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팀을 떠났고, 그 자리에 새 배달원이 투입됐다. 그는 등장부터 지리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예전에 이 구역을 해본 적 있다며, 건물 구조도 익숙하고 물건을 어디에 두는지는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이 온다고 했다. 말투며 태도에는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식의 근자감이 묻어났다.
첫날은 비교적 평탄했다. 물량도 많지 않았고, 그는 점심도 느긋하게 챙겨 먹은 뒤 여유 있게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충분히 여유 있네요.” 그렇게 말하며,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물량이 조금 늘었을 뿐인데 퇴근 시간이 훌쩍 늦어졌다. 얼굴엔 여유 대신 어딘가 낯선 피로가 드리워졌고, 그는 주변 동료에게 조용히 털어놨다. “뭔가 잘못된 기분이에요.” 기대했던 흐름과는 다른 무언가가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물량이 많더라도 코스를 몇 번만 돌다 보면 금세 익숙해질 테고, 그러고 나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하지만 이틀을 직접 뛰어본 결과, 그 계산이 어딘가 틀려 있었다는 걸 점점 깨달아 가는 눈치였다. 배달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고, 동선을 아무리 최적화해도 효율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현실은 단순한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주어진 물량을 성실히 소화하며 일주일을 버텨냈다. 첫 주가 그렇게 흘러갔다. 비록 예상보다 고단했지만, 아직은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둘째 주가 시작되자, 그 판단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 연휴가 끝난 날이었다. 달력으론 며칠에 불과했지만, 현장에선 그 며칠이 곧 재난처럼 다가왔다. 연휴 동안 쌓여 있던 택배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구역 전체가 들썩였다. 그는 처음으로 명확한 좌절감을 느꼈다. 박스는 끝이 없었고, 크기와 부피는 차량의 한계를 가볍게 넘었다. 어떻게 쌓아도 다 실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결단을 내렸다. 생물처럼 반드시 당일 배송이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다음 날로 넘긴 것이다. 그제야 그는 이 구역이 단순히 ‘지리만 알면 되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렇게 그는 그날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배달을 이어가야 했다. 하루라는 경계를 훌쩍 넘어선 강행군이었다. 이 구역을 잘 해낼 수 있다며 큰소리치던 지난날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스스로 원해서 온 자리였지만, 그날의 그는 한껏 위축돼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눈빛은 분명했다. 부피가 큰 물건 하나만 대신 배송해줄 수 없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내 차에는 공간이 여유 있었고, 그 물건 역시 까다로운 곳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예전에 내가 힘들던 날, 그가 아무 말 없이 내 물건 하나를 맡아준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내가 더 도와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의 배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대로 계속 도와주다 보면 앞으로도 매번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선, 지금이 멈춰야 할 지점이었다. 다행히 그도 그걸 아는지,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물량이 폭증하자 아파트 지역의 배송은 전부 익일로 미뤘다. 문제는, 그 지번 구역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번은 겉보기보다 훨씬 까다롭다. 요즘 지도 앱이 잘 돼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번지수가 엉키기 쉽고 골목도 복잡해 초행이라면 길을 헤매기 마련이다. 게다가 물건을 아무 데나 둘 수도 없다.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정된 약속 장소를 직접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원래라면 인수인계 단계에서 이런 정보들을 미리 파악해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넘치는 자신감에 전임자를 조기에 보내버렸고, 그 선택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 셈이었다.
그는 지역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고, 물량은 많았으며, 적재 차량은 저탑이었다. 게다가 맡은 곳은 배송 구역 전체 중에서도 가장 먼 외곽이었다. 모든 조건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며,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전임자가 나가며 남긴 한마디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저 다음에 오실 분은 고생 좀 하실 겁니다. 수고하세요.”
그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근 2년을 이 구역에서 버틴 사람이 내린 판단이었고, 실제로 누가 와도 같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새로 온 그는 효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동선을 꼼꼼히 따지고, 아파트 구조나 엘리베이터 속도까지 계산에 넣는다. 인근 동료들과 자신의 배송 시간 차이를 꾸준히 비교하며, 이 구역이 정말 문제가 있는 곳인지 매일 확인하려는 눈치다.
물론 나도 가끔은 계산을 해본다. 효율이 잘 나오는지, 어딘가 시간이 유독 오래 걸리는 구간이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어디가 배송하기 좋은지, 어디가 까다로운지를 알아야 하루의 흐름을 계획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집요해 보였다. 자신의 구역을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한 뒤, 만약 이곳이 좋은 지역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 무언가 결단을 내릴 사람처럼 보였다. 단순히 효율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계산 끝에 방향을 바꾸려는 기색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그도 전임자처럼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 그만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반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실제로도, 그런 이유로 떠난 사람들이 많다.
그가 이 일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요즘 들어 그의 입에서는 “팀장에게 속았다”는 말이 자주 흘러나온다. 오늘 하루도 마찬가지였다. 물건은 왜 이렇게 크냐, 지번은 왜 이렇게 많냐, 아파트는 도대체 언제 하냐며 종일 푸념이 이어졌다. 말끝마다 피로가 묻어 있었고, 그 피로는 목소리의 톤까지 무겁게 끌어내렸다.
수익은 중요하다. 특히 그처럼 쌍둥이 신생아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아마 지금 그는 이 깰 수 없는 카르텔 같은 구조가 답답하고,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팀 이동을 선택했지만, 지금쯤은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우리 팀 사람들 대부분이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들 버텨내고 있다. 지번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우리 팀 안에서도 누군가는 비교적 좋은 구역에서 이득을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과의 비교는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고, 수익에만 매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너진다. 부당함을 견디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일을 하는 동안만큼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결국 이겨낸다. 누구나 처음부터 좋은 배송 구역을 맡을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자리를 운 좋게 얻는다 해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부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이 일을 계속하려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말 아니다 싶을 땐,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 생각한다.