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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건축가 Jan 04. 2024

소방의 거침없는 침투, 엉망진창 건축법


가뜩이나 엉망인 건축법이 소방법의 거침없는 침투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안전이 강조되는 것은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마치 현실의 건축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쑥 치고 들어온 소방관련 이슈는 앞뒤 안 맞고 해석의 오해를 만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엉거주춤의 건축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일차 침투는 소방관 진입창이 건축법에 들어온 때가 아닌가 싶다.

밀도가 높은 도시 환경에서 소방 활동을 위해 진입창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건축은 소방에서 불러준 대로 받아 쓴 모양새다.

당장 현실과 괴리된 유리 사양의 문제로 결로를 감내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복층유리를 적용해야 했고 위치나 규격에 대한 무성의함으로 건축 계획의 걸림돌이 되었다.

뒤늦게 삼중유리 적용을 허용했으나 건축에서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왜 걸러내지 못했나 아쉬움이 크다.


이차 침투는 마치 게릴라전 같았다.

아무 대비도 없는 상황에서 방화창 관련 규정이 건축법으로 쑥 들어와 버렸다.

누가 주도했을까? 강한 의심을 했던 창호업체는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 소방에서 디밀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접대지에서 1.5m 내의 건축물(3층 또는 9m 이상)에는 무조건 방화창을 설치해라?

화재 비율의 50%에 육박하는 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도시의 소형집합주택이 주 타겟이 되었다. 오래되고 낡은 도시의 소형 건물들은 어마어마한 창호의 비용 상승으로 리모델링을 주저하는 상황이 됐고 소형 집합주택은 방화창을 설치하느니 아예 창호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 거주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뒤늦게 방화창 개발에 뛰어든 창호업체가 기존 시스템 창호에 대응할 수 있는 창호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건축비의 상승은 일반 건축주가 또 감내해야 되는 몫이 되었다.


삼차 침투가 가장 무지막지하고 엉망진창이다.

그거슨 바로 외벽 마감재료의 실물모형 실험 관련한 법이다.(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24조를 참조)

이전에는 외벽에 설치되는 각각의 재료가 준불연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했던 것을 외벽에 설치되는 재료를 모두 합쳐 실물모형 테스트를 진행하고 고시한 기준을 충족해야 인정해주겠다는 법이다.

이 법이 적용된 초창기에는 당최 무슨 얘기인지 설계자, 인허가권자, 시공자, 자재업체 아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실물모형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가? 실물모형 테스트를 한다면 여러 재료 중 어떤 재료의 업체가 시행하는 것인가?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상황에서 실물모형 테스트를 실행하는가?

두 가지 이상의 외벽마감재료가 설치될 때 실물모형 테스트를 실행하게 되는데, 이 때 두가지는 대체로 단열재와 마감재료로 구성된다.

이전에는 단열재와 마감재료가 각각 준불연의 성능을 인정받으면 설치 가능하였는데 바뀐 법으로는 단열재와 마감재료를 합쳐서 실물모형 테스트를 진행하고 고시한 기준을 통과해야 된다.

실물모형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하나 있는데, 단열재와 마감재가 모두 당연불연재일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 국내에서 적용되는 마감의 경우 대부분 실물모형 테스트를 실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2. 실물모형 테스트를 한다면 여러 재료 중 어떤 재료의 업체가 시행하는 것인가?

법이 바뀌고서 여러 자재 업체에 실물모형 테스트에 대한 시험성적이 있는지 문의를 했었다. 실물모형 테스트 자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업체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보니 재료 사용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은 발 빠르게 대처한 sto(스터코)를 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혼란스러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실물모형 테스트를 시행하는 업체의 방향이 정해진 듯하다.

실물모형 테스트는 단열재 생산업체가 거의 주도하고 있는데,

마감재를 건식/비금속, 습식/비금속, 금속의 경우를 나눠서 실물모형 시험성적서를 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든 시험성적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한데, 수많은 재료의 경우의 수를 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또한 마감재료 선택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물모형 테스트는 실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잡히지 않는 허상 같다.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당연하다.

안전이라는 무기로 소방이 감히 건축 안에 들어와 현실과 괴리된 환타지를 펼쳐놓은 결과다.


이렇게 훼방을 놓을 때까지 사협회는 뭘했나 묻고 싶다.

이런 명쾌하지 못한 누더기 법이 인허가권자의 자의적 판단, 건축사의 낮아지는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건축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말 뿐인 얘기는 그만하고

좀 더 현실 안에 들어와 건축사의 업무에 천착한 실효적 업무를 협회에서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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