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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Mar 09. 2024

방장님, 단톡방 좀 나갔다 오면 안 될까요?

난이도 극악, 살을 빼면서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야 한다.

 그게 어때서?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생활할 때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다. ‘방장님, 잠깐 단톡방 좀 나갔다 오면 안 될까요?’

 우리가 어떤 모임에 속해 있다는 건 천운이자 감사할 일이다. 모임은 우리의 사회성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모임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신 설명해주기도 한다. 왜냐라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땐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가를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독서 모임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내가 차분하고 지적이며 진지한 성격이라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나에겐 독서 모임 회원들이 차분하면서 지적이며 진지한 사람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임은 소중하지만 가끔씩 그런 소중함을 잊고 뛰쳐나오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연예인 다이어트에 도전하다


 내게는 지난 2월이 그랬다. 2월 4일 일요일, 나는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바로 연예인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연예인이 되려고 다이어트를 했던 것이 아니라, 연예인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연예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흘렀다. 다이어트 자체가 워낙 힘들어서 보상 심리가 생겼는지 모른다. 지난 다이어트 때 나는 다이어트로 단백질 섭취가 과해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고, 다이어트가 타고난 기분 장애에 영향을 미쳐 우울감 때문에 맥을 못 추렸다. 그 때문일까. 이번 다이어트 때는 에베레스트를 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스타까지 돼버리자는 오기로 급발진해 버렸다.


 과거 해피투게더 영상에서 AOA 설현에게 소속사가 요구한 몸무게가 48kg이었다. 그녀의 키는 168cm이었다. 그래서 키가 170cm였던 나는 목표 몸무게를 49kg로 잡았다. 하루에 0.3kg에서 0.4kg씩 감량했고 그렇게 내 몸은 2월의 막바지에 이르자 52kg에 가까워졌다. 동시에 나의 정신도 방송연예 전공생으로 봐도 손색없을 만큼 색이 뚜렷해졌다.


 문제는 다이어트가 과열되면서 그 생각이 급진적인 쪽으로 기울면서 발생했다. 연예인 되기에 전념하면 할수록 생각이 극단적으로 흘렀다. 그러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안 빼도 충분히 예쁜데 다이어트를 왜 하냐는 상식적인 질문을 여러 사람들에게서 받았다. 그들의 찌푸린 얼굴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잘못됐어. 네 도전에 동의할 수 없어. 넌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위를 비우는 건 나인데, 저들이 굶는 얼굴을 지었다.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나도 거칠게 맞대응했다. 겉으론 한 마디도 못했다. 나의 뒤틀린 내면에는 글로도 적지 못할 치기어린 생각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들을 비우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면서 명상, 독서, 걷기, 호흡 그리고 출퇴근을 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이어트가 성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놓으면 그 성공이 날라갈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건강과 행복만을 좇았다면, 현재의 몸에 만족해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결코 성공에 도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목표 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복하라는 강요 그리고 비관주의


 2월 내도록 가는 곳마다 생각이 부딪히는 사람을 만났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이 다른 것을 누구 한쪽의 잘못으로 볼 수 없을 텐데, 마치 잘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싸우다 헤어졌다. 다른 모든 관계는 떠나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엄마 그리고 독서 모임만 아니라면, 어차피 다이어트 후에 새로운 인연이 그들의 자리를 채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쿨할 수 없었다. 난 어린아이처럼 집착하는 행동을 했고 그들을 놀라고 질리게 만들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뱉을 뻔했다. ‘방장님 잠깐 단톡방 좀 나갔다 오면 안 될까요?’ 만약 그 말을 정말 뱉었다면? 20년 월급 모아 산 서울 자가가 전소해 버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지만 그런 느낌일 것만 같다.


 지금 몸에 만족하라는 사람들과 함께, ‘다이어트 끝에 찾아올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축늘어져 있는 걸 보고 불행해 보인다고 말했다. 예의상 돌려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삶의 낙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무거웠다. 다이어트가 성공하고 있어서, 먹는 즐거움은 없다지만 다른 즐거움으로 내 삶은 충만했지만 영양 부족으로 힘이 나지 않았다. 그 행복을 몸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엔 프리랜서 심리 상담사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나는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상태로 사회적 가면을 벗기로 했다. 그렇게 상담사 앞에 앉아 있는데 그러면 안 되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그녀와 한 시간 동안 말다툼을 해야 했다.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상황을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좀 컨디션이 안 좋아요. 하지만 8일 뒤엔 괜찮아질 거예요. 제가 지금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있고, 8일 뒤엔 그 다이어트가 끝날 거거든요.” 나는 상담사가 내 말에 반박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8일 뒤에 안 끝나면 어쩔 거예요? 바람 님. 지금 안 행복해 보여요. 결핍이 있어 보여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결핍과 함께 살아갈 생각이신 거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적어도 상담사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결핍 없이 완벽한 사람이 되길 갈망하지만,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도 결핍이 없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 결핍을 혼자만 알고 있느냐 남에게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위태로워지느냐의 차이였다. 그녀가 상담사였기 때문에 나는 내 결핍을 보여주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상담사였으니까. 난 곧바로 삐딱해져선 날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8일 뒤가 돼 봐야 알죠. 미래를 지금 어떻게 알아요?”


 상담사와 헤어진 후 가로등 아래를 홀로 걸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8일 뒤에 다이어트가 끝났을 때 과연 내가 불행할지를, 사람들 말처럼 여기서 멈추는 것이 나에게 좋을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먹지 못해 불행하고, 굶주림 때문에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삶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를. 그들의 생각대로 내가 낮은 자존감에 병들어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사골 국물 끓이듯 지긋하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그들의 생각이었지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나로 살아 보지 못한 그들의 생각에 내 인생을 맞출 순 없었다.




연예인 다이어트는 보는 즐거움을 팬들에게 선물로 준다


 그래서 나는 나부터 나를 전문가로 대하기로 다짐했다. 소속사들이 요구하는 체중에 맞추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며 스스로를 인정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는 마르고 탄탄한 몸으로 승부하는 문화가 있었다.


  모델, 배우, 가수라는 직업 명으로 대중 앞에 선 승부사들을 ‘자기 관리를 잘한다’, ‘아름답고 치명적이다.’라고 봐주는 팬들이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청룡 영화제에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연예인들이 포즈를 잡는다. 오빠. 언니 멋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전날까지 계란과 닭 가슴살만 먹었던 연예인들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의 의미는 ‘나는 최선을 다했어!’지 않을까. 대중들에게 아름다움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은 그들의 의무였다. 나는 그런 연예인의 내면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는데 목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도대체 내가 뭐 하는 중인지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할 때만큼 괴로운 순간이 없었다.


마침내 3월 8일, 영상 촬영 하루 전 마침내 목표 몸무게인 49kg에 반올림으로 닿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후로 몸무게 앞자리가 4였던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상 숫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전신 거울 앞으로 달려가 포즈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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