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취향 | 자유로움과 공감 사이의 선택
여행이라면 다 좋지만, 여행의 방식을 굳이 고르라면 혼자 떠나는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일상에서는 고독을 즐기지 않는 내가 여행만 떠나면 기꺼이 이방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은 극강의 자유로움을 향한 갈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여행을 같이 가는 이가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여행 시즌이 아니라면 숙소를 전부 예약할 필요도 없다. 첫날 묵을 숙소와 꼭 가보고 싶은 장소 몇 가지만 찾아두면 여행 준비는 얼추 끝이 난다.
여행을 떠나서도 자유는 이어진다. 목적지를 정하고 숙소를 나섰다가 날이 너무 좋아서, 날이 너무 좋지 않아서와 같은 시답지 않은 이유로 뜬금없이 일정을 바꾸는 건 예삿일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밖을 나서지 않아도,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내일 당장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해도 누군가로부터 원성을 들을 우려가 없다.
오로지 나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감내하는 시간들이 연속된다. 일상의 것과 유사한 패턴으로 하루가 흘러가지만, 선택에 대한 부담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가 된다. 모든 도시에는 이방인이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행운 같은 게 있다. 이방인의 행운은 여행지의 삶이 일상이 아닌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여행을 좋아해 여행 유튜버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건, 여행이 이미 그들에게 일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행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여행지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놓치고 마는 보물들을, 이방인인 나는 제법 손쉽게 찾아낼 수 있고, 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어 여행을 떠난다.
해외여행은 항상 혼자서 다녔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이상 보살핌이 필요한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에 전 세계가 잠식되기 전 엄마와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단둘이 떠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 대상과 해외여행을 떠난다니 준비 과정부터 챙겨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었고,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가 인생의 절반의 기간 동안 느껴오던 엄마의 마음이 그때의 내 마음과 비슷했을까?
함께 여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시를 소개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가이드가 된 것만 같았다. 길을 찾는 것도 내가,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내가, 컨디션을 체크하고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것까지.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내가 앞장서서 처리하고 관리해야만 했다.
혼자 여행할 때도 해야 하던 일이 대부분이니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가 보살펴야 하는 대상과 함께 타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도 아닌 가족. 그것도 하나뿐인 엄마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는 자식이기에 생겨날 수밖에 없는 부담감이 항상 따라다녔다.
이제는 내가 그를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자식의 무게가 늘 앞서 행동했다. 부담감에 어깨가 짓눌리자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잘못된 곳으로 흘렀다. 작은 일에도 날이 선 반응이 나왔다.
함께하는 여행은 순탄치 않았다. 체력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일정을 무리하게 짠 게 화근이었다. 예정된 일정은 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도시에 어둠이 내렸고, 다이어리에 적은 할 일을 마치지 못했을 때와 비슷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의외였다. 오늘처럼 재미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어라? 내가 생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제야 알아챘다. 오늘 하루를 보내는 내내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난 적이 없었다.
여행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의 결정을 묵묵히 따르는 것이 아니다. 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건 고민하고 결정하고, 결정에 책임을 지는 일의 부담을 함께 나눠진다는 의미였다. 함께 있어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2년도 전에 다녀온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도 종종 하곤 한다. 그날의 날씨가 어떠했는지, 호텔을 나설 때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식당에서 먹은 어떤 음식이 맛있었고, 다음에 가면 그곳 말고 이곳을 또 다녀오자는 이야기 속에서 그날의 기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혼자 가는 여행에는 자유로움이 있고, 함께 가는 여행에는 추억이 있다. 두 여행의 매력이 달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하늘 길이 조금씩 열리는 요즘, 조심스레 다음 여행지를 정해 본다. 이제는 혼자여도 좋고, 함께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