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안겨주시던 당신

by 난화

할머니는 봄을 가장 먼저 알아보셨다

눈이 다 녹기도 전에

곧 쑥이 나겠다는 말씀을 꺼내셨고

달래 한 줌이면 국물이 달아진다고,

두릅은 칼 들기 전에 따야 한다고

조금 설레는 얼굴로 나를 부르셨다


나는 손목에 비닐봉지를 끼운 채

그 옆을 따라 걸었다

비탈진 언덕과 굳은 흙덩이,

당신은 그것들을 반가운 사람처럼 대하셨다

흙이 숨 쉬는 소리가 있다며

무릎을 꿇고, 손끝으로 봄을 만지셨다


나는 그 모습을

한 발 뒤에서 바라보다

자주 한숨을 쉬었다

또 나가야 하느냐고, 허리는 안 아프냐고

그러면 당신은

참지 못하고 웃으셨다

“이거 캐서 해먹여야지, 애들이 좋아하거든”

그 ‘애들’이 나였다는 걸

나는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당신이 캐오신 건 나물만이 아니었다

내 몫의 계절,

하루치의 밥상,

말하지 못한 당신의 마음까지

그 모든 걸 허리 굽혀 건져 오셨다


나는 몰랐다

그 시간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사랑이었는지

나는 몰랐다

당신이 흙을 닮은 사람이었단 걸

당신은 묵은 뿌리를 골라내며

한 줄 한 줄 나를 키우고 계셨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달래 보러 가자고,

두릅 났다며 나서자고

이맘때쯤 들려오던 목소리가

올해는 조용하다


할머니는

이번 봄을 맞지 않으셨다

눈이 아주 많이 오던

그 겨울 끝자락에

조용히 손을 놓으셨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당신의 마지막 계절을 내게 남기고 가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봄을 걷는 법을 잊었다

햇살은 여전한데

손끝이 시리다

냄새는 살아 있는데

냄새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제야 나는

당신이 남긴 봄이

내 삶의 가장 오래된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나는,

그 사랑을 자꾸 놓치며 자랐다

흙 묻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정작 그 손을

오래 붙잡아드리지 못했다


할머니,

나는 조금만 더 천천히 자랐어야 했어요

조금만 덜 어른인 척하고

조금만 더 당신 곁에 머물렀어야 했어요

그날 봄볕처럼

당신을 오래, 더 오래 바라볼 걸 그랬어요


이제는 당신 없이 봄이 오고

당신 없이 쑥이 돋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푸르고

장바람은 예전처럼 불지만


저는 아직

당신이 앉던 자리를 돌아보고

당신이 바라보던 땅을 따라 걷습니다


그 길 위에서

가끔은 눈이 시고,

가끔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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