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까지 먹었으면 알잘딱깔센! 몰라?" 나이를 먹는 것으로도 스스로 정리하고 새롭게 정의해 나가기도 바쁠 때가 많습니다.
Ai 미드저니를 통해 뭉크풍의 그림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근데 알잘딱깔센까지 챙기기도 영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말도 맞지만 알아서 잘 딱 센스 있게를 매번 적용에 힘을 써온 터라 한 번쯤은 관계적인 모양까지 아름답게 가꾸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마인드가 발동하게 됩니다.
아직도 이런 지나가도 될 얘기를 들으면 괜히 집착해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직 포기하고싶지 않은 청년의 패기와 무지성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포지션을 생각하면 이것도 최선인 것 같은데 더 가다가는 상대방만을 위한 맞춤형 인간으로 자리할 것만 같아 나름 최선을 다해 명상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명상은 요즘 트렌드라고 합니다. 그만큼 열심인듯 삶을 제대로 직시하려 노력하는 시대인 듯 합니다.
배려있는 행동은 무엇이 나쁘랴. 다만 그 틈새를 이용하고자 하는 닝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 깊이 내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로 커피 한잔 사 오는 수고로 보았을 때 까짓 거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이라고, 이를 해줘말어 하는 문제에 스트레스받고 고민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지않다 여기고 기꺼이 응해주는 경우와 더러 마주치고는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오는 '진짜 나'에 대한 물음을 던졌을 때, 그동안 쌓여진 이런 행동들이 어뷰징으로 안개 낀 듯 다가와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인격 체계에 분명한 영향을 주고, 이로인해 개념화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오는 현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울함과 마주할 때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 행동이 좋아서였는지 어쩔 수 없음이었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호의적인 행동은 결국, 그것도 나라는 존재에 힘을 실어줄 때가 있습니다. 벅찰 때도 있지만 즐거울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바지하다"라는 말을 전 좋아합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행동과 마음의 씀씀이는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했는지가 중요해지는 요즘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소모품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뭔가 하나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이바지하다를 생각해 보는 게 어떨지 여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완벽 아닌 완성에 가까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