 살게 할 지도.
어딘가에 남긴 기록은 때가 되면 늘 현실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 그랬다. 종이에 남긴 목표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종이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정성스럽게 기록된 것들은 언젠가 실현되고야 만다. 지난 2개월은 그것을 유독 자주 느꼈던 시간이었고, 이걸 이미 경험한 나는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