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살 수 없다.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해!
‘얼마나 번다고 100만 원이 넘는 오피스텔에 살아’를 외치며 회사 근처에서 살던 오피스텔에서 나와 외삼촌 집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두 달을 못 버티고 다시 나오게 됐다.
외삼촌 집은 거의 서울 옆에 붙어 있는 일산 끝자락이어서 대중교통으로 얼마든지 잘 다닐 수 있을 거라며 교통편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그렇게 여의도에 있던 방을 빼고 모든 짐을 제주로 보냈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그리고 옷 몇 가지만 싸서 캐리어 하나 들고 난 일산 외삼촌 네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며 빠른 길 찾기에 나섰다. 거리로는 약 10킬로 남짓인데 대중교통 이용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나온다. 이건 분명 뭐가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 세밀하게 지도를 확대하고 집 앞 버스정류장을 검색했다.
마을버스와 지선버스 두 개가 있었다. 신도시였던 덕은지구에는 아직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는 노선이 마련되지 않았다. 아니 있었지만 그 노선, 그건 좀 아니었다. 아, 어떻게 다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대중교통 빠른 길 찾기의 달인이었던 나는 제주에서 7년간 보내면서 뭔가 서울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서울이 변한 건지 내가 지리에 어두워진 건지 노선검색을 하는 뇌는 계속 버퍼링이 생기고 있었다.
분명한 건 지하철은 한 번은 갈아타야만 했고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가는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버스노선 2개는 분명 지하철역을 지나고 있었다. 마을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녔고 나머지 한대는 30분이 넘게 걸렸다. 첫날은 그렇게 돌아서 버스 한 번과 한 번의 지하철 환승으로 출퇴근했다. 방향을 거꾸로 보니 반대로 타고 가면 환승 한 번으로 지하철역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었다. 버스 2번을 타고 지하철 한 번 환승으로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7시까지 출근을 하던 나는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6시 10분 버스를 탔다. 그 버스를 타면 대략 1시간 10분 걸려 회사에 도착했다. 문제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버스 환승하던 곳이 문제였다. 버스종점이라 사람도 없었고 어두운 탓에 좀 무서웠다.
그렇게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새벽시간에 있지도 않았으며 퇴근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면 버스도 잘 오지 않는 그 정류장에 혼자서 20분 이상을 기다리게 되는 때도 많아졌다. 점점 출퇴근 시간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고 짜증이 났다. 타는 시간은 다해야 20분도 채 안 걸리는데 갈아타고 기다리고 걷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책을 읽는 것조차 어려웠다. 책을 펼치면 바로 하차해야 했고 걸어야 했다.
그렇게 버리는 시간만 왕복 3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다시 외삼촌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이 더 나가더라도 맘에 드는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 집에도 월세는 주고 살았다.
그전에 살았던 여의도 오피스텔은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어야 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더 그 집에서 나오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여의도를 떠나 지하철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마포와 당산 그리고 영등포 주변으로 직방을 통해 방을 찾기 시작했다.
마포에 내가 늘 가고 싶었던 오피스텔이 있었다. 직접 부동산까지 찾아가서 알아봤는데 원하는 매물은 없었다. 사실 여기는 주변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이기도 했다. 겨울에 난방이 안돼서 춥다고 하는데도 나는 굳이 그곳에서 살아보겠노라고 찾아 나섰지만 결국 월세는 없었다. 공덕에 새로 생긴 분리형 복층인 도시형 생활주택이 매물이 하나 있었다. 내 맘에 쏙 드는 집이었다. 보증금도 좀 세고 월세도 좀 나갔다.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맘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매물은 사업자만 가능하다고 했다. 사업자로 하면 부가세를 내야 한다. 물론 사업자도 가지고 있어서 맘만 먹으면 계약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당산역 근처에 의외로 괜찮은 오피스텔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역과 가까운 오피스텔은 월세가 비싼 편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고층의 복층 오피스텔은 나를 자꾸 끌어당겼다. 마포가 좋았던 나에게 당산역의 매력은 별로 없었다. 잘 알지도 못했고 가본 적도 별로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외삼촌 집에서 나오고 싶었기에 일단 용기를 내서 방을 보러 갔다. 복층을 원래 선호하지 않는 편이어서 더 뜸을 들였었던 것 같다.
복층임에도 맘에 들었던 이유는 창문이 통창이다. 복층이라 층고가 높아 창도 컸다. 그리고 멀리 한강도 보였다. 나름 한강뷰도 가지고 있었다. 집을 볼 때 창문을 가장 먼저 보는 편이다. 제일 싫어하는 창문은 하이새시 미닫이 문이다. 제주에서 집을 지을 때도 제발 그런 문은 쓰지 말자 하고 집 지을 때도 사용하지 않았던 문이다.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창문이었다. 창문이 맘에 안 들면 화장실이라도 맘에 들어야 했다. 서울 와서 지냈던 2개의 오피스텔은 둘 다 창문은 맘에 들지 않았고 뷰도 없었다. 그나마 화장실이 맘에 들어 선택한 집들이 었다.
집을 보러 가기 위해 퇴근 후 당산역으로 갔다. 회사에서 역까지 딱 15분 걸렸다. 오우~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있을 건 다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도 건너편에 있었고 세탁소가 근처에 있어서 맘에 들었다. 요즘엔 전화하면 세탁물을 수거하러 오고 배달도 해주는데 나는 집에 누가 들락거리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내가 가서 맡기고 찾아오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동네가 맘에 들어야 다니는 맛도 생긴다. 매일 어두운 버스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생각을 하면 천국이었다.
부동산 담당자를 만나 집을 보러 같이 올라갔다. 해가지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매직 아워가 아주 예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눈에 들어온 한강의 반짝이는 불빛과 야경은 나를 충분히 사로잡았다. 나는 바로 결정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출퇴근 시간 3시간을 돈 주고 산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다시 나의 독립생활은 시작됐다. 집이 맘에 드니 퇴근하면 집으로 가고 싶어 졌고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이삿짐을 제주로 다 보냈기에 짐은 하나도 없었다. 살이 빠지면서 몸에 맞는 청바지 몇 개 산 게 전부였다.
외삼촌 집에선 배낭에 노트북과 옷 몇 개 그리고 부피가 좀 컸던 스탠드 하나 챙겨 나왔다. 회사에 있던 나머지 짐들은 작은 카트에 담아 이사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소파를 두고 갔으면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집에 뭘 많이 들여놓을 생각이 없어서 처음엔 싫다고 했다가 어차피 의자는 사야 했기에 의자 대신 쓰기로 했다. 그리고 책상을 소파에 맞는 걸로 제작하기로 했다.
이사 당일 소파만 덩그러니 있던 집은 하늘이 더 잘 보였다. 나는 창 밖으로 하늘이 많이 보이는 집을 좋아했다. 예전에 엄마와 살던 집도 누우면 하늘만 보여서 좋았던 집이 있었다.
며칠 동안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사느라 코스트코, 이케아, 더현대 서울, 모던하우스, 무지 등을 돌아다녔다. 일주일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 나는 제주로 내려왔다.
미니멀하게 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사야 되는 것들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최소한의 것만 두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완벽하게 원하던 집으로 들어왔다. 뭔가 삶이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월세가 중요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바뀐 것이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도 바뀌었다. 돈은 벌면 된다. 더 벌기로 했다. 쓰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버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벌기로 마음먹으니 삶이 더 편해진 느낌이다. 더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