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싫어하던 나에게 일어난 변화
산은 오르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라는 관점을 오래도록 접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근처에 위치한 산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등산을 싫어하던 나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려면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새해를 앞두고 있는 12월 31일 저녁이었다. 중국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교환학생을 하다 문득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보러 가야겠다는 곳에 생각이 닿았다.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함께 갈 일행과 기차표를 예약했고, 대략적인 일정을 정리했다. 기차표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불확실성이 좋았다.
첫 번째 목적지는 태산(泰山)이었다. 맞다. 우리에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의 한 구절로 익숙한 바로 그 산이다. 기차에서 내리니 역 주변이 온통 암흑에 뒤덮여 있었다. 버스는 당연히 없을 시간이었다.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 말했다. "태산 입구까지 가 주세요"
너네 설마 그 복장으로 태산에 오르려는 건 아니지?
기모 후드티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기사님의 시선에 온갖 걱정이 비쳤다. 우리는 말했다. "영하 10도라던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날씨 앱에서는 태산의 기온이 영하 10도라고 했고, 우리는 오히려 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그건 입구 근처 기온이고, 정상에 오르면 영하 20도는 될걸?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대답이 돌아왔다. 기사님은 지금 복장으로 오르면 태산 정상에서 얼어 죽기 딱 좋다고 했다. 의심이 들었다. '혹시 우리에게 뭘 팔려고 밑밥을 까는 건 아닐까?' 의심이 걷치기도 전에 영업 멘트가 훅하고 들어왔다. "내가 아는 지인이 방한 용품 같은 걸 대여해 주는데 한번 들러볼래?"
상황이 흘러가는 게 뭔가 꺼림칙했지만, 일단 한번 속는 셈 치고 가보기나 하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역 주변에서 느껴지는 추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님을 따라간 곳에서 우리는 손전등을 구매하고 위에 보이는 외투를 대여했다. 중국 군인들이 자주 입는 외투인데 전체가 면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당연히 충전재도 오리털이 아닌 솜이다. 대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솜이 들어 있는 거대한 옷'이 가져올 비극을 미처 알지 못했다.
산의 초입에서부터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3박 4일의 짐을 가방에 바리바리 싸서 가져온 것이 1차적인 문제였고, 거기에 앞서 보았던 엄청난 부피와 무게의 옷을 미리 대여한 것이 2차적인 문제였다. 또한 우리가 태산을 너무 얕보고 있었단 사실도 문제가 되었다.
1/3 정도 올랐을 때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 것인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올라갈 것인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결정을 해야 했다. 일출 산행을 목표로 온 것인데 지금의 속도라면 해가 뜨고 난 이후에 정상에 오를 것이 뻔했다. 아니 어쩌면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탈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결국 가방을 포기하기로 했다. 외투를 포기하거나 가방을 포기해야 하는데, 정상의 기온이 낮다고 했으니 외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등산로 옆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보였다. 동굴처럼 옆이 움푹 들어간 거대한 돌덩이였다. '저기다.' 귀중품을 모두 챙긴 뒤 등산로를 뛰어넘어 가방을 잘 숨겨두고 돌아왔다.
가방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방과 그 속에 담긴 물건들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가방을 포기한 이후에는 산을 오르는 속도가 붙었다. 여전히 더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올라갈 수는 있겠다 싶었다.
택시 기사님의 걱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마스크에 닿은 숨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로 얼어붙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추위였다. 추위에 배고픔까지 더해지면 답이 없어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매점에서 간식을 몇 개 사기로 했다. 매점 앞 야외 쉼터에 앉아 잠시 동행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졸음이 밀려왔다. 그때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서 자면 죽는다
영화의 클리셰적인 대사를 내가 할 줄이야. 그 대사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누군가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능이었다. 고생 끝에 얻은 성과는 달콤했다. 결과적으로는 정상에 올라 새해 해돋이도 구경할 수 있었고, 당연히 잃어버릴 거라 생각하던 가방도 되찾을 수 있었다. '태산의 정상도 올랐으니 이제 뭘 못 하겠어' 하는 자신감은 덤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유해진 배우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기에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늘 불안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산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대종상 수상 소감으로 북한산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하던 그였다.
산은 오르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라는 관점을 오래도록 접지 않던 내가 이제는 등산에 관심을 갖는다. 등산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주 걸어보자는 다짐을 하는 요즘이다. 작년에는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했고, 현재는 3개의 코스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올해는 서울 둘레길과 서울 및 경기 인근의 산에 올라보려고 한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적다고 느낄수록 산과 자연을 찾게 된다. 태산의 정상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것마저도 살기 위한 인간의 본능인 걸까? 조만간 산을 다시 찾아야겠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다시 얻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