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솔직히 한동안 많이 미웠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런 감정이 밀려온다.
한때는 저주까지는 아니지만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다.
밑바닥으로 꺼져가는 감정을 힘겹게 가까스로 끌어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순식간에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곤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나의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함을 전제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그 미움을 없애기 위해 나의 많은 감정적 소모가 필요함을 전제한다.
그 미움의 감정으로 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든 괜찮았겠으나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드러날 수도록 나는 힘들고 지치고 아팠다.
날 위해서라도 그 사람을 그만 미워해야 했다.
그렇다고 다 내 탓이라며 가식을 떨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대충 뭉퉁그려 놓았다.
내 잘못만도, 그 사람의 잘못만도 아니라고 얼기설기 짓이겨 놓았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서로 다른 인연을 만났더라면...
어쩌면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만을 탓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것이 되니까 일방적으로 미워하고 탓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혼의 과정을 돌아보면 후회의 감정이 든다.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결혼생활이라는 내 삶의 과정에 대한 회한이다.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웠다면 그 삶의 기간이 지우고 싶을 만큼 아프고 비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다.
분명한 건 내가 상대방을 미워할 자격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럴 자격이 내겐 없다.
상대방보다 내가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
최소한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인정하고 나면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할 자격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나의 모자람을 온전히 수용하고 나서야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을 완전히 멈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