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장면, 오래 남는 마음

by 난화

그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줄거리도, 별점도,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도.


그저, 낯선 이미지 하나가

가만히 나를 건드렸다.

속삭이듯 번지는 색감,

이름 없는 감정의 기척.


나는 그 조용한 끌림에

몸을 기울였다.

예고도 없이

어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어색했다.

대사는 느렸고,

소리는 멀리 있었다.

무엇 하나 설명되지 않는 세계.


하지만 그 침묵의 틈에서

말보다 오래 남는 것들이 있었다.

표정 없는 풍경,

설명 없는 눈빛,

이상하게 오래 맴도는 장면들.


그곳에 이유는 없었다.

마음이 먼저 가 닿았을 뿐.

내가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느껴버린 것이었다.


삶도 그렇다.

정연한 문장으로는

끝내 다 닿을 수 없는

비문 같은 날들이 있다.


가끔은 길이 아니었던 곳이

길이 된다.

예상과 다른 구절이

가장 나다운 문장이 된다.


우리는 자주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잃음이 데려다주는 곳에

우리의 가장 조용한 진심이 숨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불안정한 장면 앞에서

한 발 더 천천히 머문다.

때때로 그 불안정함이

닫힌 문을 연고,

닫힌 마음을 연다.

그렇게, 아주 오래

남을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영화에도 평점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작고 기이한 바늘이

그것을 가리켰으므로.


그 직감 하나로

나는 어떤 이야기의 문을 열었고,

그날 이후,

내 안에 아무도 몰랐던 방 하나가

조용히 생겨났다.


그런 이야기였다.

지금도, 오래 머물러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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