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나는 들꽃을 보며
맥문동
: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되고, 언뜻보면 라벤더 같기도 한 보라색 꽃.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 주로 아파트나 빌딩의 그늘진 정원에 많이 심는 식물.
작년 5월, 아파트 화단에 무언가를 가득 심는 것을 보았다. '웬 풀떼기를 심지?'하고 지나쳤는데, 잠시 후에 보니 그 '풀떼기' 틈 속에 보라색 꽃이 피어있었고, 그 꽃이 맥문동이었다.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벚꽃, 이팝나무 꽃, 백일홍에 이르는 갖가지 꽃이 피었다 지는 걸 느끼며 어쩐 일인지 그때 본 선명한 보랏빛의 맥문동이 생각났다.
맥문동은 꽃이 피어 있지 않을 때는 그저 그런 풀뭉치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돌아보면,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보라색 얼굴이 쑥 올라와 고개를 내민다. 맥문동의 꽃은 5월부터 초여름 쯤에 핀다고 하는데, 내가 살던 경기도 어느 동네 길가 곳곳에 있는 맥문동은 올해엔 7월 중순에서 7월 말 무렵에 피었던 것 같다. 이번엔 언제쯤 나타나려나 하고 기다림이 자못 지루하던 순간에 불쑥 솟아올라 피어있는 꽃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조금 늦었지만 결국 너도 꽃을 피워냈구나 하며.
안전하게 관리되는 환경에서 사람이 온 정성을 쏟아 상품으로 키워낸 절화(折花)를 볼 땐 예쁜 공예품과 같은 정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수입 꽃을 통해서 특별함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에 무심함 속에서 풍파를 이겨내고 핀 길가의 꽃으로부터는 친근함과 소박함이 느껴질 뿐,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바람과 비, 따가운 햇볕과 태풍과 같은 고초를 겪으면서 결실을 맺어낸 길가의 꽃은 그 특유의 강인함과 수수함을 내비치며 은은한 위로를 건넨다. 조금 늦더라도 결국은 꽃을 피워낼 거라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없어진 것 같겠지만 실은 언제나 이 자리에 한결같이 존재해 있었다는.
길게는 한두달, 짧게는 5~7일.
그 찰나의 기간 동안 잠깐 피어있기 위해 긴긴 시간 동안은 단지 이름 없는 어떤 풀과 나무일 뿐인 꽃나무들.
때가 되면 그 때를 알고 그 자리에서 '나 여기 있어. 사실 항상 여기에 있었어.'라며 인사를 건넨다. 자신이 꽃 피우기에 완벽한 날씨를 가늠하며 때를 기다렸겠지.
그때가 됐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감내했을까.
문득 경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