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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Nov 23. 2022

주재원 병을 아시나요?

부럽다.

그 전엔 그들을 마주쳐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를 나아 기르다 보니 그들이 부러웠다.

맞벌이를 하다가 ' 아줌마 손에 내 아이를 기를 수 없다. 시어머니가 와서 내 아이를 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라며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수입이 반토막이 났을 그때, 같은 단지 내에 사는 그녀들은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


 주재원 가족, 정확히 주재원의 부인들......

 

회사에서 주는 각종 혜택(교육비, 주거비, 주재 원비 등등)으로 무장하고 있는 그녀들.


남편이, 아이의 아빠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그녀들에게 늘 신선했었나 보다.


그땐 우리 집에 보일러가 없었다. 온열기와, 히터로 난방을 하는 우리 집에 온, 보일러 있는 렌트 집 사는 그녀들 중 하나는 꼭 못 키울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보일러도 없이 아기를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해 줬고,  아이의 유치원 진학을 앞두고도 앞에 멀쩡하게 앉아 있는 나를 제외하고 자기네들끼리 속닥 거리다가, 같은 유치원에 아이가 나타나자, 아빠가 중국인인데 왜 중국 유치원에 가지 않고 비싼? 유치원에 왔냐며 의아해했다. 마치, 그곳은 나의 아이가 가서는 안 되는 곳인 것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그녀들은 해외 생활이 처음이었고, 대부분은 영어도 중국어도 못했다. 필요에 의해서 "아무개 엄마"라고 부르며 나에게 접근을 하기도 하고 은근슬쩍 도움을 바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를 정말 그들 사이에 끼워주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정확하게 나는 그녀들과 같은 신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감사하게도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전폭적인 칭찬과 지지로 키워진 나는 온몸으로 무장된 자존감으로 타격감이 없었지만,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기분은 나빴다.


 다시 돌아가, 주재원의 그녀들은 무지함과 편협한 식견으로 무장해서 나를 낯 뜨겁게 만들 때가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중국인에 대한 막연한 무시"였다. 그녀들이 만나는 중국인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들, 택시 기사, 혹은 회사에서 내어주는 차에 딸린 기사 아저씨, 시장 아줌마, 배달 아저씨가 고작일 뿐인데, 그녀들은 그들을 통해서 중국을 보며, 온갖 말을 쏟아냈다. 


 "아니, 여기 상하이라며? 근데 왜 아줌마들이 영어를 못 알아들어?

 --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한국에서는 영어를 하시나요?


"기사 아저씨도 영어를 못 알아듣더라. 왜 그래?"

--한국에서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도 영어가 유창하신가 봐요?


"채소 아줌마가 싸게 해 달라고 하니 싫다는 거야, 여기 것들은 인정이 없어"

-- 1,2원 깎아서 뭐 하시게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시장 아줌마한테 굳이 한국돈으로 170원이라도 깎아야 하나요?


"중국에서 세 가지 안 하면 바보래, 아줌마 안 쓰는 여자, 짝퉁 안 사는 여자, 반찬 안 사 먹는 여자"

--전 세 가지 다 안 하는데, 바보는 아닌 거 같은데요.....


 그녀들의 어설프고 지나치게 간결한 중국어는 얼마나 교만하고, 지시적이기만 한지,  소리를 크게 지르고 말을 틱틱 놓기만 하고 한 단어씩 늘어놓기만 하면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대접해 줄 거라는 망상에 사로 잡혀있었다. 그녀들은 그 말투가 얼마나 천박하고, 교양 없고, 자신을 깎아먹는 말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쭉~~ 거침없이 그렇게 자신 있고 당당하게 중국어를 말했다. 영어는 못해서 너무 창피하지만, 쏟아내는 중국어의 천박함은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마치, 이곳의 주인들 인양 행동했다.  모이기만 하면 '일하는 아줌마가 어디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위생 관념이 없다' 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도우미 아주머니들의 평가와 험담을 하고, 국제 학교에 다니는 것이 특권인양 행동하고, (상하이는 학비가 비싸서, 자비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외국인들은 선뜻 아이 둘셋-둘셋이면 일억이 훌쩍 넘어간다-을 국제 학교에 보내는 것이 힘들다) 중국 로컬이나 사립에 다니는 외국 아이들을 안쓰럽게 여겼다.  그들에게는 이곳은 잠시 스쳐 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자영업자나, 영세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 (주재원이 많이 사는 동네는 성골이니 진골이니 이러면서 자기네들끼리하는 말이 돌기도 했다)등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한 귀족 인양 행동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  그 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들을 위해 일해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이들은 고작 몇 년 있는 이곳 생활에 분명한 목표도 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 하기, 중국어도 하기, 한국어 공부도 놓치지 않기....... 이게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다.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 아닌가? 일단 아이들은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하자마자 (귀가 뚫리고 말문이 겨우 열리자마자)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국제 학교의 특성상 부모가 나서 주지 않으면(플레이 데이트, 패밀리데이, 각종 부모 참여 수업, 컨프런스, 크리스마스, 스프링 페스티벌 등등의 행사) 아이는 적응 하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원래 터 잡고 있던 한국 아이들에게 의지를 하고, 그것을 받아 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세상 천하 나쁜 아이, 이기적인 아이가 되어 그녀들 사이에서 씹히게 된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가 그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귀국 준비를 하는 사이 '누가 귀국한데'라는 비밀을 발설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그녀들 사이에서 배신자 혹은, 빅마우스 정도의 취급을 받는 듯했다. 나는 수많은 그녀들이 밤하늘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어느 동네에 전세를 구했는지 자가로 들어갔는지 한동안 뒷말이 나오다 어느 순간 그 말도 들리지 않고 연기처럼 기억속에서 사라져 간다.


 여기 자리 잡고 오래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주재원병에 걸렸다"라고 한다.

 그 병은 남편의 지위가 높을수록, 주재비가 높고, 학비 주택비의 보조가 높을수록 증상의 위경증이 결정된다.    간혹 자기네들보다 더 좋은 조건의 외국계 주재원들 (expat)을 만나 그들이 사는 별장이나 이런 곳에 가게 되면 일시적으로 병세가 약화되기도 하지만, 완전한 치유를 하려면 "귀국"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간혹 귀국을 해서도 고쳐지지 않는 그 병 때문에, 아이도 자신들도 한국에서 방황한다는 소문을 듣기도 한다. 


 나는 가져보지 못한 신분, 나는 걸리고 싶어도 걸려 보지 못한 "주재원 병"이지만, 가끔 내가 그녀들의 입장이라면 그 좋은 기회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해결하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는 시간으로 보내진 않을 거 같다. 

  

 한때는 그녀들의 경제적인 여유가 부러웠지만, 이젠 글쎄.......??? 지금 내가 궁금한 건 과연 이렇게 지내다 돌아간  그녀들은 병이 완전히 치유가 되었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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