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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Mar 27. 2024

알람이 울리면 추억이 쌓인다

아침 7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면 신속 정확한 동작으로 제압한 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집사람이 몇 분의 뒤척임 끝에 겨우 일어나서 막내 아침을 챙기러 나가고, 또 몇 분 뒤 양이 적다 다른 거 먹으면 안 되냐 등등의 씨알도 안 먹힐 막내의 푸념 몇 마디가 흘러간 후에 집사람은 후다닥 다시 침대 위로 슬라이딩, 밥그릇과 숟가락의 챙챙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저 놈이 마지막 몇 알을 긁어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후다닥 막내가 안방 화장실로 향한다.

(막내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따뜻한 아이인데, 유독 밥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물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한동안 조용하다. 

분명히 칫솔에 치약을 묻히는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유튜브를 틀어 놓고 금세 거기에 빠져버린 거다. 

1~2분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치카치카 분노의 짧은 칫솔질 소리가 나고 이어서 머리를 감기 위해 틀어진 샤워기 소리에 막내의 숨쉬기 힘들어하는 거친 호흡이 더해진다. 아마도 볼록한 배가 숙여진 허리를 계속 거부하며 나오는 팽팽한 긴장의 호흡이리라....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침마다 머리를 감는 게 신기하지만, 남녀공학인지라 나름의 이미지 메이킹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잘 감고 말리고 나면 제발 거울을 보고 빗질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빗는 모양새가, 몇 가닥 남지 않은 빈곤한 아저씨가 머리를 널듯이 유튜브를 보며 자꾸 상하로만 빗어대니 머리가 붕 떠서 안 그래도 작지 않은 얼굴에 얼굴 하나가 더 생겨버리는 모습이 된다.     

 

머리단장이 끝나면 이제 교복 입을 시간. 드디어 내가 출동할 시간이다. 


중학교 때에는 매일 체육복을 입고 다녀서 보기에도 편하고 좋았는데, 고등학교에 오면서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마이에 넥타이까지 회사원 출근복장을 하는 터라 저걸 다 챙겨 입고 공부하려면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이 든다.

공부하는 아이들의 교복을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뻔히 불편하다는 걸 알 수 있음에도 왜 바꾸지 않는지 모르겠다.     


암튼 아직은 와이셔츠와 벨트 있는 바지, 그리고 넥타이 매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폼 나게 입었는지 매의 눈으로 확인을 해준다. 특히 배가 좀 나온 아이라 와이셔츠 밑 단추 잠그는 걸 힘들어해서 두 개 정도는 서비스로 잠가주는데, “아빠 빨리빨리”를 외치는 날에는 “네가 잠가 인마.”라는 말이 편도까지 치고 올라온다.   

   

막내를 보내고 베란다 유리창에 서서 슈퍼 쪽 아파트 정문을 응시한다. 혹시라도 등교하는 아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인데, 똑같은 복장의 까만 점들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도통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눈이 안 좋아진 건지, 아니면 뒷모습으로는 아들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애정이 식은 건지......  

   

하지만 찾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아들이 아침에 친구를 만나서 다른 출입로로 등교를 한단다. 

그 이후부터 다녀오겠다는 아들의 인사가 끝나고 현관문이 닫히면 나도 어김없이 침대로 슬라이딩을 한다.      

아침엔 힘들어도 아들의 교복을 챙겨주고 싶다. 겨우 단추 두 개 잠가주는 정도지만, 앞으로 얼마나 막내와 이런 아침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잠깐의 시간이라도 그런 순간과 기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아빠가 불치병에 걸렸나 싶으시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고, 어느 날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시기가 온다는 걸 큰 아이를 키우며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막내와 함께 하는 잠깐의 시간들이 나에겐 참 소중하다.     


가끔 아빠가 들리지 않게 엄마에게 귓속말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 게 조금 서운하긴 한데, 100% 먹는 얘기일 게 뻔해서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다. 그리고 아직은 아빠를 힘으로 이기지 못해 정말 궁금하면 헤드락 몇 번으로 순순히 자백을 받아낼 수 있다.     


오늘 아침에 배 아프다고 핫팩을 배에 넣고 갔는데 부디 교실에서 생리현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번 주말에는 막내에게 좌우로 빗질하는 방법이나 가르쳐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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