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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Sep 27. 2022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삶인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찾아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사이에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소비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작은 소비들이 모여 나의 취향을 만들고, 그러한 취향들이 모여 나의 삶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또렷한 색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 개의 조합만으로도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가상의 이미지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이 나는 퍽 부럽다. 


나에게는 그러한 이미지가 있을까?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나?


오늘의 글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프라이탁의 감성이 좋다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 지는 오래되었다. 누군가는 프라이탁을 리사이클 브랜드라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무심코 버려지는 것들을 한번 재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다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저 그들의 무심한 디자인이 좋을 뿐이다.


Photo by Claudio Schwarz on Unsplash


프라이탁은 리사이클 제품의 특성상 같은 디자인을 찾기가 힘들다. 단색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모든 제품이 다르게 생겼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내가 갖고 있다는 오묘한 만족감이 주는 행복을 사랑한다. 모든 제품이 지닌 매력이 다른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지만, 나와 인연이 닿은 제품을 찾고 나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느낀다.


프라이탁의 가방, 파우치, 노트 커버 등을 사용 중이다. 최근에는 휴대폰 케이스를 구매할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크기가 큰 제품은 되도록 무난한 색상을, 작은 제품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을 찾는다. 같은 브랜드여도 쓰임과 크기에 따라 원하는 것들이 달라진다. 같은 게 없으면, 맞는 것을 찾는 재미가 있다.


펜코의 색채가 좋다


최근 기록의 공간을 재정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사용하는 문구 제품 중에서 유독 펜코(Penco)의 제품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 나는 펜코의 색채를 사랑한다.



문구 카테고리에서도 쨍한 색상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정말 드물다. 제품의 색상이 무채색에 가까워질수록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인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하이엔드 문구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제품들은 거의 다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다.


펜코의 색상은 화려하다. 재질도 가죽보다는 플라스틱이나 철제류를 주로 사용한다. 색상도, 재질도 어딘가 저렴해 보일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지만, 펜코라는 브랜드를 마주하면 '질이 떨어져 보인다'는 조롱보다는 '그들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인정의 말이 먼저 나온다.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에 담긴 철학은 잘 몰라도, 그들의 브랜드에는 분명 사람의 삶과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다.


애플의 호환성에 매료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애플의 제품을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놈의 호환성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는 애플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파이널 컷을 사용하고 있는데, 맥 OS에서만 이용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라 자연스레 애플에 발목이 잡히게 된 셈이다.


Photo by Michał Kubalczyk on Unsplash


물론 프리미어 프로를 쓰면 해결될 일이다. 영상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파이널 컷이 아닌 프리미어 프로를 쓸 줄 알아야 된다는 의견도 종종 보았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영상은 지금의 조건에서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 이후에 정말 욕심이 생겨 윈도우 노트북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다.


애플 특유의 디자인 감성도 한몫한다. 첫 포장을 뜯을 때 밀려오는 쾌감은 애플이라는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보니, 나는 깔끔한 디자인이 주는 풍요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어쩌면 사랑에 빠지게 될 브랜드들


향에 민감한 편이다. 내가 향에 민감한 사람인만큼, 상대방의 취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웬만하면 향을 내는 제품을 선물하지 않는다.


선호하는 향의 종류는 또렷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취향에도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향은 좋지만 내 취향은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향이 한 해 동안 가장 사랑하는 향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위 두 가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많다. 작년부터 편백 향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을 좋아하게 되었다. 각 브랜드에서 나오는 편백수 스프레이를 하나씩 사용해 보다가, 히녹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는데 브랜드의 지향점도 감성도 유별난 점이 있어 마음에 든다.


르라보는 이전부터 '매장에 들러서 꼭 시향을 한번 해 봐야지' 하던 브랜드인데,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해 오늘까지 오고야 말았다. 르라보 매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특유의 향이 있다. 우디 계열에 가까운 향인데 그게 유명한 향수 중 하나인 상탈 33의 향인지, 아니면 다른 향인지를 몰라 아직까지 구매를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안에 두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해 볼 계획이다. 새로운 브랜드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들이 내 삶을 채우고, 내가 그들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나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적기 전까지만 해도 나를 찾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 보니 나라는 사람도 은근히 또렷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단정한 것을 사랑한다. 사용하는 브랜드는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번잡스러운 것보단 깔끔한 것이 좋다. 시대를 타는 디자인보다는 오래갈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취향을 기록한다는 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나를 지키는 게 어려운 세상 속에선 내 취향이 암흑 속 한 줄기 빛이 되기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취향이 나를 지키고, 내가 취향을 지킨다. 나의 삶은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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