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Oct 03. 2022

불렛저널 기록 1년, 노트에도 취향이 생겼다

나와 잘 맞는 노트를 찾아가는 여정

아날로그 기록에 관심은 많았지만, 기록을 시작하면 3개월이 채 지속되지 못했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내게 하나의 기록이 1년 이상 지속된다는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울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기적이 최근 내게 일어나고야 말았다.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기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기록과 문구 카테고리에는 유독 '덕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다.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기록하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그곳에선 4년 동안 기록을 이어온 사람들조차 신입생이 되고야 만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내 기록은 작고 귀엽기만 하다. 그럼 어떤가. 내 인생에는 분명 기적이라고 불릴 법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는데.


기록의 기간이 1년을 넘자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이 사실들은 나의 인생을 꽤 많이 바꿔 놓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은근히 아날로그 기록과 잘 맞는 사람이었단 점이다. 내가 여태까지 아날로그 기록을 지속하지 못했던 건, 그저 내게 맞는 기록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날로그 기록에 대한 갈망은 존재하지만, 기록이 좀처럼 지속되지 못한다면 다양한 기록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수많은 기록법 가운데서는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기록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당신도 나와 같이 자신도 모르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로이텀 불렛저널 에디션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처음 기록할 때부터 로이텀 불렛저널 에디션 다이어리를 사용했다. 로이텀 다이어리를 모방하여 저가 다이어리들이 시장에 여럿 등장했지만, 불렛저널 기록을 위한 노트는 매번 로이텀을 택하게 된다. 로이텀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다이어리에 비하면 로이텀 불렛저널 에디션의 질은 확실히 좋은 편이다. 특히 마감이나 종이, 커버의 상태에서 둘 사이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저가 다이어리 중에서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로이텀 다이어리를 계속 애용하게 될 것 같다.



로이텀 다이어리 중에서 굳이 불렛저널 에디션을 찾는 이유는 모눈보다는 도트가 눈에 덜 거슬리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로이텀 1917 다이어리에서 도트 내지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917 다이어리가 불렛저널 에디션보다 4,000원 정도 저렴하니 도트 내지만 있다면 굳이 따로 불렛저널 에디션 다이어리를 구매할 필요는 없을 텐데. 어차피 기록하고 나서 이전의 기록을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으니 내지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값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시절, 여러 권의 노트를 버려가며 취향이 기록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깨달았다. 무언가를 구매할 때는 최대한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구매하고자 하는 물품이 기록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취향은 기록의 지속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규림문방구 실제본 노트


책장 한편에 규림문방구 실제본 노트가 수십 권 쌓여있다. 규림님이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무턱대고 구매한 과거의 흔적이다. 노트를 구매하고 여러 기록을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어쩐지 하면 할수록 나를 위한 기록이 아닌 기록을 위한 기록을 남기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실제본 노트는 프라이탁 시드(SID) 커버와 호환이 가능하다. 크기가 작으면서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은 제법 넓어 어디든 자유롭게 들고 다니며 내가 원하는 기록으로 채울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밖에서는 아날로그 기록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란 것이었다.



휴대성이 뛰어난 것이 규림문방구 실제본 노트의 장점인데, 휴대를 하지 않으니 노트는 쓰임새를 잃고 말았다. 특정 공간에서 움직이지 않고 기록을 할 때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늘 곁에 있어 손이 가지 않는 노트였다. 애물단지 같던 노트가 쓰임새를 찾은 건 취향 기록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취향 기록을 시작하고 나서야 규림문방구 실제본 노트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확실히 기록은 각자의 장소와 쓰임이 있다. 



미도리MD 노트


불렛저널 다이어리에 기록하던 개인적인 일기를 별도의 일기장으로 옮겨 놓을까 하고 생각 중이다. 일기장으로 사용할 노트는 미도리MD 노트 M 사이즈로 정했다. 일기장에는 되도록이면 만년필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미도리노트가 만년필로 기록하기에 좋다는 소문이 많아 한번 사용을 해 보기로 했다.


미도리노트는 구매 시 사이즈와 내지의 종류를 고를 수 있다. 유선, 무지, 도트 내지 중에서 나는 이번에도 도트를 선택했다. 도트 내지에만 존재하는 정제 되면서도 드넓은 자유로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지 내지에도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무지의 자유로움은 아쉽게도 그 정도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게다가 줄을 맞추기도 힘들어 곁에 두고 쓰기엔 어려움이 있다. 


반대로 유선에는 그러한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험이 없는 만큼 기록의 형식은 제한된다. 노트를 가득 채운 가지런한 줄들이 기록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한정한다.



형형색색의 노트들 중에 A6 사이즈의 도트 내지를 가진 노트가 나와 합이 가장 잘 맞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극강의 자유로움도 아니었고, 기록을 채워 넣기만 해도 정돈되어 보이는 회색 선도 아니었다. 내게는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유롭지는 않은 기록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록을 해보겠다며 결심을 할 때마다 매번 남들이 만들어 놓은 다이어리나 유선 노트만을 찾았으니 기록이 지속될 리가 없었다.


도트 다이어리를 만나고 나서 기록의 방법도, 기록의 지속 기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노트는 되도록 도트 내지로, 가격보다는 마감도와 내구성 등을 따져 최대한 취향과 맞는 것으로 고른다. 취향이 또렷하면 여러모로 실패의 위험이 줄어든다. 소비에서도. 기록에서도.

                     

이전 06화 내가 아날로그 기록을 놓지 못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