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 감수성, 그 사이

36도

by 포인셋

나는 친한사람 몇에 한정적으로 수다쟁이다.

그러니 내 마음 속 나누고 싶은 소재는 많지만,

밖에선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


낯을 가려서가 크다.


안하느니만 못한 말은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말이 필요한 직업이래도

불필요한 말을 하고 사과하는 정치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밖에서 말수가 적은 건

굳이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 사생활이나

훗날 흠결이 될 지도 모를 것을 굳이 알려두고 싶진 않다거나,

굳이 남에게 궁금한 것도 관심도 그다지 없어서,

이 둘 다일 수 있겠다.

나는 태생이 관찰자이면서

내 눈에 띄인 극소수의 것 이외에는 지극히 무심하다.

그러니 때로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소릴 듣는다.

관심 가는 것이 너무 적어서 오히려

그냥 간결하고 건조한 루틴이 좋고,

재미난 것이라도 자꾸만 끼어드는 것에는 잘 지친다.

탐색에 들이는 뇌의 공이 큰 것 같다.

​​

나는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촉촉한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건조하지만 내가 관찰한 것에는 일말의 감수성을 발휘한다고 여긴다.


굳이 따지자면 바라보는 눈이 따뜻한 것은 아니고,

생각은 많지만 꽤 분석적이라는 데 가 닿는다. ​

말이 많은 것은 불필요한 말이 많은 것이며,

때로는 문학적 수식어구도 필요한 것이지만

오히려 대문호들은 더 뺄 것이 없는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곤 했으니,


발달에 발달을 더하다가 부작용들에 직면해 고꾸라지기도 하는 사회현상이나 기술들도 그런 이치에서는 별 다를 게 없다.

불필요한 나쁜 말은 하고싶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자꾸만 듣다보면 그 사람에게만큼은

나도 똑같이는 아닐지언정

내 참아주던 마음을 다치게 했음에 앙갚음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런 일들로, 혹은 내가 좋아했던 건조한 루틴에도

가끔은 한없이 메말라버리는 마음에 물을 주는 일이 필요한데 그것이 요즘은 읽고 쓰는 일이다. ​


쓰는 행위만큼으로는

남에게 쉼과 포근함과 물을 머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특별히 딱딱한 게 아니더라도 논리 없이 글을 쓰기는 어렵다.

제아무리 감성적인 것이라도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엉뚱하게 구성된 것, 공감할 수 없는 것으로는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없으니,

최소한의 논리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글을 '잘'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계속 배우고 또 연습하는 수밖에 없으며,​


평소에 잘 말려 개켜둔 나름의 논리와,

날 위해 좀 더 찾아내야 할 감수성,

내가 가진 것이 그런 조촐한 것이니

글을 쓰지 않으면 무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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