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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Aug 29. 2024

나의 사이코 13. 이상한 사람들

505호 병실에서 편가르기!

 새벽 한 시 싱크대 앞에 서서 동생의 일기장을 태웁니다. 까맣게 날린 글씨체가 불꽃 아래에서 발악하는 것처럼 선명했습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한 지 석 주가 되는 밤이었습니다. 싱크대 속에서 새까만 재는 폭탄을 감싸는 모양으로 둥글게 퍼집니다. 수세미로 박박 긁어야 지워질 것 같습니다. 동생의 일기장을 어떤 밤엔 법원 서기관처럼 받아 썼고 또 어떤 밤엔 서랍에 모아둔 성냥을 꺼내 태웁니다. 동생도 새벽만큼은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신병원이 아홉 시와 열 시 사이에 환자들을 재웠으니까요.


 불 장난을 마친 후엔 유튜브에 접속해 정신과 의사들이 조언을 해주는 채널이나 기혼자들이 어쩌다 결혼 했는지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들었습니다. 쌓아둔 옷 더미에 핸드폰을 집어 던졌습니다. 벽을 바라 보고 모로 누웠습니다. 그 벽에 또렷하게 새겨진 무늬를 손가락으로 따라갔습니다. 서늘한 기운이 손가락으로 느껴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벽을 가운데 두고 반대쪽에 동생이 있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자유야. 뭐하니?'


 곤히 잠들어 있는 척 눈을 감고 있던 동생이 별안간 눈을 뜹니다. 감각이 예민한 동생이 벌떡 몸을 비틀어 일으킵니다. 그리고 삐쩍 마른 단발 머리 할머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자갈처럼 얇은 이빨을 가진 할머니가 말을 합니다.


 “제가 배가 고파서 그런데. 홍자유씨 두유를 좀 마시면.”


 자유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되는 마술과 같은 일을 그날 밤에도 목격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그녀한테만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발 머리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되겠지요?”


 만약 자유가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후안무치하게 서랍장을 열어 두유를 가져갔을 사람이 자유에게 의견을 물었답니다. 자유는 병원에서 살이 찌고 있었고, 그 할머니는 병원에서 살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어깨가 점점 좁아지다 못해 그녀의 ⅓ 이 되고 있어서, 자유는 이러다 저 할머니가 굶어 죽는 광경을 보고 퇴원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소싯적에 다이어트를 해왔는지 이전에 먹을 것을 내밀었을 때 기를 쓰고 먹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 제 발로 음식 가까이 와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살 찌게 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그 기회를 놓았습니다.


 “안 돼요. 제가 먹을 것도 없어요.”


 자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괴상한 쾌락을 느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거절을 잘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유니세프 광고에 등장하는 기아보다 더 마른 인간을 앞에 두고 소유한 음식물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방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거예요. 나가세요. 안 나가면 간호사 부를게요.”


 자유는 할머니가 얌전히 두 팔을 내리고 푸르스름한 형광등이 켜진 공용 공간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답니다. 그리고 자물쇠를 채울 수 없는 서랍을 아쉬운 듯 만지다가 마음으로 저를 불렀대요. ‘나무 언니.’ 하고요.


 ‘죽고 싶어.’


 저는 자유의 일기를 타이핑할 때 너무 우울한 문장들은 태우고, 죽고 싶다는 말만 남겼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생생한 묘사를 담은 소설이 위험하다는 의견, 베르테르의 효과, 그리고 자살 보도를 하면 모방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살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신문사들의 관행에 동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이유때문에 동생의 일기를 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동생이 수성 싸인펜으로 적은 글을 컴퓨터에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타이핑이 작가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자유의 일기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자유는 일기를 썼습니다. 저는 글을 계속 쓰면서 자유는 이 일기를 절대 출판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독자도 질질짜며 억울하다고 말하는 여자 주인공을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로 기록된 자유의 영혼을 자르고 편집했습니다. 처음엔 이래도 될까. 망설였던 가위질이 계속 하니 도파민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흘러내리는 취미활동이 되었습니다. 종이가 불꽃에 오그라지며 가루가 되는 광경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이건 마치 자유 때문에 포기했던 십대 시절 재능을 되찾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아직은 이 글을 공개적인 장소에 공개하지 않았으니 재능을 되찾았다고 말하기는 이릅니다. 재능은 적어도 한 사람 이상 제가 아닌 타인이 인정을 해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유를 제가 헐 값에 묶어 놓고 있었습니다. 병원의 주치의가 동생의 한 쪽 팔을 붙잡고 있다면, 반대쪽 팔은 제가 잡고 있었습니다. 폐쇄 병동에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전 일곱 시에 환자들이 한 줄로 섭니다. 누군가가 새벽의 그 할머니를 줄에서 끌어냈습니다. “야!”라는 외침을 들은 자유의 이마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김경숙! 니가 걸어 놓은 내 팬티 훔쳐 입었지?”끌어낸 사람이 욕을 했고, 김경자 할머니가 강파른 몸으로 주먹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나만 보면 못 살게 굴더라! 이 여자야!” 경자 할머니는 오래 굶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집념으로 여자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뚱뚱한 간호사가 와서 두 사람을 떼어 놓았습니다.  


 “내가 못 살아. 김경숙 할머니! 왜 만날 이렇게 사고를 치셔요?”


 이것이 바로 마술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자유한테 친절했던 사람들이 아침마다 매일 서로를 공격하거나, 엄마처럼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자유는 싸움이 가라앉는 때를 기다렸다가 팬티를 잃어버린 아줌마에게 다가갔습니다.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김경숙 씨를 제외한 폐쇄병동의 모든 사람이 언니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숙 씨처럼 제 편이 없는 사람을 언니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팬티 제가 하나 드릴게요.”

 “네가 왜 나한테?”

 “간호사한테 말해서 하나 사서 드릴게요.”

 “아니. 됐어.”

 “퇴원할 때까지 병원에 맡긴 돈을 다 못 쓸 것 같아 그래요.”

 “그래? 그럴래?”


 자유가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공용 공간에서 505호로 들어오자마자, 505호의 누군가가 황급히 문을 닫았습니다. 눈높이 정도에 난 창문으로 바깥을 살피던 쪽진 머리 언니는 입원 사유가 알코올 중독이었습니다. 쪽진 머리 언니가 자유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너. 아기 아줌마한테 팬티를 왜 사줬어?”


 자유는 나이를 잊고 팬티가 없다며 아기처럼 우는 아줌마한테 마음이 약해진 일을 어떻게 설명할 지 몰라 볼을 긁었습니다. 설명을 하긴 해야 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505호의 알코올 중독자 두 사람은 자유의 최측근이었습니다. 두 칸 건넌 507호에 방에 있는 아줌마와 비교도 할 수 없었죠.


 “이유는 없… 그런데 언니 왜 그 언니를 아기 아줌마라고 불러요?”


 쪽진 머리 언니가 침대로 가라며 자유를 밀었습니다. 침대로 가서 공부를 하라는 제스쳐였습니다. 침대는 자유가 저를 통해 받은 책 더미때문에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505호 문을 열었습니다. 쪽진 머리 언니는 그렇게 매일 멋있게 나가서 505호부터 5층의 모든 병실을 돌았습니다. 언니는 모든 환자들과 간호사들의 특징을 기억해서 측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별명을 만들고 뒷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마 아기 아줌마도 그런 별명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건 말이지.”


 아까 그 아줌마가 진료를 보러 온 주치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것이 문틈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임신이면 어떡할 거예요?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데. 진짜 임신이면요? 아이가 여기서 나오면 어떡할 거야!”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다른 사람 외모에 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간호사가 뚱뚱하다고 말하는 말도 겨우 했답니다. 그런데 자유의 일기장에 따르면 5층 환자 대부분이 뚱뚱하고 먹는 것에 집착한다고 합니다. 아기 아줌마도 그랬습니다. 아기 아줌마를 보고 있자면 뚱뚱한 미혼의 여자를 일부러 산모로 오해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던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아기 아줌마는 아기가 들어 있는지 겉으로 보면 모를 몸이었습니다. 자유가 놀란 얼굴로 쪽진 머리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진짜 임신한 거예요?”


 그러자 머리를 한쪽 어깨로 넘기고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또 다른 알코올 중독자 언니가 말했습니다.


 “저 아줌마 나이가 60이 다 되는데 무슨.”


 마침내 쪽진 머리 언니가 “트라우마야.”하고 설명하고 용맹하게 출전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아기 아줌마에게 사준 팬티는 돌려 받아 폐기해야 했답니다. 이 병원 간호사실에는 라지 사이즈 팬티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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