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도
사람마다 매일 하루를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그 태도에 따라 하루가,
1년과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의미없이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은걸까?
이런 무기력함은 때로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지지만
알아도 차마 내가 어찌하지 못할 것일까봐
그 실체를 마주하기가 두렵다.
아마 30대에 들어서면서였을까.
뭔가 이전까지는 착착 내가 목표를 설정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주어지는 인생의 과업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청년기의 과업이 끝난 지금, 나는 멈춰있다.
어릴 적 부터 대단한 목표를 설정해도 뒷받침을 못해준다며 안타까워하는 부모님이 있었고,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아도 뭐든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주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적당히 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버린걸까.
무언가를 탓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내 천성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을 거스르는 일은 할 수 없었고, 마음고생은 좀 하면서 지내지만 그런대로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대단한 것을 꿈꾸지도 않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그런대로 사는 사람.
내 눈 앞의 목표에는 들이받을 듯 돌진하면서
인생의 긴 목표에는, 내 밖의 세상에는 너무 무심했던 탓이다.
주어진 과업이 없을 때 인생은 불안해지는 거였구나.
이젠 긴 목표를 세워야 하는 때였던 거다.
장거리로 페이스를 바꿔야 할 때인거다.
(단기 과업이 없으므로)
마치 모든 것을 통제당하다가 스무살을 기점으로
이젠 전공도, 생활도, 장래 걱정도 모두 다 네가 알아서 해 - 라고 등떠밀리던 딱 그 느낌.
같은 나이에도 마흔을 앞뒀다며 정체모를 우울감에 휩싸인 친구들에게 뭐 그런게 다 신경쓰이냐며 걱정말라 했지만, 이제야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 우리의 과업은 아마 나의 일을 통해서 부모님 세대보다 더 길어질 위아랫세대의 부양과 아이의 과업에 함께 매달리기도 하겠지만, (아마 부모님들처럼 대단하게는 못 할지도 모르지만)
이 심플해보이는 문장이 앞으로의 20년.
그 사이 열심히 벌면 나가고, 승진과 투자에 골몰해야 할 거고, 부모님이나 친인척 중에는 더 뵙지 못하게 될 분도 생길 것이며, 많은 행복감 사이사이 고난들도 겪어야 하겠지.
지금보단 더 준비하고 계획해야 살아낼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