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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Jun 20. 2023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

 1.


  매년 3월부터 시작해서 4,5,6월이 되면 꾸준하게 '누가 어디로 발령이 나서 해외 이사를 해야 한다, 어느 누구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다', 등등의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6월이 되면 그 소식들이(소문으로만 들리던 것도) 확실해져 아이 학교 친구 송별회, 각종 인연으로 엮이기 시작한 지인들의 송별회로 바쁘다.  (아이들 학교가 6월 말에 끝나니 학년을 끝마치고 돌아가기 때문)

  대부분 주재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발령이 나서 떠나는 경우이기도 하지만, 간혹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어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가정 문제로(이혼이나 별거등 개인사)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벌써 20년이 넘게 꾸준히 매년 지인들은 (혹은 친구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도 매년 친구를 보내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이런 이별이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기보다는 그저 이맘때쯤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처럼 여겨진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 이제 떠나야 한다고 전해오면 '가는가 보다 이제 할 일이 생겼네, 이별 선물을 뭘로 해줘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꼭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소름 끼치게 차가운 로봇이 된 느낌이 든다.

  

 어쩌다가 같은 주거지에 살며 이리저리 마주치고 말문을 틀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나도 그 친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무료하지 않을 만큼만 시간을 보낸 딱 고정도만 친해진 사람들이 간다고 하면 나는 가증스럽게도 그 앞에서 서운한 척을 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네고 남에게 욕 들어 먹지 않을 만큼 이별 선물을 건네며 송별회 같은 (하지만 늘 하던 점심 모임) 식사 자리를 한번 가지고 쿨하게 보낸다. 겉으로는 아쉬운척하며 보고 싶을 거라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을 보낼 때는 이제 가게 되어 속 시원하다고 까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이의 학교로 엮인 외국인들과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파티를 하고, 슬립오버를 하며, 방학 맞이 행사처럼 바쁘고, 재미나게(?) 이별의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진다.  간혹 정말 아주 가끔 보내기 싫고, 아쉽고,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들도 있긴 하다. 그리고 그들과는 이메일을 교환하고, 메시지도 주고받으며, 통화도 하고 여행길에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1년, 2년이 지나면 그것도 빈도가 줄어들고 각자의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되면(주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면) 연락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인연도 거기서 끝이다.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모두가 원하고 남겨진 것은  <좋은 기억> 일뿐 이리라. 

 

 마음을 주면 떠나고 마음을 주면 떠나는 일이 반복되다 싶으니,  이제는 나도 모르게 깊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시간이 쌓일수록 마음 가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마음이 가면 언젠가는 떠나고,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하면 가증스러운 이별 연기를 하기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의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든다. 


 



2.

 

 또 떠난다. 

 성당 모임에 열심히 다니면서 쌓아온 친분들, 그 사람들 통해서 아이들 옷도 책도 받아 왔고,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도 좋았고, 어울려 노는 재미도 있었고, 가끔 지인 특혜로 애들 악기도 싸게 가르치고 과외도 싸게 했었는데, 그렇게 잘 활용하던 (?) 지인들이 발령이 나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 내 마음도 싸악 식어버린다.  

   뭐 송별회 핑계로 평소에 가기 힘든 좋은 식당에 가는 건 꽤 괜찮은 이벤트다. 그들의 짐 정리를 도와주다 보면 받는 식재료들, 아이 책, 옷, 작은 가구들, 심지어 냉장고, 여기서 구하기 힘든 김치 냉장고, 피아노 등등은 가능하면 많이 받아 놓을 생각이다.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쏟아 넣은 노력의 대가라고 하자.

 떠나는 이들은 ' 다시 연락하자. 꼭 만나자' 하고 가지만 나는 그렇게 보내고 나면 한동안 사회적 소강상태에 빠진다. 혼자서 지내기가 유독 힘든 나는 누군가와 같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집에 있는 건 너무 답답하다. 그렇다고 떠나간 사람들에게 내 에너지를 쏟기에는 부질없는 짓이다.  받을 건 이미 다 받았다. 이곳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다시 받을 것은 없다. 

 

 성당에 가자! 성당에 가면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이렇게 매년 주기별로 사람들이 가고 나면 또 곧 채워지긴 하더라.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오래 터 잡고 살고 있는 터줏대감 같은 나 같은 자매들에게 의지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고, 나도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고, 이렇게 지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미사참여 때문인지 하느님은 나에게 항상 같이 다녀도 격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매님을 꼭 보내주신다. 


 올해는 아이도 중학생이라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하니 이왕이면 한국에서 수학 선생님 출신의 자매님을 보내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 기도를 들어주시려나?





3. 


 바쁘다. 매년 여름 방학 전에는 이렇게 파티가 많다. 외국인들은 떠나는 것도 조용히 떠나진 않는다. 호텔바 전체를 를 빌리고, 수영장 있는 자기네 빌라가 꽉 차도록 사람들을 초대해서 몇 날 며칠을 몇 집을 돌아가면서 거하게 파티를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파티에 초대받아, 이들 사이에 있는 것이 너무 좋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뭘 하고 살 것인지, 뭐 중요한가? 무료한 이 생활에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스트레스도 풀고, 끝장나게 노는 외국인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지금이 즐거울 뿐.

 

 그동안 저들과 잘 놀았다. 매주 바비큐 파티를 하고, 아이들도 백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았고,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게 인터내셔널 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어 뿌듯하다. 어디 가서 잘 놀지도 못하는 한국 엘리트들은 항상 보기가 안쓰러웠다. 


 매년 떠나보내는 친구들이 아쉽지는 않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나도 내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연락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또 난 거절하지 않고 차 한잔이라도 같이 하는 시간을 낸다. 떠나간 사람과 잘 지냈었고, 그들이 원하면 다시 만나면 되는 것이지 그리 슬플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다. 순간을 잘 지냈었고 좋은 기억을 남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4.

 

 우리가 다시 한국으로 가는 것은 비밀이었다. 그런데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남편의 같은 회사 직원 와이프가 내가 말하기 전에 떠들어 되어 온 동네가 알게 되었다.  고소해서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그 반대였었나? 이유가 뭐가 되었든 내 입으로 간다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하다.


 아이 학교가 마무리되 어야 하니 남편은 이미 한국으로 갔으니 남은 내가 혼자 짐정리를 하고 짐을 보내고 마지막 집 문제까지 해결을 하고 들어가야 한다. 싫든 좋든 얄미운 그 입 가벼운 여자에게도 손을 빌려야 했다.  여기 생활은 가는 것이 아쉬울 정 도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더 오래 있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진짜 생활을 하러 돌아가야 한다.


 자주 어울려 지내던 사람들이 송별회를 해준단다.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모아산 선물을 이별 선물이라고 준다.  그리고 그 여자들은 그렇게 나를 보내고 여기서 쭉 이 생활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다시 연락하고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통점이 남아 있기는 할까? 그녀들에겐 현재인 것들이 나에게는 과거가 될 것이다.  

 나도 일 년 전만 해도 그랬었다. 멋진 칵테일 바에 가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며 다시 꼭 만나자, 자주 연락하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낸 그녀에게 다시 연락한 것은 남편이 발령이 확정되고 나서였다.  가증스럽게도 지나간 인연을 다시 묶어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곳에 있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며 행복하게 이야기하던 그녀와 예전처럼 자주 만나면 잘 지낼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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