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의 불꽃이 거대한 용의 분노를 담아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불꽃이 점차 사그러들며 검은 연기가 퍼질 때까지도, 은명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상대가 소멸했을지, 아니면 자신을 뛰어넘는 강대한 존재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지.
은명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육체가 한계를 넘어섰음을 느꼈다. 그는 폴리모프를 시전하며 본래의 거대한 용의 모습에서 벗어나, 한 손에 쥘 듯한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상태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최후의 방책이었다. 전투의 여파로 몸은 지쳤고,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소모한 상태였다.
‘만약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는 동안, 검은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서 찬란한 푸른빛이 서서히 발산되며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건(健). 그의 발밑은 브레스의 여파조차 닿지 않은 듯 깨끗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피해와 혼란이 그의 존재를 피해간 듯, 그의 주변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건은 조용히 서 있었다. 어떠한 두려움도, 분노도 담기지 않은 그의 눈빛은 오히려 은명을 압도했다. 은명은 처음으로 인간이라고 무시했던 상대에게 공포를 느꼈다.
“이게 네가 자랑하는 최고의 기술인가?”
건의 목소리는 낮고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천둥 같은 힘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을 울리는 진동처럼, 그의 말은 은명의 가슴을 짓눌렀다.
은명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용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본능은 그를 멈출 수 없었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한낱 인간 따위가 어째서 이토록 강대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냐!”
건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에는 조소가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너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장악하려 했겠지. 그러나 네 힘은 거대한 파도와 같다. 물결이 지나가면 흔적만 남을 뿐,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은명은 그 말에 숨을 멈추었다. 그의 말은 마치 내면의 가장 깊은 어둠을 찔러대는 칼날 같았다.
“드래곤은 왜 인간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지? 너는 그 이유를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을 것이다. 네 질문은 그저 거울에 비친 너 자신을 묻는 것과 같다.”
건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은명을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힘이란 단순히 가진다고 해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너희 드래곤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세상을 증명하려 했겠지만, 그 힘은 결국 너희를 속박한다. 힘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가 본질이다.”
은명은 그의 말을 이해하려 했으나, 그 깊이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한다. 부끄럽지만, 너는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다.”
건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은명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가 인간 세계에 끼친 영향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파괴를 가져왔다. 그러나...”
은명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번민과 결단이 섞여 있었다. “내 존재가 지금 소멸한다면, 나로 인해 시작된 균열을 해결할 수 없다. 나는 그들에게 너무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 사라짐은 도리어 백만 명 이상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건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침착하게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규율을 어기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느냐?”
“나는...” 은명은 잠시 멈췄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규율을 어긴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나의 힘이 필요하다는 그들의 간청에 응했을 뿐이었다. 내 존재가 규율을 어긴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사라진다면 인간들은 너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건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흥미롭군. 네가 말한 혼란을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다. 만약 네 말이 거짓이라면, 너는 이 자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은명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건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가라. 하지만 나의 눈은 항상 너를 지켜볼 것이다.”
은명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두려움과 다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