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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려는 그곳에서, 또 다른 내가 오고 있었다」

by 대건

언제부턴가 나도 이곳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익숙함이 쌓이고, 경험이 말을 대신하자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러던 중 누군가 자리를 비우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자, 자연스레 내 몫은 더 많아졌다. 새로 온 사람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에 바빴고, 나는 그 틈을 메우듯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다른 팀으로 옮기기로 마음을 정해놓고도, 막상 팀장이나 동료들의 인정을 받을 때면 ‘그냥 여기 남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함께 일하는 형은 내 속사정은 모른 채, 기회만 오면 얼른 떠나라고 등을 떠민다.


정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지금 받는 이 인정이 기분 좋아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후회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예전부터 나는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구역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내 지역만 유독 불합리하게 구성된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팀 전체가 전반적으로 힘든 구역을 맡고 있고, 나는 그 안에서 그나마 조금 나은 편에 속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단순했다. 다들 묵묵히 자기 구역을 지키며 말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 나만 억울하다고 느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막상 낯선 곳으로 가려 하니 두려움이 앞서서, 그저 익숙한 곳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 건지도 몰랐다.


내면의 갈등은 생각보다 깊었다.


비 내리는 날의 배송길, 축축하게 젖어가는 마음을 따라, 한참 동안이나 무거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금 더 내 시간을 확보하고자 집 근처로의 이동을 계획하고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 하니, 그때는 가볍게 내렸던 결정이 지금은 묘하게 무겁게 느껴진다.


이런 기분이 든 건, 얼마 전 다른 팀에서 한 명이 우리 팀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 팀의 불합리함을 더는 견디지 못했고, 마침 그의 집이 우리 팀 구역에 있어 이동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 어찌 보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자리를 옮기자, 그의 팀은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얼핏 지나치며 그 팀을 본 적이 있는데, 평소에도 말수가 적던 분위기가 더 조용해졌고, 어쩐지 공기가 묘하게 흉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그 팀에서 일어나는 균열이 마치 나를 부르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은 그 팀은 아니었지만, 배송 시간을 줄이기 위한 내 계획과는 이상하게도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집 근처로 돌아오듯, 나 역시 그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집 근처로 오게 된 그 팀원의 모습에서, 어쩌면 내 모습이 비춰졌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은 팀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하는 신참의 그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이미 이곳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하니, 몸이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듯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잘 알기에, 어쩌면 내 뇌가 스스로를 방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여기서 인정받으며 지내. 어차피 다른 데 가도 똑같아. 이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들, 과연 또 있을까?”


유혹은 늘 그렇듯,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인생의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오늘도 기대와 설렘, 걱정과 원망, 그리고 끝없는 푸념 속에 스스로를 되묻는다.


과연,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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