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는 공간이 당신이 된다
You have two choices…
One will lead you to happiness, the other ~ to the madness!
너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단다.
하나는 널 ‘행복’으로 이끌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널 미치게 할 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며 그날의 날씨를 가늠해본다. 침실의 창을 열자 다소 쌀쌀한 가을 공기가 느껴진다. 옷방으로 가서 그리 두껍지 않은 코트를 챙겨 나갈 준비를 마친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오는 강아지에게 소고기 저키 하나를 던져 주고 집 잘 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걸어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우리 동네 지하철까지는 자그마한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가을엔 코스모스도 피고, 커튼월로 반짝이는 도심의 건물들 사이로 난 이 짧은 초록의 정원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지하철. 서울의 아래에 자리한 이 거대한 지하공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회사로 향하는 길, 지하철을 나와 큰 광장 너머로 보이는 흰색 대리석 건물. 그 건물의 15층이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다. 여느 아침처럼 1층 S커피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 내린다. ‘디자인’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지나 디자인실로 이어지는 문으로 들어간다. 부장님께 인사를 꾸벅하고 제일 안쪽에 위치한 내 책상으로 향한다. 커피를 내려놓자, 책장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귀여운 다육이 화분들이 아침인사를 한다. 왼쪽 어깨너머 창 밖으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
회사원 A 씨의 아침 출근을 상상해보았다. 이글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다 보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유출해 낼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공간 속에 있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모든 경험은 공간에서 공간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공간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우리가 공간이라고 말하는 그 장소는 태초에는 무한의 ‘비어 있음’이었다. 다소 철학적인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경계를 명확히 지을 수 없는 ‘비어있음’에서 '공간'은 비롯된다.
그 ‘비어있음’이 공간으로 형성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리적 요소와의 결합이다. 그리고 물리적 요소의 결합 위에 ‘감정’이라는 느낌이 더 해졌을 때,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물리적 요소’란 벽, 천장, 바닥을 비롯하여 그 경계 안에 들어 있는 미적인 혹은 실용적인 이유로 사용되는 모든 사물을 가리킨다. 공간에 대한 ‘감정’이란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일 수도 있으며, 클래식하다거나, 신비롭다거나, 혹은 촌스럽다고 마음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이다.
이 두 조건의 결합으로 인해 공간은 태어나고 우리는 마침내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3차원의 공간 내에서는 인간의 오감이 기능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 요소들은 경우에 따라 개인에게 특별한 영감을 부여할 수 있으며, 이 특별한 영감은 마침내 공간을 체험하는 ‘경험’으로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공간 속에서 작용하는 오감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사용자의 체험을 조정할 수 있으며, 이는 사용자의 공간에 대한 ‘경험’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교회, 키즈 카페, 빈티지 카페, 고급 레스토랑 등, 이 모든 공간들은 사용자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공간 내의 오감적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성당 내부의 성스러움, 오색 및 키즈카페의 발랄함, 클래식한 찻잔이 돋보이는 로코코 스타일의 카페 내부 등 인위적으로 구성된 오감 인자들을 통해 사용자의 가장 강렬한 감정을 끌어냄으로써 공간은 당신의 경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은 인지되고 다시 당신에게 기억 저장된다.
공간 내의 오감 요소들을 통해서 사용자들에게 독특한 경험과 기억을 심어주는 것처럼,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그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집, 사무실, 작업실… 그 어떤 의미를 가졌던 당신은 당신이 속해 있는 공간의 창조자로서 그 공간에 속해 있는 모든 오감적 요소들을 조작할 수 있다. 당신이 창조해 낸 그 공간은 당신을 포함하여, 그 공간을 접하게 되는 모든 이에게 의도된 체험을 선사한다. 당신의 공간은 곧 ‘당신’ 자신의 감정을 보여준다. 당신의 공간에서는 당신이 의도한 대로의 ‘경험’만이 가능하다. 결국 당신이 사는 공간이 곧 당신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의도된 공간은 당신을 의도대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값비싼 인테리어나 유행하는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반드시 당신에게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보장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 안에서 당신이 의도하는 대로의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신 자신이 원하던 ‘경험’을 얻어낼 수 있는지, 이 두 가지가 결국 좋은 인테리어의 가장 중요한 척도일 것이다. 나의 생활 패턴에 순응하며, 나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간은 당신의 경험을 지배하고, 그 경험이 쌓여 결국 당신이 된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어떠한 이유로도 함부로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다시 묻고 싶다. 당신, 어떤 집에 살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