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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미정 Apr 23. 2024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파리 외곽. 줌마의 시간

다짐+ 자잘한 것들.. 기억해야 할 것들의 메모


1. 아.. 오늘은 아침부터 새하얗게 불태웠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나?


어제저녁준비를 하느라 아이숙제를 그에게 좀 봐주라고 했다. 보통은 아이 혼자 한 후 내게 검사받으러 오라고 하지만 특별한 숙제였기에 부탁을 한 것이다. 어제 이 숙제 좀 봐달라고 한 것이 마무리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왜 또 뭔가 그가 숙제를 잘 못 봐준 것을 탓하려 하는가?


탓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결과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별로였기에 아침에, 그 바쁜 아침에 내가 그걸 또 오리고 붙이고 하느라, 머리에 스팀이 나와서 화를 꾹꾹 누르느라 나도 나름 애썼다. 아이 앞에서 부모가 하는 행동을 아이는 답습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제 노력을 해서라도 감정의 분출이 자극적일 수 있는 경우 입을 봉인하고 나쁜 말 비수로 꽂힐 수 있는 말 가시가 돋친 말 등을 지 아빠에게 쏟아내는 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계기가 있었는지?


어제 아이에게 무슨 잔소리를 딱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아이가 지 아빠한테 따다다닥 가서, “왜 또 엄마를 괴롭히냐, 당장 멈추라, 그건 좋은 행동이 아니다”라는..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갑자기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지자 제이는 심히 당황하면서도 아이의 프로젝트성 숙제를 위해 흰 종이 위에 나뭇잎을 붙이고 있더라. 입을 꾹 다물고.. 아이도 제이도 둘 다 반응이 정상은 아닌 듯해서.. 나의 억압적 어조는 즉각적으로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가 또 다른 아이의 프로젝트를 두고, 정말 형편없었다고 말한 것도 다짐을 한 주요 원인이다. 내가 지 아빠를 두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아이에게 전이되어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멸시한다면 내 딸내미가 그렇게 대우받을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상식적인 것일 테고.. 그때는 다수에 의해 당할 것이니 왕따나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것이고, 뜬금없이 이 아이가 '희생자'라는 자기 동정으로 위로나 구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될 것이기에. 아..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돌고 도는 인생. 누구 탓할 것 없이 네가 지금 당장 너부터 정신 차리도록.


회사에서 퇴근하고 힘들었을 제이에게 숙제를 부탁하지 않고, 네가 아이 숙제를 봐주지 그랬니?


물론 아이를 16시 30분에 픽업하기 전에 저녁을 미리 준비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다시 떨어진 원기회복을 위한 닭백숙을 한번 더 해야 하는 데 닭을 손질하고 씻고, 물을 끓여서 데치고 건지고 다시 한번 더 손질해서 씻고, 함께 넣어 끓일 것들을 준비하고.. 이걸 다 했다손 치더라도 불에 얹어놓고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는 월요일이었고, 아이의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다. 그러면, 집에서 16시 10분에 나가서 17시 30분에 집에 들어오는데 1시간 20분 동안 압력솥에 불을 붙여 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물론 그전에 준비를 싹 해두고 17시 30분에 들어오자마자 조리시작하도록 준비해 두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제는 보름이상의 방학이 끝난 첫날이라 심신이 지쳐서 빠릿빠릿하지 못했다. 그럼, 네 남편도 개떡같이 보낸 휴가가 끝나고 첫 출근이라 힘들었고, 제대로 못 도와주었던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원래 하는 일이 다 좀 그렇기는 하지만, 맞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도 힘들었을 거고 지옥철에서 쌩고생을 해서 잡동사니 정리도 안 해서 무겁디 무거운 가방을 한 어깨에 메고 무슨 천로역정 영화를 찍는 듯 고난의 길 코스프레를 하는 인간.. 너무 닦달하고 코너로 몰아가는 경향성이 나에게 있다. 내가 완벽하게 나의 하루를 디자인하지 못한 것의 역정을 그에게 표출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만만하게 안보이려고 하는가 보다. 저 화상을 내가 만만하게 봐도 너무 만만하게 보니깐 콩만한 꼬맹이도 만만하게 보고 저런 것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가까이 있는 이를 좀 품어주는 넓고 깊은 마음의 소유자가 좀 되어 보는 건 어떠니? 글쎄.. 십 년 간 내가 마음 고생하고 지금 악독한 마누라 역할 맡은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좀 손해보는 느낌인데.. 생각은 해 볼게..


2. la fête des 100 jours d'école

여하튼 아침에, 이 프로젝트성 숙제는 잘 정리가 되어서, 아이도 만족하고 저 화상도 만족하고 나도 후다닥 후다닥 했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초집중해서 진은 빠졌지만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왔다. 이 숙제는 휴일을 제외하고 아이들이 9월 입학부터 등교 100일째 되는 날을 축하하는 행사다. 우리는 아이 사진을 100장 인화해서 100이라는 숫자를 대형사이즈 도화지 세 장에 오려 붙였다. 요기까지만 했다면 아이가 지각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또 100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화장을 하든 옷에다 하든 아이에게도 표현을 해야 한다고 하네.. 아침에 바빠죽겠는데.. 바느질로 1과 0 그리고 0을 첫을 덧대서 꿰매고 앉아있다 보니 벌써 시계는 8시 28분이다. 8시 30분 등교인데.. 그래서 1과 0은 바느질로 잘 꿰매어 달고, 나머지 0은 그냥 스테이플러로 붙였다. 두 개의 0이 모양이 다르지만... 아. 그냥 일단 보내고, 점심 픽업에 마지막 0을 바느질로 달아줘야겠다. 아이를 데리러 11시 30분에 출발해야 하니.. 지금 점심을 또 준비해야 한다. 어제 닭백숙은 밥과 고기 생채 위주로 먹어서, 국물은 좀 덜어두었다. 이 닭육수를 활용해서 닭고기 야채 칼국수를 만들 준비를 해야겠다. 애호박과 양파 감자 등을 썰고.. 일단 닭 육수를 하려면 국물을 내려고 썼던 양파 무 파 통후추 월계수잎 등등을 건져내야 하고.. 짜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3. 5월 발표

갑자기 이것이 또 떠올라서 메모로 해 둔다. 아이 발표도 코 앞이다. 이것은 오늘 아침에서야 했던 쌍주흐데꼴 꼴 나지 않도록 준비를 미리미리 하도록 하자. 이게 전부 방학 때 준비해야 했었던 건데.. 아, 나의 행동양식이 아이에게 대물림되겠구나. 정신 차리자. 모든 시험을 찬찬히 준비한 적도 없고 뭐든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결과는 항상 창의적이다 혹은 좋다 잘했다 등의 성공적인 것이라, 크게 힘든 적이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성취하는 훈련을 어릴 때 해 보지못한 것의 결과는 혹독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중년의 나이에 보게 된다. 내가 어린 시절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해야할 때, 모르거나 어려운 케이스는 그냥 놓았던 것 같다. 이제.. 아이의 방학 숙제 준비는 좀 달라야한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는게 제일 중요하지만, 아이가 혼자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옆에서 앉아서 찬찬히 지켜보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며, 아이가 체계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도와주는 것도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이다.


4. 댄스

이것도 메모를 해둔다. 6월 1일에 예술원 기초발레수업의 학기말 공연이 있는데, 무용복에 부착할 액세서리 공동구매비용 20유로를 오늘 수업에 바로 납부를 하도록 미리 봉투에 넣어 챙겨두도록 한다. 수업지도도 바쁠텐데 매번 봉투 받고 안낸애 낸애 체크하고 또 다시 말하고.. 그렇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학부모 도우미도 신청받는다고 요청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야겠다. 아이는 내가 입구에서 보조하는 것을 보면 기뻐하겠지만, 일단 집안꼴도 엉망이고... 정리를 좀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억해야 하는 일을 하나 더 추가하지 않기로 한다.


5. 오디션

아, 잊을 뻔했다. 내일 음악원 피아노 오디션이 있다. 강세조절 쉼표 지키기 rit 등의 표시에 맞게 칠 수 있도록 준비시켜서 데리고 가야 한다. 내일 오후 18시 30분.. 아이는 틀리면 음악원장이 야단치냐고 물어본다. 음.. 이사오고나서 아이가 학교에서 억압을 좀 당하는걸까.. 너무 말괄량이라서 벌써부터 누르는 걸까. 이사 전에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인해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동네에 이민자부모가 많다보니 학교에서 학생관리를 좀 강력하게 하는 것일까? 아이들끼리 텃새가 있었던걸까..? 이 부분은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6. école municipale d'arts plastiques

미술원.. 벌써 이메일을 두 번이나 받았었는데 연락하는 것을 깜빡했다. 분기별로 신청을 하는 데.. 첫 학기를 하고 저번에는 안했었다. 수요일 아침 10시에서 12시까지인데, 주 1회라서 가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지만, 수요일은 쉬는 날이다 원래. 그래서 아이가 학교를 월화 가고 수요일 쉬고 목금 가고 주말 쉬고.. 이렇게 해줘야하는 데 오전 9시 30분에 집을 나서려면 아침에 8시부터 뭔가 아이에게 일어나라 씻어라 먹어라 옷입어라 머리빗어라 미술가방어딨냐 안에 붓이랑 스케치북이랑 다 있는지 확인해봐라 물감은 아직 남았느냐 이러면서 뭔가 너무 빡빡하다. 그렇게 갔다가 집에 오면 12시 30분. 밥먹고 또 바로 합창수업이 오후 두시다. 갔다가 오면 거의 오후 4시다. 바로 간식 준비하고 먹고 이러면 오후 5시다. 학교 숙제 좀 하고 나면 저녁준비.. 아이랑 같이 뭘 함께 할 시간이 전혀 안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계속 닥달해야한다는 것이 진짜 좀 아닌 것 같다. 물론 여름에는 아침에 일찍 나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너무 빡빡하다. 아까 전화왔기에 이메일을 보낸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못하겠다고 해야겠다. 그게 맞는 것 같다.


7. regie

어제 급식비 납부 수정된 메일을 확인했다. 3월에 학교에서 먹은 것이 딱 네 번인데, 하루가 더 추가로 되어 있어서 다시 확인을 해달라고 지난주에 메일을 보냈었는데 오늘 아침에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답변을 바로 보내온 것이다. 이 하루는 '예약 없이 그냥 먹은 점심'이라서 원래 한 끼 5.80유로 기본금에 추가비용이 붙어서 7.20유로라고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수십 년의 직업병으로 쉼표 마침표 하나의 오류까지 잡아내는 통에 한국돈으로 만원도 굳고 기억해야 할 일도 하나 줄었다. 고맙다.


8. 브런치 성장 동화

일단 오늘 업로드 관련해서는, 아이를 11시 30분에 픽업하고 와서 밥 먹이고 바느질로 숫자 좀 제대로 꿰매고 거실에 아침에 널브러진 사진의 파편들 좀 치우고 13시 20분에 아이 데려다주고 14시에 집에 오면 시작될 것 같다. 15시에만 마무리되어도 좋을 것 같지만 조금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타이핑과 기본 작업을 미리 해 두어서 다행이다. 시간이 확보가 되어야 청소기 좀 돌리고 빨래하고 저녁거리 좀 사다가, 아이를 16시 10분에 픽업하러 갈 때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은데.. 성장 동화하고 나면 딱 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 듯하다.


오늘은 아이 댄스수업이 있는 화요일이다.

간식 먹여서 17시 15분에 나가야 17시 30분 수업에 도착할 수 있다.

17시 50분에 집에 도착하면 18시 20분에 아이 데리러 가기 전까지 30분이 있다.

이때 저녁 식사의 윤곽이 드러나야 저녁시간에 맞출 수 있다.



찾아주셔서 오늘 제 미천한 하루의 일부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나이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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