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사진 Feb 25. 2023

오래된 친구의 전화

- 네가 있는 곳을 지나가다가 그냥...

  며칠 전 소꿉친구로부터, 정말이지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속 전화번호부에는 친구의 연락처가 그대로인데 또 가까이 있는데, 뭐가 그리 멀었던 걸까 싶다. 하나둘 드문 소식은 만남도 소원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가끔 그 친구를 생각했고, 또 가끔만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들었다.      


  그 친구의 이름이 액정 화면에 뜨자 주저함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뭔가 꺼림칙하기 마련인데도, 그때는 이상하게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마음속에 환한 빛이 발하며 가야 할 길을 쉽게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여보세요!” 나는 단숨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야, 오랜만이다.”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친구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는 내가 일하는 회사 근처에 왔다가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건 뜻밖이었다. 이 좁은 동네를 숱하게 지났을 텐데, 하필 친구는 왜 ‘지금’에서야 내가 생각났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잠시 만나 볼 약속 장소를 정했다. 나는 일하는 도중에 짬을 냈고,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무슨 일이지? 어떤 부탁이라도 하려는 걸까? 아니, 아닐 수도 있어.’  그리움일까 반가움일까, 아니면 도움 요청일까. 친구가 내게 연락한 이유를 짐작해 봤다. 희한하게도 부정적인 예측보다는 긍정적인 기대가 들었다. 더욱이 친구가 내게 곤란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었다. 막상 친구를 만나 보니,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가다가’가 생각이 나서 연락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더 감동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이유가 왜 그리 특별하게 생각될까. '시간의 여백에 채워지는 것은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월의 바람을 맞은 만큼 친구도 그 바람을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기억 속에는 아직도 친구의 어린 모습이 가득했지만, 내 앞에 선 친구는 조금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친구는 예전의 아이 같은 목소리 톤을 간직한 채 말했다.    

      

“혹시나 해서 연락했어. 너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볼까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아버지가 하는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무엇이든 부지런히 해내는 친구였기에 어떤 일이든 잘 해내리라 나는 생각했다.      


“잘됐다. 너라면 잘할 거야.”

     

  나는 진심으로 친구의 행복한 앞날을 기원해 주었다. 헤어질 무렵, 친구는 나중에 한 번 보자고 말했다. 그 순간 내가 대꾸했다.      


“나중에 한번 보자고? 안 되지. 지금 당장 날 잡아. 그래야 볼 수 있어.”     


  어째서 그런 자신감으로 말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워서 그랬을까. 그동안의 소원함을 회복해 보려는 뜻에서 그랬을까. 우리는 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 어렵게 약속의 날을 정했다. 챙겨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부터 좀 챙기자는 생각에서였다. 뭐가 그리 바빠 ‘친구’도 잊고 사는지. 젊은 얼굴을 또 눈빛을 볼 날이 별로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용기를 내준 친구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잊고 지내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친구와 함께 다니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이. 그리고 그때 나는, 더는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꾸준히' 보는 방법으로, 어렵사리 연락한 친구한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물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