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많이 베인다

34.5도

by 포인셋

손에 늘 낫는 중인 상처 두어개, 새로 베여 쓰라린 상처 두어개씩을 달고 다니는 때가 있다. ​


한창 일할 때도 꼭 상처가 생기면 또 연달아 생기는 그런 때가 있었고, 그럴 땐 왠지 차분한 나라도 둥둥 떠있는 느낌이, 정신없는 그 느낌이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고 지금이야 드는 연장은 주로 주방칼뿐인데..내가 워낙 조심하는 축이기때문에 거기에 베이는 일은 잘 없지만. ​


요즘은 시도때도 없이 내 손톱에 긁혀 피를 본다. 급하디 급한 성질머리 때문이다. ​​


이상하게도 아이 키우면서 다른 데에는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몇 가지 '빨리빨리'를 놓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는데, 주로 옷 입히고 신발 신길 때, 화장실에서 손 닦고 씻길 때가 그렇다. ​


주로 내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인데, 안 그래도 '옷 하나 입히는 데 이렇게나 힘이들어서 언제 나갔다 와..' 하곤 했는데 요즘은 혼자 하겠다는 고집에 시간이 서너배는 드는지라 급히 외출할 일이 있거나 등원 시에는 혼을 쏙 빼놓는다. ​



날씨마저 건조하니 더 그렇겠지만, 언제 생긴지도 모르게 피가 이미 굳어있는 상처와 그 옆의 낫느라 거뭇해지고 있는 - 아프지는 않은 상처를 보면 마음이 묘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나..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남편에겐 훈장마냥 "나 오늘 손 또 베였다!"하고 "으휴~"소리를 들어야 그 상처가 서운하지 않게 내 소속이 되는 것 같다. ​​​


내 손이 거기 있는지를 스스로 모르는건지, 뇌가 조절해주기 전에 손이 먼저 나가기 때문인건지 모르겠네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 또 생채기를 내고서야 길어버린 손톱을 인지하고 자르는 요즘이다. ​


(하지만 그렇게까지 긴 건 아니고,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한 그 기간은 점점 더 짧아져 기어이 일주일 내에 손을 대고 마니 손톱모양도 동글동글 점점 못나진다.)



손을 보면 어떻게 살아온 지, 또는 세월이 고스란히 보인다고 했던가.

피아노 치던 얇고 길쭉했던 손톱은 그 때도 건반에 걸리적거린다며 바싹 깎곤 했었고, 일 하면서는 아주 가끔 멋 부린다고 손톱을 붙이곤 했던 때도 있었지만 내 성미에 맞지 않아 그만둔 뒤엔 되려 손톱 옆자리마저 동그랗게 갈아내곤 했다.

그 버릇들이 모여 지금은 그 때와 모양이 많이 바뀐 것이니 저 말이 맞긴 하겠지만, 엄마 손처럼 마디마디가 굵어지진 않았으니 여전히 일은 그보단 훨씬 덜 했다는 소리겠다.

나이먹어가고, 내 해온 일에 따라 나를 기록해가고 있는 손. 미래에도 딱히 고운 손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손은 되어야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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