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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서 교수와 학생의 경험 차이

토종 박사의 미국 교수 생존기 #10

박사과정 때부터 국내외 학회를 자주 다녔고, 학회 발표를 듣고, 질문하고, 사람들과 연구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걸 즐겨왔습니다. 발표도 많이 했지만, 별로 잘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해외 학회는 영어로 발표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부족한 내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대로 된 발표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수가 된 이후에 영어와 발표가 늘어서 좋은 부분이 상당히 건 사실입니다. 영어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제 발표 준비를 엄청나게 하지 않아도 얼추 15~20분 정도는 잘 때우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발표 후에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학자로서 너무도 기억에 남는 성취 중 하나입니다.


발표 외적으로 보면, 이제 학회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게 매우 쉬워졌습니다. 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박사과정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교수라고 소개하는 게 특별히 난이도가 다른 것은 아닌데, 뭔가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덜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교수들이나 학생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그리고 저의 경우,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했다 보니 외국 학자들 혹은 박사과정들과 접점 혹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좀 어려웠는데요, 지금은 제 소속과 동료들 이야기만 풀어도 쉽게 함께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니 한결 수월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살다 보니, 미국 내에서 열리는 소규모 학회에 참석할 일이 잦은데요,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회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이제 만나면 같이 밥도 먹고, 아예 서로 장난도 치는 수준이 됐습니다. 사실 학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진 못합니다.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하고, 나중에 얼굴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만나고, 한두 번씩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편안해지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 친구들이 학생일 때부터 알고 지내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친구들이 교수가 되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여는 학회가 많은데요, 결국 반복해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모양입니다. 유럽 내에서 열리는 학회도 많고, 홍콩과 싱가포르 학교 간의 교류도 활발한 것 같습니다. 한중일 간의 지역적 교류가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대신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한국 출신 학자들이 학회에서 모여 소규모 학회를 하거나 모임을 하는 기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분과 친해질 순 없겠지만, 다음에 학회마다 단짝처럼 다닐 수 있는 분들을 여럿 만들 수 있으니 종종 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학회를 오랜 기간 다니고, 특히 교수로서 참석하면 친구도 많아지고 점점 편해집니다. 하지만 박사과정, 특히 학회에 참석한 경험이 적은 경우에는 혼자서 대화할 사람도 없이 외롭게 시간만 보내다 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없을뿐더러, 학계처럼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은 집단에서는 더더욱 잘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저는 정말 다행히도 학회에 자주 오는 한국인 교수님이 계셔서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면서 밥도 얻어먹고 많이 배우기도 했는데요, 일단 한국인 교수님들 혹은 박사과정 분들과 붙어있는 게 극약처방인 건 맞고, 나중에 좀 더 적응되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도 늦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학자로서의 삶은 매우 길고, 만약 졸업 후에 학계를 떠나게 된다면 더더욱 억지로 네트워킹할 필요는 없겠죠.


혹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석사 혹은 박사과정이라면, 여러분의 학회 발표 그리고 학회에서의 경험이 즐겁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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